[정재훈의 시선] 미투 – 혁명의 시작
[정재훈의 시선] 미투 – 혁명의 시작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8.02.28 20:21
  • 수정 2018-02-28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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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들어주겠다며

결국 나를 파괴해 버린

남성적 권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 ‘미투’

 

 

광화문에 촛불이 물결치던 2016년 12월 필자는 ‘촛불혁명? 이제 시작일 뿐’<여성신문 1419호>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었다. “지금 광장에서는 꾹 참고 있지만(?) ‘여자는 ㅇㅇㅇ한 존재’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익명성이 보장된다면 성숙한 시민이 그냥 평범한 국민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한국사회의 근본적 개조 작업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성숙한 시민의 이름으로 앞서고 뒤따랐던 대중 속에 여성혐오·비하의 에너지가 여전히 숨어있음을 지적한 글이었다. 민족정기를 앞세우고 계급 간 격차 해소를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온 남성투사들에게 성(性)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순간의 실수나 객기(?)로 여자를 손댄 동료가 그리 큰 잘못을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은 “여자는 성적을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고 적나?” 정도 의문만 갖게 하는 발음상의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인간은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이고, 그 남성이 여성을 만드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남자)가 너(여자)를 만들어준다”는 구조다. 만드는 주체가 되려면 권력이 있어야 한다. 남성은 그 권력을 사회 각 분야, 어느 수준에서든 갖고 있다. 이를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표현할 수 있다. 이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을 제대로 쓰도록 개인의 선의에 맡길 문제는 분명 아니다. ‘여성을 만드는 남성의 권력 자체를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여교사 수가 아무리 넘쳐나도 여교사를 교감, 교장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남성 교감과 교장이다. 이른바 여초 현상이 심하다는 분야에서도 이 정도인데, 할당제를 통해 겨우 여성의 수를 채울 수 있는 영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검찰은 그만두고라도 기업, 학교, 각종 단체와 조직 등에서 너(여성)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내(남성)가 갖는 힘의 크기는 당사자 여성이 볼 때에는 어마어마할 뿐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큰 자리만을 꼭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어느 기업, 센터, 복지관에 취업을 하고 싶은 수많은 여성이 있다. 그런데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사장님, 교수님, 관장님, 센터장님이 나타난다. 그리고 피해자인 내가 죄인이 된다.

‘미투’는 나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면서 결국 나를 파괴해 버린 남성적 권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다. 그러나 ‘파괴된 나’가 그냥 주저앉았다면 ‘미투’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미투’는 파괴됐던 나의 파편이 다시 모여 새로운 나로 재탄생하였을 뿐 아니라, 그렇게 재탄생한 ‘나’들이 연대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성폭행으로 망가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과거보다 더 단단한 자아로서 살아가기 시작했는데, 나 이후에 동지들이 속속 나타나는 흐름이 ‘미투’이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폄하하거나 왜곡한다 하더라도 부서졌던 파편을 모아 더 큰 나로 탄생한 미투들은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광화문에 촛불의 물결이 일어날 때 한국사회는 혁명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혁명은 ‘결정하는 남성과 이를 따르는 여성’이라는 이분적 인간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허구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투’로 인하여 한국사회가 지금까지 합의해 왔던 윤리관, 가치관, 정의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투’는 혁명이다. 그러나 이제 첫발을 내딘 혁명일 뿐이다. ‘미투’의 불씨를 소중히 해야 할 이유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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