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한 달 성폭력 관련법 발의 급증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분주

“성희롱방지정책 시행 20여년…

미투, 법과 제도의 결함 방증

“입법 과정 계속 현장 목소리 들어야”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된지 한달이 넘었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드러난 가해자는 많지만 구속까지 된 사례는 극소수에 머물고 있다. 사회변혁운동은 법·제도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 발의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20대 국회가 개회된 2016년 5월 이후 2~3개월에 1건 정도 발의됐던 각각의 관련 법 개정안들은 지난 2월 한 달에만 각각 서너 건씩 발의됐다.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의 경우 4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4건,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3건 등이다.

정당 차원의 대책 마련도 분주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젠더폭력대책태스크포스(TF)(위원장 남인순)’가 피해 당사자 및 현장 전문가들과 전문적인 논의를 이어가면서 정부와 정책 방향을 협의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폭로 이후에는 TF를 특별위원회로 격상했다. TF 간사를 맡고 있는 정춘숙 의원은 2월 21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인 윤종필 의원은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탁현민 방지법)을 대표발의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성 관련 비위를 저지른 공직자에 대해 해당 소속 장관 또는 임용권자에게 징계 등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할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를 통지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바른미래당은 일명 ‘이윤택처벌법’을 내놨다. 성폭력 예방 및 가해자 처벌과 관련해 총체적으로 총 5개 현행법에서 7곳을 개정한 것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형법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양성평등기본법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이다.

민주평화당은 ‘갑질성폭력방지법’ 발의를 당론으로 정했다. 공직사회에서의 갑질 성폭력에 ‘원스트라이크아웃’제도를 도입하고 성희롱의 경우 공직에서 배제하는 징계가 내려지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법안을 발의했다. 지금까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통해 직장내괴롭힘 방지 관련 법안이 발의된 적은 있지만 제정법으로는 최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상반기 중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하는 등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27일 공공부문의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을 보면 여성가족부 장관이 위원장이 돼 범정부협의체를 구성·운영하고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성희롱·성폭력대책 추진점검단’ 설치를 검토한다. 공공부문의 경우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은 일정 벌금형 이상의 선고를 받아 형이 확정될 시 즉시 퇴출한다. 보완대책을 통해 △특별점검 및 신고·상담 활성화 △피해자 보호 및 행위자 엄중 조치 △예방교육 및 인식 개선 △공무원 성희롱·성폭력 사건 엄중한 관리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신고센터의 경우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3월부터 100일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의 경우 상시 별도의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문체부는 2월 20일 주요 분야별 신고·상담 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우선 3월부터 문화예술계 성폭력 상담·신고 센터를 설치해 여성 예술인들의 신고에 대응한다. 또 올해 하반기부터 예술단체의 정부 지원·공모 사업에 성폭력 관련 교육을 의무화한다.

교육부는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온라인 신고센터를 개설·운영한다. 교육기관의 특수성을 감안해 예방교육 강화 등 보완책도 마련한다.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교육공무원의 징계 기준을 상향하고 교단에서 퇴출을 추진한다.

반면 법무부는 대표적인 ‘성폭력 2차 피해’인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요구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법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개한 피해자를 고소할 수 있어 말하기를 가로막고 2차 가해를 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6년 당시 확산됐던 문화예술계 성폭력 말하기운동이 몇 개월 만에 사실상 중단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폐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은 금태섭 의원이 발의했다.

법·제도 개정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성희롱 예방과 처벌,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정을 단일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주최 토론회에서 “현행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방지에 관한 규정은 남녀고용평등법에, 국가기관 등의 성희롱방지조치는 양성평등기본법에, 성희롱 피해자의 구제에 관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각각 규정되어 있다”면서 “관련 규정이 분산된 것은 피해자의 구제와 피해 회복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또 법 집행과 피해자 구제의 통일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을 통해 촉발된 사회 변화 분위기가 제도 개선을 이끄는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은 “국가의 성희롱방지 정책이 20여년간 지속되었음에도 오늘날 미투 운동과 같은 상황이 초래된 것은 현행 법과 제도의 결함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면서 “늦었지만 실효적인 입법과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도 "법·제도가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건 맞지만 과거 성폭력 사건 때도 우후죽순 나온 대책 중에서 급조되면서 안착되지 않았던 사례도 있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이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초반에는 현장에 관심을 갖는 반면, 이후 법안에 반영하는 과정에는 의견을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법안을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매 단계마다 현장과 업계 종사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세부적으로나 큰 방향에서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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