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는 350여명의 여성 사장님들로 구성돼 있다. 유아용품이나 식품에서 인쇄업이나 건설업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이끄는 여장부들이다. 친목단체도 있다. 특히 합창단은 평창에서 공연도 하고 정기 연주회도 하면서 음악을 통한 공감대 형성과 사회 공헌사업에도 열심이다. 필자가 3년 전 서울지방 조달청장으로 부임했을 때 가장 먼저 환영해 주었고, 한 달 전 조달청 차장이 되었을 때도 크게 축하해 주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분들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오로지 동성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이렇게 열렬히 환영하는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오랜 기간 남성 중심의 문화와 분위기에 젖어서, 나 스스로 여자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잊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당연시 되고, 관리자로서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 고위직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한가 보다. 그러나 여성 기업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하거나 법령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혜택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장애인,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 등등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할 약자기업들이 있다. 공무원으로서 특정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도 없다. 여성 고위직에 대한 기대가 이렇게 큰데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싶지만 뚜렷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미안한 마음에 협회에서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우선적으로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사가 있으면 우선순위로 참석하고, 축사나 격려사도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작성했다. 간담회도 하고, 명예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공연도 같이 했다. 사장님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고, 애로 사항은 항상 귀 기울여 들었다. 공공조달 정책이나 집행에서 불합리한 내용이 있으면 법령과 규정을 재검토해서 해결 방법을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사업의 어려움으로 우울해하는 분과 손을 잡고, 서로 위로했던 것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3일간 서울지방조달청 별관에서 여성기업 제품 홍보 및 특별 전시회도 열었다. 온라인 시대에 크게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여성 지방청장과 경제인들이 합심해서 기획한 행사라는 것으로 만족한다. 구체적으로 답을 주거나 좋은 결과로 연결하지 못하고, 고민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선에서 끝난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주 찾아주고, 서로 마음을 나누니 감사하다.

30여 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여성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인식을 바꾸고, 법을 고치고,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는 등 양성평등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한 여성계의 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항상 앞만 바라보고 살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서울청장 시절은 즐겁고 행복했다. 이제는 여성 관련 단체뿐 아니라 공공조달에 참여하는 기업과 공공수요자들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눈높이를 맞추면서 소통하고 싶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여러분들에 대한 예의이고 도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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