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조달청 첫 여성 차장 장경순

30년 간 시설‧국제‧재정

업무 거친 조달 전문가

‘여성’이라는 점은

걸림돌 아닌 경쟁력

창업·벤처기업 지원해

‘진입-성장-도약’의

선순환 생태계 구축

 

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햇수로 무려 31년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2만7000시간. 장경순(53) 조달청 차장이 1987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조달청에서 보낸 세월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오로지 조달 업무에 쏟아 부었다. 이름 석 자 뒤에 ‘조달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조달 전문가라는 명예로운 수식어와 함께 장 차장에게 늘 따라 붙는 수식어는 ‘여성 최초’다. 2004년 11월 제주지방조달청장을 맡아 첫 여성 과장이자 기관장에 올랐고 기술직, 여성 기획재정담당관을 거쳐 2009년 7월에는 여성 최초로 국장급인 인천지방조달청장에 임명됐다. 현재 조달청 내 유일한 1급 공무원이다. 과거엔 ‘꼬리표’처럼 여겨지던 이 수식어는 어느새 장 차장에게 자부심이 담긴 이름표가 되어 있었다.

“국장이 될 때까지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에 별 생각이 없었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인데 ‘여성이기 때문에’ 승진할 것이라는 말을 부정했어요. 그런데 올라갈수록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훌륭해서 라기 보다는 여성 진출에 대한 열망이나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 때문에 혜택을 본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돌아보니 여성이라는 점이 걸림돌이기보다 “경쟁력”이었다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다. 실제로 장 차장은 국제물자국장 재직 시 국내 조달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해외조달시장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당시 미국 연방조달청(GSA) 엑스포, 페루, 코스타리카 등에 시장개척단을 파견하는 등 우리기업의 해외조달시장 진출에 기여했다. 또한 파생상품을 결합한 원자재 대여제도·민관 공동 비축제도를 도입해 원자재 수급과 비축에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 차장은 끝까지 여성계에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인식을 바꾸고, 법을 고치고,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는 등 양성평등을 위해 고생한 여성계의 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사실 장 차장은 86년 기술고시에 합격해 대학 졸업 직후 일을 시작해, 결혼과 세 번의 출산, 육아를 거쳤지만 경력단절이나 일·가정 양립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친정어머니의 헌신과 가족의 지원 덕분이었다. 스스로도 “축복받았다”고 표현했다. “과거엔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는 고통과 어려움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는 그는 고백했다. 그래서 여성 공무원 3명이던 시절 공직에 입문해 “조달청 여성 공무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듣지만 “누군가의 ‘사표’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도 했다. 그는 “다만 공직자로서 반듯한 모습을 보여야 겠다는 마음과 함께 학연이나 지연에 이끌리지 않고, 소위 ‘패거리 문화’도 벗어나겠다는 다짐은 했다”면서 여성이라는 점이 구태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

장 차장이 31년간 근무한 조달청은 정부 물자와 시설물을 조달하고, 원자재 비축과 국유재산 관리 업무를 등을 담당하는 중앙조달기관이다. 최근 중소기업, 여성기업, 청년기업 등 경제적, 사회적 약자 기업이 공공조달시장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여성 공무원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조달과 여성은 쉽게 연결 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조달청에 여성 차장의 등장은 여성 기업인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물론 여성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법령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혜택을 주기는 어렵다. 공무원으로서 특정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도 없다. 장 차장은 “여성 고위직에 대한 기대가 이렇게 큰데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싶지만 뚜렷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딜레마”라면서도 “일단은 여성 차장이 나오니 소통이 쉬워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연스럽게 일이 편해지는 거다. 딱히 해 준 것도 없는데 굉장히 용기를 갖고 좋아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위치에 왔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단체뿐 아니라 공공조달에 참여하는 여성기업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음은 장 차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경순 조달청 차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기업이 공공조달시장에 많이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여성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조달정책을 소개해준다면.

“조달청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기업의 제품을 ‘우선구매’ 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여성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물품과 용역구매 총액 중 5% 이상, 시설공사는 3% 이상을 우선 구매해야 한다. 2017년 조달청은 약 3.5조원 규모를 여성기업에게 조달했다. 2017년 전체 조달금액 38조원의 9.2%에 해당하는 규모다. 조달청이 여성기업으로부터 조달하는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선구매비율 제도, 수의계약, 여성기업 간 경쟁, 입찰 관련 각종 심사에서 가점부여 등 여성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이 중 공공조달시장에서 여성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있을까.

“조달청은 연간 60조원 규모의 공공조달 재원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정책 수단을 운용하고 있다. 우선 정부 입찰 및 우수조달물품 심사 시에 고용창출 우수기업을 우대하고,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입찰 우대를 확대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창업·벤처기업의 성장 촉진과 지원체계 개선을 통해 ‘진입-성장-도약’의 조달시장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술력은 우수하나 정보 부족 등 해외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달기업의 해외조달시장 진출 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해외조달시장 진출유망기업(G-PASS기업) 지원이 확대되며, 여성기업이 이러한 지원정책을 잘 활용하여 판로를 개척하고, 기업을 성장시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기를 희망한다.”

-올해 추진할 조달사업 방향을 중소기업이나 여성기업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큰 틀에서 정리한다면.

“올해 조달사업목표는 지난해 실적보다 1.9% 증가한 60조원이다. 물품을 조달하고 시설물 계약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조달체계를 구축해 기업의 혁신성장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창업·벤처 여성기업이라면 공공시장을 판로를 개척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공공조달의 역할이 혁신제품에 대한 테스트베드 시장, 해외조달시장 개척,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계약 지원 등 포괄적이고 가치 지향적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조달청 홈페이지에 ‘2018년 조달청 업무계획’ 등 정책정보가 많이 게시돼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면 중소, 창업-벤처 여성기업에게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학에서 건축, 대학원에서 토목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전공 분야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1980년대 초반은 건축 분야와 컴퓨터공학 등 공대생의 수요가 많았던 시대였다. 이과생인데다 시대적 상황이 합쳐져서 선택한 전공이긴 했지만 공부하면서 창의적인 작업이면서 다른 영역의 기술이 총집합시키는 건축 분야를 좋아하게 됐다. 졸업 후 진로선택의 시점에서 현장보다 공직을 선택하게 됐다. 당시의 시설분야는 전통적 남성우위 조직이어서, 현장 업무와 가정을 병립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남다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여성 공직자로서 여성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건설과 기술 분야에서 여성 진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 업무 분야뿐 아니라 모든 여성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성이 조직의 리더로서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방면의 분야에 골고루 진출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균형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건설현장 업무가 남성 위주 문화여서 여성의 수가 적었고, 불리했다면, 현재는 오히려 그 점이 유리한 점으로 전환됐다. 갈등과 분쟁이 많은 업무현 장이라 상대적으로 여성의 소통능력과 갈등 조정능력이 발휘되는 측면이 크다. 여성이 각 분야에 골고루 분포되고, 실력만큼 대우받는 사회가 되도록 기여하겠다.”

 

 

장경순 조달청 차장

기술고시 22회 출신으로 1987년 조달청에서 공직을 시작해 31년 만에 차장 자리에 올랐다. 현재 조달청 내 유일한 1급 공무원이다. 성격이 솔직하고 소탈하며 업무 처리나 사람을 대할 때 치우침이 없고 결단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구파’로도 정평이 나 있다.

공직 입문 후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토목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데 이어 선물거래상담사와 국제공공조달사 등 직무 관련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남편은 고시 동기인 손병석(56) 국토교통부 1차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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