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엄마들을 위한 첫 신년회를 준비하며
[세상읽기] 엄마들을 위한 첫 신년회를 준비하며
  •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
  • 승인 2018.02.21 10:03
  • 수정 2018-02-22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음 주도 계속 늦을 것 같아, 신년회도 있고”

연말 내내 계속되는 송년회로 늦더니, 새해가 되자마자 신년회 때문에 또 늦는다는 남편. 회사생활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나 마음 한구석에서 속상한 마음도 함께 올라온다. 나도 아이를 갖기 전에는 연말 연초 많은 약속 속에 바쁜 하루를 보냈었는데 이제는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독박육아맘일 뿐이다.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는 역할은 분명 중요한 직업인데 순간순간 우리는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만 할까? 사업 파트너와 대화 중 자연스레 말이 나왔다. “우리도 엄마 신년회 하자!”

우리 회사 쪽으로 오실 수 있는 엄마들만을 대상으로 간단하고 소박하게 엄마 신년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저녁 시간은 어려우니 오전 시간에 잠시 모여 간단히 먹고 마시며 한 해 계획을 나누는 시간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온라인 공지에 생각보다 많은 지역의 엄마들이 신청해주셨고, 결과적으로 누구누구의 엄마이자, 각자의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100명 넘게 모이는 꽤 큰 규모의 행사로 진행됐다. 엄마들이 신년회를 한다는 행사 취지에 공감해준 여러 스타트업체들의 후원도 있었다. 혹자는 마케팅의 일환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들에게는 큰 응원의 소리였고 반복되는 일상에 찾아온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아침부터 엄마들은 아기 띠를 하고 유모차를 밀고 몰려왔으며 함께 강의를 듣고, 피자와 맥주로 식사를 하면서 엄마로서의 한 해를 다짐하는 꽉 찬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모여 그들만의 신년회를 만들어갔다. 엄마들의 얼굴은 행사 내내 밝고 활력이 넘쳤고, 엄마로서의 경험을 나누는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행사 후 온라인에 올라온 엄마들의 후기에는 남편이 부럽지 않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많은 엄마를 만나왔다. 처음에는 아이의 문제나 양육의 어려움에 대한 내용으로 관계를 시작하지만, 사실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많은 엄마가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은 엄마가 되기 이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나’의 삶 자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한 여성이 ‘엄마의 역할이 가치 있다’라는 인정을 외부로부터 또는 스스로에게서 찾지 못할 때, 엄마가 느끼는 사회로부터의 고립감과 단절감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성취감을 느끼며 해온 많은 역할이 엄마가 되는 시기와 함께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하게 단절되는 경험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여성이 경험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얼마 전 경력단절 엄마들을 우선으로 하는 채용을 진행했다. 그런데 가족 사항을 확인하지 않아도 지원자가 언제 출산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원자들의 경력 단절된 시점은 출산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서에 구구절절하게 담겨있는 이야기 속에서 엄마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중요도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또한 한 여성이 이전에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너무나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 ‘단절’이라는 단어를 강요받고 살아왔는지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생명을 기르는 일과 한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단절’이라는 단어로서 분리되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역할이 갖는 중요도 못지않게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다수의 연구와 최근 사회 분위기가 이를 반증한다. 그렇기에 단절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여성과 직업을 연결하는 것은 본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세대에 맞는 다양한 근로정책, 부모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 자신의 가치를 지속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제공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단절’이 아닌 ‘공존’과 ‘성장’의 의미로 새로운 가족 세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부모라는 역할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부모’라는 역할은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내력, 체력, 지구력을 요구하는 일이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거나 정해진 시간을 쪼개어 알차게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이전에는 바꿀 수 없었던 단점을 극복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라는 역할은 실은 그 자체로 나를 성장 시키고,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하며, 사회를 성장시키는 바탕이 된다.

이번 채용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 회사 구성원들은 다음 채용부터 이력서에 ‘부모경력기간’ 작성란을 마련하기로 했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만들어진 경력의 빈칸보다는 부모로서 근무한 기간 동안 이뤄낸 새로운 성장에 가치를 두고 싶다는 생각에서이다. 작은 시도이지만, 부모의 역할을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과 ‘단절’ 시키지 않는 것에서부터 경력단절 문제의 해결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