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17년 중식 정통파 셰프 

‘여성은 버티기 힘들다’ 편견 깨고 

영역 구축…중식당 총괄셰프로 두각 나타내

중국 유학 시절 22개 도시 돌며

중국 요리 매력에 푹 빠져 

“셰프 꿈꾼다면 

거칠고 과격한 노동환경 

이겨낼 강한 의지 있어야”

 

정지선 셰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지선 셰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높이 치솟은 불 앞에서 한 손으로 무거운 웍(중식 프라이팬)을 잡고 요리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탄성을 자아낸다. 17년 경력의 중식 정통파 요리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정지선(36) 셰프는 “웍 돌리는 것 정말 재밌다”면서 중식은 무한한 매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요리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해)에 출연해 주목을 받은 정 셰프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중화복춘 골드’에서 만났다. 주방을 책임지며 웍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거칠고 과격한 노동환경 때문에 전문 요리업계에서도 특히 살아남기 어렵다는 중식계서 정 셰프는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중국 22개 도시를 돌며 중식을 공부하고 혜전대 호텔조리과, 중국 양저우대 조리과를 졸업했다. 2011년 국제요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2013년 한·중·일 청도 요리대회서 특금상을 받았다. 현재 중화복춘 골드 총괄셰프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 1지망은 ‘요리사’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에게 요리해줘

여성도 중식 셰프 충분히 될 수 있어”

 

정지선 셰프가 총괄셰프로 있는 ‘중화복춘 골드’ 주방에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지선 셰프가 총괄셰프로 있는 ‘중화복춘 골드’ 주방에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의 장래희망 1지망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요리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친구들에게 집에서 부침개를 해줬대요. 부모님이 맞벌이하시고 딸 셋인 집이었어요. 집에서 저희끼리 밥을 해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언니랑 저는 요리하고 치우고, 동생은 빨래하고 청소하고. 역할이 정해져있었어요.” “엄마가 집에서 빵이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시곤 했었죠. 돈가스를 만들어서 온 동네 분들에게 나눠드리기도 했어요. 음식을 해서 주변에 베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꼈어요.”

최근 ‘냉부해’에 나온 그는 ‘여성도 중식 셰프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실제로 방송 나간 후 ‘셰프 되기 위해 어떻게 하셨냐’는 질문을 SNS 통해 많이 받았어요. 여성 셰프가 워낙 없다보니까 학생들이나 취업 준비하는 분들이 셰프의 길에 들어서는 데 주춤하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하고 싶어 하는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잖아요.”

정 셰프가 조리과 다닐 때만 해도 여자 5명, 남자 30명이었다. “A, B, C, D반이 다 그랬어요. 근데 중식은 힘들어서 그런 건지 선택을 많이 안 하더라고요. 선배들도 거의 한식, 양식을 택하거나 뷔페로 갔어요. 근데 주방은 어디든 다 힘들고 위험해요. 결론적으로 셰프가 되고 싶다면 강한 의지와 센스, 순발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기술은 나중에 배우더라도 그 세 가지는 꼭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정 셰프는 중식·한식·양식·딤섬 및 식품조각, 냉판 등 많은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를 알리고,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자격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성, 남성 셰프가 있을 때 나이, 외모 상관없이 남자일 경우 더 인정받는 게 없지 않아요. 셰프가 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거냐고 학생들도 많이들 물어봐요. 저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초에 기본적으로 갖고 있으라고 하죠. 근데 옛날처럼 자격증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나 봐요.”

“처음 접한 주방은 거의 막노동과 같아

고민 많았지만 ‘한 번 해보자’ 결심 

중식 제대로 배우기 위해 유학 떠나”

정 셰프는 요리를 하고 싶어 고등학교 때 자격증을 따고 뷔페에서 홀 알바를 했다. 그러던 와중 ‘주방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어요. 근데 상상 이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거의 막노동과 같았죠. 내가 길을 제대로 선택한 게 맞나 이틀간 고민했어요. 그리고 ‘한 번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죠. 대학만 나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만의 색깔을 찾고 기술을 갖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죠.”

그는 8~9개월가량 중식당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중국 유학을 떠났다. “혜전대 졸업식 날 비행기를 탔어요. 중국어 기초도 배우지 않고 갔어요. 맨땅에 헤딩이었죠. 기술을 빨리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이얼싼쓰(1, 2, 3, 4)부터 배워 HSK 3급을 따고 (양저우대) 편입을 했어요. 방학이나 명절 연휴 때마다 가까운 도시를 돌며 중국 요리 매력에 더 빠지게 됐죠. 시안, 북경, 남경, 상해, 황주 등 6개 도시를 2주에 걸쳐 간 적이 있어요. 지역마다 음식 맛이 다 달랐어요. 짜고, 맵고, 싱겁거나 느끼하고, 향신료가 강한 데도 있었고요. 음식 종류가 하도 많아서 끝이 없더라고요. 특히 길거리 음식에 매료됐었어요.”

