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자가 사실 알리자 사측이 피해자에 불이익 준 ‘르노삼성 사건’

올해 공소시효 만료되는데 검찰은 아직도 사건 처리 지지부진

 “검찰의 의도적인 방치...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 달라”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와 검찰에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적극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와 검찰에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적극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검찰 간부가 부하 여성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처분까지 했다는 폭로가 사회를 뒤흔드는 가운데, 검찰이 4년이 넘게 르노삼성자동차 내 성희롱 관련 불이익처분에 대한 수사에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확인됐다.

르노삼성 사건 역시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밝히고 문제제기 했으나, 오히려 사측이 피해자에게 대기발령 등 수차례 징계를 하면서 2차 가해를 일삼았다. 이에 피해자는 대기업을 상대로 2013~2014년에 걸쳐 직접 민·형사상 고소를 제기해 지금까지 싸우는 중이다. 특히 형사고소는 올해 공소시효도 만료 예정이어서 여성계는 여러 차례 수사를 촉구해왔다.

문제는 검찰과 고용노동부다. ‘남녀고용평등법’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불이익처분’을 금지하고 있어 르노삼성은 불법행위에 해당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 12월 22일 피해자가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이 회사 측의 책임을 모두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한 것과 딴판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 엄격한 판결을 내렸다. 사측이 성희롱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준 동료에게 내렸던 징계처분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것이다.

장기간 고통받아온 피해자는 대법의 판결이 나면서, 고용노동부와 검찰 역시 수사를 재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로부터 아직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특히 지난 5년간 남녀고용평등법(정식명칭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 2항 ‘불리한 조치’로 고용노동부에 26건이 접수됐고, 르노삼성자동차 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은 종결됐다. 종결된 사건 중에서도 검찰이 사측의 죄를 인정해 기소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검찰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영주 장관에게 질의하자 “검찰과 협의해 최대한 조치하겠다”고 답변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의원도 대검찰청을 방문해 “검찰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해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고, 이에 문무일 검찰총장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답변했다.

이같은 검찰과 고용노동부의 업무 태만은 최근 정부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방침과도 배치된다. 지난 11월 정부는 남녀고용평등법 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조항을 개정안을 발표했다. 성희롱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사업주의 조치 의무 등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은 있어도 안되지만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겁내서 문제 제기를 못한다는 것은 더욱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해당 사건을 맡고 있는 검찰(수원지방검찰청) 측은 30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고용노동부의 의견서를 살펴보고 송치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문무일 총장의 르노삼성 사건 관련 지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국감 당시 (직원들이) 방송으로 답변하는 장면을 다 지켜봤다”라고 말했다. 또 앞서 대법원이 피고인 사측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본 판결과 관련해서 “대법 판결이 검찰의 수사에 전혀 영향을 안 미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민사손해배상소송 대리인인 이종희 변호사는 “검찰의 의도적인 방치”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법원이 명확하게 남녀고용평등법 위반행위 3건이 불법행위라고 봤있고, 검찰은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서 바로 기소를 해야 한다. 그것을 더 살펴보겠다는 건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또 이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를 오래 끌면서 피해자가 회사에서 계속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공소시효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검찰이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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