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이유로 강제불임수술한 국가를 고소한다
‘장애’ 이유로 강제불임수술한 국가를 고소한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2.07 08:49
  • 수정 2018-02-13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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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이유로 강제 불임수술 당한

일본 여성,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장애인=열등한 인간’ 규정해

임신중절 약 6만건,

불임수술 2만5000건 강제한

옛 ‘우생보호법’ 다시 수면위로

비슷한 역사 지닌 한국에도 영향 줄까

 

일본 미야기현에 사는 60대 여성은 지난 1월 30일 장애를 이유로 불임수술을 강제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위자료 등 110만엔을 청구하는 소송을 센다이 지방법원에 냈다. ⓒTANSAN
일본 미야기현에 사는 60대 여성은 지난 1월 30일 장애를 이유로 불임수술을 강제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위자료 등 110만엔을 청구하는 소송을 센다이 지방법원에 냈다. ⓒTANSAN

‘지적장애’를 이유로 국가에 의해 강제불임수술을 당한 일본 여성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나섰다. 국가 공권력의 인권유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일본 내 첫 소송이다. 이 소송이 유사한 역사를 지닌 한국 등 다른 국가들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일본 미야기현(宮城県)에 사는 60대 여성은 지난 1월 30일 “일본 정부가 장애를 이유로 불임수술을 강제한 것은 헌법이 정한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 위반”이라며 위자료 등 110만엔(한화 1084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센다이 지방법원에 냈다. 

 

원고 측 변호인단과 지원자 등 30여 명은 이날 ’구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불임수술, 국가는 사죄와 보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센다이 지방법원으로 가 소장을 제출했다. ⓒKHB뉴스 영상 캡처
원고 측 변호인단과 지원자 등 30여 명은 이날 ’구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불임수술, 국가는 사죄와 보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센다이 지방법원으로 가 소장을 제출했다. ⓒKHB뉴스 영상 캡처

 

원고 여성 측은 “우생보호법이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TBS 영상 캡처
원고 여성 측은 “우생보호법이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TBS 영상 캡처

이날 마이니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어린 시절 마취 치료 후유증으로 지적장애인이 된 이 여성은 15세 때인 1972년 미야기현 우생보호심사위원회의 결정으로 현 내 병원에서 난관을 묶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국가 기관의 설명도 못 듣고 수술대에 올랐고, 불임 사실이 알려져 결혼도 못하고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 여성은 일본의 옛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에 따른 강제불임수술 피해자 중 한 명이다. 1948년 제정된 이 법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우생보호심의회를 거쳐 간질·혈우병등 유전성 질환 환자, 정신질환자, 지적장애인 등 ‘열등한 인간’에게 불임수술을 강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수술 대상자의 연령 제한이 없어 9살배기 여아, 10살배기 남아까지 불임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위해 대상자의 신체 구속, 마취 사용, 속임수 등도 허용했다. 수술을 받은 사람이 결혼할 경우 상대 측에 불임수술 사실을 통지하도록 했다. 일본변호사연합회에 따르면 우생보호법을 근거로 실시된 임신중절 수술이 약 5만9000건, 불임수술이 약 2만5000건이다. 구 후생성의 위생연보와 마이니치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이 중 약 1만6500명은 동의 없이 불임수술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여성이 1만1356명, 남성이 5164명이다.  

 

당시 일본 내에서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된 임신중절 수술이 약 5만9000건, 불임수술이 약 2만5000건이다. ⓒTBS 영상 캡처
당시 일본 내에서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된 임신중절 수술이 약 5만9000건, 불임수술이 약 2만5000건이다. ⓒTBS 영상 캡처

마이니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생보호법에 따른 미야기현 내 불임수술 대상자는 총 859명으로 여성 535명, 남성 320명, 성별·연령 불명 4명이었다. 이 중 절반가량이 미성년자(여성 257명, 남성 191명)였다. 수술 사유는 ‘유전성 지적장애’(745명), ‘정신분열증’(39명), ‘유전성 지적장애와 간질’(26명), ‘간질’(15명), ‘선천성 난청 등의 신체 장애’(14명) 순으로 많았다. 가장 나이가 많은 수술 대상자는 46세 여성, 51세 남성이었다. 최연소 대상자는 9세 여아(2명·유전성 지적장애), 10세 남아였다. 11세 아동들도 거의 매년 수술을 받았다. 

이는 20세기 세계를 휩쓴 우생학 열풍이 낳은 참혹한 결과였다. 지금이야 우생학이 ‘사이비 극우 과학’으로 조롱받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각국 지도자들은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간의 번식을 억제함으로써 더 우수한 민족을 만들 수 있다’는 우생학자들의 주장에 귀 기울였다.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미국, 일본 등지에선 장애 판정을 받은 수십만 명이 강제불임시술을 받았다. 나치 정권 하 피해자만 약 40만 명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1970-80년대 국가 주도로 ‘산아제한’ 등의 명목으로 장애인 강제불임수술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공식 조사나 조처는 없었다. 

 

일본 우생보호법에 따른 강제 불임수술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일본 우생보호법에 따른 강제 불임수술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일본 우생보호법은 ‘장애인 차별법’이란 비난 끝에 1996년 임산부의 생명 보호를 위해서만 불임수술과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내용의 모체보호법(母體保護法)으로 개정됐다. 1997년 ‘여성의 신체와 의료를 생각하는 모임’ 등 17개 시민단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후생상에게 강제불임수술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한 바 있다. 2001년 구마모토 지방법원은 불임수술을 ‘비인도적 취급’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강제불임수술 피해 실태 조사와 보상을 권고했다. 1998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에 필요한 법적 조처를 권고했다. 2004년 참의원 후생노동성위원회에서 후생노동성장관은 보상의 필요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강제불임수술 피해 보상 제도를 만들지 않고 방치한 국가는 피해자에게 법적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 측 변호인단과 지원자 등 30여 명은 이날 ’구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불임수술, 국가는 사죄와 보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센다이 지방법원으로 가 소장을 제출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변호사 니사토 코지(新里宏二) 변호단장은 “법 개정 후에도 국가는 피해 구제를 게을리하고 차별을 방치했다. (이번 제소엔) 만감의 분노가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변호단은 2일부터 다른 강제 불임시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전화 상담을 시작했다. 원고 여성을 대신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가족은 “(원고는) 장애인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소했다”며 “지금까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 말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일본 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일본BBC 보도에 따르면, 가토 가츠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성 장관은 아직 소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후생노동성 담당자는 같은 날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강제불임수술 피해자와 개별적으로 이야기는 하겠지만, 피해자 전원에게 포괄적 지원을 제공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이 국경을 넘어 한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1999년 당시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은 ‘장애인 불법 강제 불임수술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고 “1983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 8개 정신지체장애인 시설에서 지적장애인 75명(여성 27명, 남성 48명)이 불임수술을 받았다. 이 중 여성 26명, 남성 40은 강제로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구청·보건소 등 행정기관이 장애인 시설 측과 수술 문제를 논의하고, 대한가족계획협회(현인구보건복지협회)가 병원을 알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기조 하에서 장애인에게 불임을 권유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유전질환 예방 차원에서 정부가 강제불임수술을 명령한 적은 없다”고만 해명했다. 계속된 장애인·인권단체 등의 문제제기에도 공식적인 실태조사나 피해 보상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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