최근에는 중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중국 본토 요리에 대한 거부감도 낮아진 추세다. “향신료 향이 강한 마라샹궈 같은 음식도 마니아층이 많아 반응이 좋아요. 예전보다 정통 중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돼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지선 셰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지선 셰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주방에 여성 없는 이유에 대해 고민 많아 

셰프 되기 위해선 확고한 자기 의지 필요”

정 셰프가 방송에 나온 뒤 언론은 그를 ‘중식계의 여장부, 안젤리나 졸리’ 등으로 칭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각종 수식어를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안젤리나 졸리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안젤리나 졸리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냉부해’에서는 닮은꼴이라고 그래서 깜짝 놀랐죠. 사실 닮은꼴은 아니죠(웃음). 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집에 가서 밥이나 해라’ ‘애나 키우라’는 등의 반응이 있더라고요.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를 (남성과 같은) 셰프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정 셰프의 출연 이후 여성 셰프 군단을 보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가 방송에 나온 걸 계기로 더 많은 여성 셰프가 나오길 바라요. 요리연구가 분들은 꽤 나오셨던 것 같은데, 셰프들은 많이 나오지 않았잖아요. 한식, 양식 쪽은 여성이 꽤 있는 편인데 아직 조명되진 않은 것 같더라고요. 아니면 오랜 경력을 갖고 계신 분이 없거나. 저도 여성 셰프 분들을 찾고 싶어요.”

실제로 중식에는 선배라 할 만한 여성 셰프들이 없는 실정이다. 중식 4대문파도 전부 남성이다. 정 셰프는 요리를 배울 때 자문을 구할 만한 여성 선배가 없었다면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제가 고등학교 강의를 나가면 여학생 비율이 더 높긴 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을 보면서 ‘이중에서 몇 명이나 남을까’ 생각하죠. 제가 중국에서 공부했을 때도 유학생 성비가 거의 동일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대부분 중식 외의 길 혹은 요리와 관계없는 쪽으로 가더라고요.”

여성 중식 셰프는 왜 이토록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저도 그 이유에 대해 혼자 엄청 고민했어요. 불과 칼을 다뤄야하다 보니 주방은 전쟁터와도 같아요. 그런 환경에 적응하려면 강한 체력과 정신력은 기본으로 갖춰야 하죠. 요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강한 의지가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정지선 셰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지선 셰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자가 오래 하겠어?’ ‘나는 여자 안 써’

여성 셰프 가로막는 주방 내 차별 

“임신·출산으로 여성 셰프들이 주방을 떠나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는 정 셰프 또한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다. “임신했을 당시 모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결혼, 임신하면 어차피 못 돌아온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주방 사부님들은 ‘그냥 있어라. 휴가 주겠다’고 했지만 제가 그냥 안 하겠다고 했어요. 임신 9개월간 강의를 많이 나갔죠. 출산 이후에는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안 그러면 방법이 없어요.”

주방 내 차별은 여성 셰프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제가 중식협회 다니면서 여자 셰프를 안 쓰려고 하는 분들 되게 많이 봤어요. 지금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여자랑 일해본 적 있냐고 물어보면 다 없다고 해요. 이유를 물어보면 ‘주방장들이 여자가 주방에 들어오는 거 싫어했다’고 답하더라고요. 열 받았죠. 내가 능력이 있더라도 위에서 안 써주면 도리가 없잖아요. 여성 셰프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중식협회나 모임을 많이 찾아다녔어요. ‘나 정지선이고, 중국요리 하고 있다’면서 어필 많이 했죠.”

“‘여자는 분위기 메이커다’라는 얘기도 듣고, 처음 들어갔던 호텔에서는 한 선배가 ‘오래 하겠어? 그냥 빨리 시집이나 가서 애나 키우라’고 하더라고요. 저 때는 면접 보러 가면 ‘여자야? 그럼 탈락’ 이런 분위기도 만연했어요. 주방이 너무 험하다보니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아니면 ‘쟤 캔이라도 들겠어?’ 라는 인식도 있었죠.”

“제 매장 차리는 게 목표…

여성들의 사회활동 더 활발해지길”

딤섬이 주종목인 정 셰프는 최근 『딤섬의 여왕』(북스고)을 출간했다. “딤섬의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밟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딤섬 종류만 해도 2000가지가 넘어요. 이번 책에는 일반인 분들도 집에서 쉽게 따라하실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실었어요.” 면이나 푸딩, 에그 타르트, 냉채 등도 딤섬에 포함된다. 한국에서는 딤섬을 대개 만두와 유사한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딤섬은 본래 ‘간단한 점심’을 뜻하는 말이다. 배를 채워 먹는 게 아니라 ‘마음에 점을 찍듯이’ 끼니 사이에 간소하게 먹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중화복춘 중식당 총괄 셰프인 정 셰프는 요리부터 운영까지 모든 것을 도맡고 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매장을 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앞으로 사회가 더 변하고 여성 셰프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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