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 규범서 벗어나

‘가족을 구성할 권리’

별도로 헌법에 명기해야

헌법서 ‘혼인’ 삭제하고

‘양성 평등’은 ‘평등’으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법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는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현행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이라는 영역에서 성평등의 가치와 원칙을 천명한 조항으로써, 호주제 위헌 결정 등 가족법 상 성차별적 요소를 제거하는 근거규범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반동성애 혐오세력이 중심이 되어 해당 조항에서의 ‘양성의 평등’을 정상가족 규범을 강화하고 소수자의 기본권을 배제, 억압하는 논거로 해석·차용하며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이 심화되고 있다.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의 의미는 성별/들 간의 평등이거나 성별 제도로 인한 차별 시정을 뜻하는 것이지, 양성 간의 평등이 아니다(정희진).

이분법적이고 생물학적인 성에 입각해 남녀라는 ‘양성’의 혼인으로 가족이 구성·유지돼야 한다는 정상가족 규범은 가족을 둘러싼 정상성과 위계, 불평등한 젠더체계를 유지·강화하며 가족 내 차별과 폭력을 은폐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일례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목적조항을 비롯해 국가 가정폭력방지정책을 관통하는 ‘건전한 가정의 육성 및 가정의 보호와 유지’라는 목적과 규범은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분명한 사법처리를 막고 피해자에게 가해자와의 관계회복을 주문하며 가정폭력 근절을 가로막는 핵심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가정구성원을 혼인과 혈연관계 중심으로 협소하게 정의함으로써 다양한 가족 및 생활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개입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다.

또한 가족을 남녀의 혼인과 출산으로 구성된 ‘정상가족’으로 상정하고 이를 가족 관련 법률과 정책을 비롯한 국정운영의 모든 영역에서의 정책과 예산 집행의 기초단위로 편재함으로써 1인 가족, 미혼모 가족, 한부모 가족, 공동체 가족, 동성 부부와 그 가족 등 실존하는 다양한 가족 및 생활공동체를 배제하거나 그 일부를 보호적, 시혜적으로 접근하는 데 그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중 가족의 형태별 분포에 의하면 우리사회의 가족구성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부부와 미혼자녀 44.9%, 부부 21.8%, 편부모와 미혼자녀 15%, 기타가족 13%, 부부와 양(편)친과 자녀 4.2%, 부부와 양(편)친 1.1%이다. 2016년 인구총조사에서 세대 구성 및 가구원 수 별 가구(일반가구) 자료에 의하면 2세대 가구 48.3%(9,361,705가구), 1인가구 27.9%(5,397,615명), 1세대 가구 17.2%(332만9335가구), 3세대 가구 5.2%(99만8919가구), 비친족 가구 1.4%(26만9444가구), 4세대 이상 가구 0.1%(1만678가구)로 나타났다. 헌법은 이미 존재하고 구성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형태를 포괄하고 그에 기반한 국가정책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기본소득을 포함한 사회권 확대 및 돌봄권 신설 조항을 통한 개인의 권리에 입각한 사회보장권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개정될 헌법은 혼인이나 혈연관계 중심의 정상가족 규범에서 벗어나 가족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조합이자 공동체로서 가족의 구성과 이에 대한 국가의 보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별도로 명기하고, 가족 및 성평등의 개념과 가치에 대한 협소하고 왜곡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혼인’과 ‘양성의 평등’을 삭제하고, 가족의 성립과 유지의 핵심은 가족을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의 존엄과 평등임을 분명하게 명시하는 것을 제안한다. 혼인과 가족생활 관련 조항에 가족 구성권을 추가 신설하고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기 위해 ‘혼인’을 삭제하고 가족 구성원들 모두의 평등 보장을 위해 ‘양성 평등’을 ‘평등’으로 변경해야 한다.

가족의 구성과 그 생활에 있어 차별과 배제,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다양한 가족 및 생활공동체 구성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개인의 존엄과 평등에 입각한 가족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하게 규범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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