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현안 불거질 때마다

성평등 어젠다 우선순위서 밀려

 

 

설 연휴가 끝나자 정치권은 민심 파악에 여념이 없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 설에 국민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민심의 향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통상 설 2~3주전에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은 현안들이 설 밥상머리에 주된 화제가 된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석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대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수사 및 적폐 청산, 그리고 바른 미래당과 민주 평화당 창당 등의 정치 이슈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정치적 이슈들보다 설 민심은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가격 상승, 가상화폐 광풍과 제재 등의 이슈가 집중 부각됐다.

 

설 전에 한국리서치(2월 12~13일)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는 응답이 43.6%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34.0%)보다 많았다.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는 19.6%였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계층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자영업층에서는 부정 평가(46.6%)가 긍정 평가(36.9%)보다 훨씬 높았다.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서도 부정 평가(36.2%)가 긍정 평가(34.2%)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섰다. 이런 조사 결과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줄이고 그 타격을 저소득층이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고용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지난 13일 발표한 한국과의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최저임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까지 올라 (정부가) 이를 더 올릴 경우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면 소비가 진작되면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이렇게 급격하게 올리면 저숙련 여성 근로자와 청장년 실업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통상 압박은 도를 넘고 있다. 한국산 세탁기·태양광 패널 등에 긴급 수입 제한 조치(safeguard))를 발동했고 철강 관세 폭탄 계획까지 발표했다. 한국 지엠(GM)은 군산 공장 폐쇄 카드를 꺼내들면서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조치에 대해선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WTO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했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안보의 논리와 통상의 논리는 다르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겨 미국의 통상 보복 조치가 이뤄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 분명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다른 중요한 이슈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운동’도 그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문화계 유력 인사들의 추악한 과거가 잇따라 폭로되자 연극계는 성폭력 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도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실태 합동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관계 개선, 정부의 개헌안 발의 등 민감한 정치 현안이 불거지면 이런 일련의 흐름들이 꺾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가 최고 역점을 둬야 할 성평등 어젠다는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74.8%)이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지지를 넘어 적극적 공조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투 운동은 성평등 사회로 가는 청신호다. 이런 미투 운동이 향후 경제, 안보, 개헌 등 민감한 이슈들로 왜소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동참해야 한다. 남성들이 피해 여성들을 돕겠다고 일어나는 ’스탠드 업(stand up)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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