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1987’과 지워진 여성노동자들
[여성논단] ‘1987’과 지워진 여성노동자들
  • 유경순 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
  • 승인 2018.02.19 09:01
  • 수정 2018-02-24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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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속 여성노동자들

원풍모방 출신 ‘이옥순’

구로공단 미싱사 ‘김미영’ 

구로동맹파업 ‘성훈화’ 등

역사 속 여성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 이중 배제


 

 

유경순 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 ⓒ이정실 사진기자
유경순 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 ⓒ이정실 사진기자
사람들 사이에서 한동안 회자되던 영화 ‘1987’을 뒤늦게 봤다. 기억 저편에 밀쳐놓았던 당시의 상황들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 1987년 6월 거리에서 선전물을 나눠주던 여성노동자들, 최루탄을 피하며 돌을 던지던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1987년 당시 필자는 인천 부평공단에 있던 2000여 명 규모의 봉제공장인 동국무역에서 미싱사로 일하던 여성노동자였다. 인천의 6월 항쟁은 부평시장 옆 도로에서 벌어졌고, 필자는 주위 여성노동자들과 같이 매일 부평시장에 나갔다. 그런 날은 여지없이 최루탄을 맞으며 전경과 대치하곤 했다. 필자의 경험과 기억 속에 뚜렷하게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왜 ‘1987’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노동운동은 유화 국면을 넘기자마자 가해진 정권의 탄압, 특히 1986년 개헌 문제를 둘러싼 5·3인천항쟁 이후 대대적인 탄압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6월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성노동자들의 참여도 전국 곳곳에서 있었다.

1970년대 민주노조인 원풍모방 출신 여성노동자 이옥순은 수배 중이었음에도 6월 10일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구호를 외쳤고, 6월 18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호헌철폐, 독재타도’등의 구호를 외치며 유인물을 배포했다고 기록했다. 또 1981년 정부의 강제해산에 맞서 법외노조 활동을 벌이던 청계피복노조의 이한영도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가두시위에 참여했고, 이한열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청 앞 투쟁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은 당시 호헌철폐만이 아니라 노동기본권과 정치적 자유 및 사상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권리를 주위에 알리는 선전 작업을 했다고 한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벌인 여성노동자들만이 아니라 1985년 여성노동자들이 중심이었던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했던 성훈화도 이한열의 장례식 때는 연세대에서 시청까지 행진하는 시위의 한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시위 대오가 영등포 경찰서를 점거농성할 때도 참여 했다. 그녀는 이런 투쟁의 결과 6·29선언으로 직선제가 관철됐지만, 해고되어 현장을 떠나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했다고 기억한다. 나아가 6월 항쟁 과정에 참여한 여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 경우도 있었다. 구로공단의 미싱사였던 여성노동자 김미영은 6월 10일 명동성당 농성과정에서 직선제로는 독재가 물러나지 않는다며 말할 수 있는 자유, 조직할 수 있는 자유,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의 자유 등이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런 개인의 기록 이외에도 6월 20일 가리봉 오거리 가두시위, 6월 24일 영등포 로터리 가두시위, 이리의 후레아 훼션 노동자들의 시위, 그리고 인천, 성남, 안양, 마산 등 공업단지에서 벌어진 시위에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6월 항쟁이 6·29선언으로 그 분위기가 사그라질 즈음, 여성노동자들은 6월의 광장에서 외쳤던 그들의 요구를 노동현장에서 계속 실천해나갔다.

이처럼 개인의 기억과 몇몇 기록만 뒤져도 알 수 있는 6월 항쟁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활약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 아니 얼마 안 되는 기록조차 무시되고 있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역사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은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이중으로 배제됐다. ‘1987’은 ‘여성노동자들의 1987’로 다시 조명되어야 한다. ‘시민’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배제된 ‘여성노동자’들의 역사는 여성노동자들 스스로가 기록하고 세대를 넘어 기억을 공유하는 활동이 보다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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