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진보를 분열 시키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김어준의 ‘예언’

“진보를 분열시키는 것은 오히려

‘공작’ 일삼는 진보 내의 보수다”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섹스는 주목도 높은 좋은 소재이고, 진보적 가치가 있다. (어떤 세력이) 피해자들을 좀 준비해 진보 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를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이 타겟이다. 최근 댓글 공작 흐름이 그리로 가고 있다. 올림픽 끝나면 틀림없이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과 기사들이 몰려나올 것이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지난 24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회’ 중 한 말이다. ⓒ유튜브 영상 캡처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섹스는 주목도 높은 좋은 소재이고, 진보적 가치가 있다. (어떤 세력이) 피해자들을 좀 준비해 진보 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를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이 타겟이다. 최근 댓글 공작 흐름이 그리로 가고 있다. 올림픽 끝나면 틀림없이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과 기사들이 몰려나올 것이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지난 24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회’ 중 한 말이다. ⓒ유튜브 영상 캡처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화를 직접 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12화는 삼성이 얼마나 댓글 부대를 잘 활용했는가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미지가 곧 현실이 되는 초현실(hyper-reality)의 시대에 대중들은 진짜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없고, 그걸 파헤칠 시간도 없다. 그러니 옆 사람이 그저 무심한 듯 상대의 이미지를 손상하는 어떤 발화를 하면,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쉽게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공감한다. 봇과 트롤이 메신저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그런 왜곡된 이미지를 생산하여 확산시키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김어준이 말하는 ‘공작’ 정치다. 그에 따르면 삼성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건 자체적으로 혹은 하청을 통해 댓글부대가 움직였기 때문이고, 트럼프는 러시아 댓글부대가 한몫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으며, 최근 보수개신교의 문재인 정권 비판 역시 이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

문제가 되었던 미투(Metoo) 운동에 대한 “예언”은 바로 이 맥락에서 나온다. 공작 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보수는 미투를 진보를 분열시키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섹스’만큼 자극적인 소재는 없으므로 “그들”은 준비된 피해자를 앞세워 진보에 치명타를 가하는 공작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언이다.

사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그의 예언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 맥락에서 그는 분명히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일반적인,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공작”적 사고방식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성폭력 사건에 함께 분노하고 범죄를 단죄하는 데 함께 해야 한다. 만약 이를 다른 정치이슈로 환원하거나 이용한다면 그런 태도야말로 “그들”의 “공작”적 사고방식과 다름이 없다. 공작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윤리나 도덕 같은 거 없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마저도 진보를 분열시키는 데 이용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와 더불어 현재와 미래도 구분하고 있다. 잘 들어보면 김어준은 지금의 미투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보수가 공작을 통해 미투운동을 분열시키는 데 이용할 수 있으니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다는 투다.

이 말을 매우 우호적으로 해석하면 우리는 김어준의 발언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더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으려면 미투 운동을 공작으로 이용하는 보수의 장난질에 정부와 진보적 시민단체가 철저하게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공작, 거짓과 허위를 유포하는 공작에 철저하게 대응할 때에만 미투는 악용되는 일을 막을 수 있고, 이럴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엄단해야한다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어준을 비판하고 나섰다. 논리만을 보는 사람들은 왜 이들이 김어준을 비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들을 난독증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이들이 문해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은 김어준의 예언이 위치하는 발화상황의 심층까지도 보고 있으며, 논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진보를 자처하는 몇몇 그의 추종자들이다.

그 추종자들은 미투의 이슈를 곧장 공작 이슈로 환원해 버린다. 가령 그들은 ‘정치적 공작’에만 강력한 초점을 맞추는 가운데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삼성 사건의 물타기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피해자의 피해상황이나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해결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처음에 JTBC가 조명했던 검찰 내 성폭력은 진보 죽이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 사건의 전말도 거짓과 허위가 아니다. 그런데도 김어준이 말했던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은 그들에게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에 대한 요구에는 귀 기울이지 않은 채 페미니스트들을 진보를 분열시키는 세력으로 호도하기도 한다. 이게 김어준이 비판하는 “그들”의 “공작적 사고”와 무엇이 다른가? 진보를 보호하기 위해 미투를 정치적 공작으로 왜곡시키는 공작, 여기에는 자신의 존재가 파괴될 것 같다는 두려움만 존재하는 듯하다.

김어준을 비롯해 많은 진보 지식인의 태도 역시 그의 논리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의 말이 ‘그러니 우리 함께 잘해보자’로 들릴 수 없는 이유는 소위 진보세력이 젠더 문제에서만큼은 의지박약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최순실-박근혜 카르텔의 적폐를 함께 비판했던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촛불집회 내내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나중의’ 문제나 부차적인 문제로 처리되곤 하였다. 김어준 역시 2015년부터 제기되었던 성폭력 폭로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바가 없다. 그는 서검사의 폭로가 미투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페미니즘의 이슈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지금 김어준, 아니 진보의 논리가 아니라 의지를 문제 삼고 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미투운동을 매우 중요한 진보정치의 이슈로 생각할 의지가 있는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미투 운동을 정치적 공작의 문제로 환원시켜 생각하는 경향은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진보의 분열을 걱정한다면, 먼저 #mefirtst를 하라. 진보의 연대를 원한다면, 먼저 의지를 보여라. 진보를 위해 페미니즘을 도려낼 것인가, 진보 내의 변화를 촉구할 것인가? 진보를 분열시키는 것은 페미니즘도 보수의 공작정치도 아니다. 진보를 분열시키는 것은 오히려 ‘공작’을 일삼는 진보 내의 보수다. 

 

이 글은 이현재 교수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다듬은 글입니다.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 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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