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배운 남자다움이

사실은 여성을 길들이는

폭력적 시도에 불과했다는

반성이 시작돼야 한다

 

 

서지현 검사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서 머릿속이 ‘띵’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한국사회 성평등 수준이 낮음을 보여주는 여러 지표와 상황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법적 기회의 평등을 활용할 수 있는 상당수 중산층 엘리트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이 지난 20여년 사이에 이뤄졌다. 워낙 여성의 존재를 볼 수 없었던 상당수 남성에게는 “여자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는 섣부른 인식을 형성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법조계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여성 판사·검사·변호사의 존재다.

사회생활·취업활동의 기본구도에서 젠더폭력에 대한 여성의 불안은 상수다. 그리고 실제 많은 여성들이 젠더폭력 피해를 당한다. 그렇지만 권력을 가진 그들의 세계에서는 젠더폭력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줄 알았다. 판·검사의 영역에서도 유리천장은 있을 것이다. 현재 임용되는 판·검사 중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더라도 후에 고위직 중 여성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물론 덧붙여 했다. 여성 법조인이라 하더라도 독박육아나 성차별적 가족관계로 인해 직장생활에서 불이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마주쳐 지나가는 여성 검사나 판사가 그들의 세계에서 한낱 ‘여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여성·남성을 떠나 판·검사가 갖고 있는 권력의 무게를 너무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권력의 외피 안에 숨어 있었던 ‘성’에 기초한 폭력적·억압적 관계에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지위 고하, 권력의 크기, 빈부의 차이를 떠나 한국에서 남성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까지 안가더라도 ‘성’을 소재로하여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언행을 장난 심지어 친근감의 표시로 알면서 자라왔다. 최근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학교교육 과정부터 직장생활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자리에 있는 대다수 남성은 그렇게 사회화되는 과정을 지나왔다.

 

여성인권단체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진행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인권단체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진행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어렸을 적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이나 여선생님 치마 밑에 손거울을 넣는 ‘장난’을 하곤 했다. 실제 뭘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교무실에 끌려가 남자선생님들에게 그런 ‘장난’ 때문에 얻어맞은 적도 많다. 그러나 때리는 선생님과 맞는 학생이 서로 키득거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야, 임마. 적당히 해라. 왜 그리 장난이 심하냐?” 이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을 손에서 놓았지만, 진심어린 반성에서라기보다 그냥 그 ‘장난’이 더 이상 재미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변명 같지만, 그 ‘장난’이 성희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하는 분위기였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렸을 적부터 ‘장난’에서 시작해 남자가 여자를 길들이는 방법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랐다. 대학교에 와서 접하기 시작한 페미니즘 이론서와 수많은 여성의 경험담, 연구활동을 통해 뒤늦게 알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에서 학생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휘감는 선배 교수를 보면서도 그만 두라는 소리를 제대로 못했다. 기껏 그 선배와 여학생 사이에 취한 듯 끼어들면서 사이를 갈라놓는 정도였다. 동료로서 여성을 ‘장난, 친근한 행동’으로 길들이는 남성연대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내 일상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반성한다.

지금까지 남성이 배워온 남자다움, 여성과의 관계에서 ‘주체적 행위’가 사실은 여성을 길들이는 폭력적 시도에 불과했다는 반성이 시작돼야 한다. 지금 우리 남자아이들은 손에 거울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더 폭력적인 세상이 되기 전에 ‘남성되기’ 과정을 변화시켜야 한다. 서지현 검사가 보내는 메시지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