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는 ‘여성의 날’이 두 번이다
베트남에서는 ‘여성의 날’이 두 번이다
  • 호찌민= 송수산 여성신문 글로벌기자단
  • 승인 2018.02.27 11:44
  • 수정 2018-03-05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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쯩 자매의 생애를 다룬 만화. ⓒ유튜브 영상 캡쳐
쯩 자매의 생애를 다룬 만화. ⓒ유튜브 영상 캡쳐

3월 8일과 10월 20일

상점마다 할인을 안내하는 간판을 내 걸었고 길에는 꽃을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났다. TV와 잡지에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마음을 표현하라는 광고들이 가득하고 직장 내 여성 동료에게 선물할 간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남성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베트남에서 여성의 날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베트남의 명절을 이야기할 때 여성의 날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여성의 날은 베트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행사다. 사실 베트남의 공식적인 여성의 날은 10월 20일로, 1930년 10월 20일 베트남 여성 연합(호이 푸 느 판 데 비엣남:Hội Phụ nữ phản đế Việt Nam. 현재 호이 리엔 푸 느 비엣 남:Hội Liên hiệp Phụ nữ Việt Nam)이 설립된 것을 기념하며 지정된 날이지만 베트남에서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역시 여성을 위한 날로써 함께 기념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두 번의 여성의 날은 모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날 만큼은 회사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상점에서 모든 여성이 존중과 혜택을 받는다. 남편이 여성의 날을 그냥 지나치면 일 년 동안 괴로울 각오를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여성의 날은 반드시 챙겨야 하는 기념일로 통한다. 젊은 연인 사이에는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를 능가하는 기념일로 통용되는 탓에 시내 번화가에는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로 인해 교통 혼잡이 빚어지기도 한다.

조국 구한 쯩 자매 기념 위해

베트남에서 여성의 날을 이토록 중요하게 기념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베트남(당시 남월)이 중국(당시 후한)의 지배를 받던 서기 40년, 베트남 빈푹(Vĩnh Phúc) 출신의 쯩 자매(쯩짝:Trưng Trắc과 쯩니: Trưng Nhị)는 중국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목표로 군대를 조직해 전투에 나섰다. 그들의 용기와 전략 덕에 베트남은 마침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룩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은 다시 중국에 주권을 빼앗기게 된다. 낙담한 쯩 자매의 자살(후한의 정치가 마원에게 잡혀 처형당했다는 설도 있다)로 3년의 투쟁은 막을 내리게 되는데 그 뒤 900년 동안 베트남은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했지만 쯩 자매가 보여준 용맹과 저항정신은 훗날 프랑스, 미국으로 이어진 침탈에서 베트남을 버티게 해주는 정신적인 힘이 됐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는 쯩 자매를 뜻하는 하이바쯩(Hai Bà Trưng: 2명의 쯩 할머니-쯩 자매를 가리킨다.)군이 있고, 호찌민 최대 번화가 1군 시내에는 하이바쯩 거리와 쯩짝(쯩 자매 중 언니)의 남편에게서 이름을 따온 티삭(Thi Sách)거리가 나란히 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쯩 자매가 갖는 의미는 크고도 깊다.

쯩 자매 이외에도 베트남 전쟁에서 식량을 나르며 군인들을 지원한 여성들, 조국을 위해 게릴라전에 직접 뛰어들어 전투에 참여한 어린 여학생 등 베트남에는 유독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가 많다. 베트남 사람들은 여성의 날을 주요 행사로 기념하는 것이 쯩 자매를 비롯한 여성 영웅들의 헌신과 용맹에 대한 보답이라고 설명한다.

 

여성의 날이 다가오면 시내 곳곳에서 꽃다발을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송수산
여성의 날이 다가오면 시내 곳곳에서 꽃다발을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송수산

여성 위한 이벤트 쏟아져

여성의 날에는 베트남의 모든 여성이 공주(꽁 쭈아:Công chúa)로 대접받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대부분의 상점에서 여성들은 할인이나 사은품 등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회사에서는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 휴가나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시적으로 여성들에게는 운임을 받지 않는 버스 노선도 등장한다. 신문에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남편이 될 수 있는지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하고 그해에 인기 있는 선물 정보 글이 이곳저곳에 넘쳐난다.

베트남에서는 두 번의 여성의 날뿐만 아니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모두 남성이 여성에게 봉사하는 날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베트남의 여성 인권이 높은 증거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날 즈음에 등장하는 여성 영웅들에 대한 찬사와 부인과 연인, 여성 동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꽃다발과 선물을 안기는 남성들의 모습이 얼핏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두 번의 여성의 날, 즉 일 년에 단 이틀을 제외한 모든 날이 남성의 날이라고 꼬집는다. 고작 몇 차례에 불과한 기념일에 요란스레 여성을 우대하고 챙기는 것은 그만큼 여권이 낮은 것에 대한 반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직까지 여성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지 않는 베트남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여성의 날에 주변의 여성을 챙기며 여성 우대라고 말하는 것은 여성 문제를 개인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여성의 날이 다가오면 여성들의 진취성과 리더십을 응원하는 기사가 넘쳐나는 한편 가정폭력, 성차별,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 노동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뉴스의 단골 이슈로 떠오른다. 자연 성비 105를 훌쩍 넘어 선 베트남의 성비(112.8)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거론되고 남성보다 미흡한 여성의 사회 진출 역시 자주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한다. 서비스업, 데스크 업무 등에 한정된 여성의 업무를 가리켜 수직적인 한계를 뜻하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 대신 수평적 진입의 어려움을 의미하는 유리 장벽(glass wal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공주’보다 ‘동료’로

한 달여가 지나면 베트남은 종전 43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베트남은 빠르게 성장했고, 베트남의 빠른 전후 복구와 비약적인 발전에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의 고된 노력이 숨어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트남의 많은 여성은 여성의 날에 꽃다발과 선물로 자신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대신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자신들을 바라봐줄 것을 원한다고 말한다.

여성 영웅을 기리며 여성의 날을 챙기는 베트남 남성들, 통계와 지표에서 보이는 남녀 간의 격차를 줄이려는 정부, 그리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베트남 여성들의 노력이 겹친다면 공주로 대접받기보다 동료로 존중받고 싶은 그들의 염원이 곧 이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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