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참정권 위에 온몸으로 투쟁한 영국의 ‘서프러제트’들
여성참정권 위에 온몸으로 투쟁한 영국의 ‘서프러제트’들
  • 박윤수 기자
  • 승인 2018.02.28 10:53
  • 수정 2018-03-03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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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는 행동’으로 여성참정권 요구

서프러제트 이끈 팽크허스트,

죽음으로 의지 알린 데이비슨 등


1918년 제한적 여성참정권 허용

‘인민대표법’ 이끌어 내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1913년 런던 남서부의 도시 엡섬에서 열린 경마대회 도중 한 여성이 달리는 경주마들 사이로 뛰어들어 국왕의 말고삐를 잡다가 경주마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여성의 이름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 그의 외투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여성참정권 입법이 의회에서 연이어 부결당한데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데이비슨의 죽음은 영국 여성들의 ‘서프러제트’(여성참정권 운동가) 투쟁 중 가장 큰 사건이었고 그의 장례식은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변모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18년 2월 6일 30세 이상의 일정 재산을 가진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인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이 의회를 통과했다.

여성참정권 100주년을 맞은 영국에선 여성참정권을 이끌어 낸 서프러제트 운동을 되돌아보는 분위기가 한창이다. 영국 전역에서 서프러제트 운동과 관련된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서프러제트들에 대한 사면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서프러제트 운동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전투적인 여성참정권 운동을 의미한다. 서프러제트란 참정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에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인 말로 여성참정권 운동단체인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데일리 매일이 경멸조로 칭한 용어였으나 이후 여성참정권 운동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서프러제트 운동의 선구자로는 1903년 WSPU를 결성한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꼽힌다. 팽크허스트는 처음에 비폭력 투쟁으로 시작했지만 1908년부터 급진적인 투쟁으로 전환하며 상점에 돌을 던져 유리문을 깨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거나 전선을 끊어버리는 등 전투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서프러제트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 중 1300명 이상이 체포됐고 수백 명이 교도소에 수감됐다. 팽크허스트도 11번이나 체포됐으며 교도소 안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전쟁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했고 이로 인해 단체가 분열 됐다.

여성참정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에밀리 데이비슨은 여성참정권 운동 최초의 순교자다. WSPU의 급진 투쟁에서 가장 대담한 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우체통에 불을 지르거나 정치인의 저택을 습격했고 9번이나 체포됐고 감옥에서 7번이나 단식투쟁을 벌이고 계단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급진적 투쟁을 펼친 팽크허스트와 달리 평화적인 운동을 고수한 인물도 있다. 로맨스 작가였던 샬롯 데스파드는 남편이 사망한 후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WSPU의 주요 인물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람 중 한명이었던 그는 세금 거부, 인구조사 거부 등 주로 비폭력적인 투쟁을 주도했다. 그러나 자신의 평화적인 방법이 반대에 부딪히고 제1차세계대전 발발 후 단체의 운동 방식에 변화가 생기자 WSPU를 떠났다.

에밀리 팽크허스트의 서프러제트 운동 이전에는 밀리센트 포셋이 있었다. 1897년 전국여성참정권연합(NUWSS)를 설립해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끌었으며 교육 운동에도 앞장서 영국 최초의 여자대학 중 하나인 케임브리지대학 뉴넘칼리지를 설립하기도 했다. 포셋은 서프러제트와 구별해 서프러지스트(Suffragists)라고 불리며 WSPU의 급진적인 투쟁 방식이 여성 참정권 획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과 거리를 두며 평화적인 캠페인을 진행했다. 여성참정권 100년을 맞이한 올해 런던 의회광장에 여성 최초로 포셋의 동상이 4월 중 세워질 예정이다.

<영국 여성 참정권의 역사>

▲1832년 ‘대개혁법’(The Great Reform Act)으로 참정권의 범위가 확대됐지만 유권자를 ‘남성’으로 정의해 여성은 배제.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최초의 청원이 의회에 제출.

▲1867년 처음으로 의회에서 여성참정권에 대해 논의.

▲1897년 밀리센트 포셋이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다양한 평화운동 단체를 통합해 전국여성참정권연합(NUWSS)를 설립.

▲1903년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맨체스터에서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설립하며 서프러제트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

▲1908년 단식투쟁이 WSPU의 전술로 채택.

▲1913년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이 경마장에서 국왕의 말 앞에 몸을 던져 사망함으로써 첫 순교자 발생. 여성참정권 투쟁의 기폭제.

▲1918년 ‘인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이 의회 통과. 30세 이상의 일정 재산을 가진 여성이나 재산을 소유한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게 투표권 부여하는 제한적인 여성참정권.

▲1928년 ‘평등선거권법(Equal Franchise Act)’ 의회 통과. 21세 이상의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선거권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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