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헌법이 천명한

인민, 만인의 의미 담아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로 바뀌어야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성평등 개헌을 위한 10대 과제 중 네 번째는 평등권이다. 평등권은 신분제 사회에서 입헌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분기점이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모두 평등함’(제3조)을 천명했고, 1948년 1호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8조)고 밝히고 있다. 평등권은 근대 민주주의 국가 내 주권자들의 관계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아가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사회의 약속이 되는 세계인권선언의 외침을 헌법 차원에서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국민국가가 차별과 배제의 주체로 작동하기도 하는 현재, 평등권의 주어는 ‘국민’의 틀을 벗어나야 마땅하다. 초기 헌법에서 천명한 인민, 만인의 의미를 담아 ‘사람’으로.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로.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조문의 앞부분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헌법 제3조 2항에 ‘남녀는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Maenner und Frauen sind gleichberechtigt)’라는 문구를 넣기 위해 제헌의회 4명의 여성들이 고군분투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1조에서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했지만, 여성과 청소년의 동일기여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자 이를 기각해왔기 때문이다. 남성 의원들이 3조 2항을 부결하자 여성들과 여성단체의 항의세례가 이어졌고, 결국 다시 입안됐다. 평등의 선포가 누구의 평등인지, 어디부터 제재되는 평등인지, 여성의 시선으로 되물었을 때 드러난 평등권의 지형도였다.

30년 만에 개정될 헌법에서는 어떤 평등을 말해야 할까?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우리나라 차별실태와 과제’ 연구 결과 ‘학력 및 학벌’(29.6%), ‘동성애자’(15%), ‘외모’(11.7%)가 빈도 높은 차별사유로 꼽혔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민 인권의식 실태조사에서는 비정규직(95.6%), 인종, 피부색, 출신국가(90.7%), 집단따돌림(86.2%), 학력 학벌(85.8%), 장애(84.9%), 성희롱(81.3%), 성소수자(79.6%)가 심각한 차별사유라는 응답이 나왔다. 만인은 평등하지만, 실재하는 차별을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 비가시화, 눈에 보이지 않게 하기, 언급하지 않기는 차별을 용인, 재생산, 일상화하는 기제다. 따라서 평등권을 확립하고자 할 때 차별사유의 나열은 필연적인 책무이자 전략이 된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19가지 내용 등을 이유로 하는 특정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보다 적극적으로 차별을 경감하기 위해 국제 규약이 권고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의 경우 7개의 차별사유(성적지향, 학력 및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를 제외하라는 일부 기독교 세력과 재계 등의 압력으로 지금까지도 제정되지 않고 있다. 차별사유 중 ‘성적지향’이 나열된 모든 조례와 법령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움직임은 2015년에 제정된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폐지안을 2년 만에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평등에 대한 선택과 배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 차별과 혐오가 보편적 인권옹호의 법제도적 테두리마저 허물어뜨리고, 평등권 확립의 책무를 정부도 망각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평등권에 대해, 실질적이고 현재적인 차별사유에 대해 ‘헌법적 보호’가 드리워져야 하는 상황이다. 헌법상 평등권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돼야만 한다. ‘모든 사람은 성별, 종교, 장애, 연령, 인종, 지역, 학벌 및 학력, 성적지향, 기타 개인적 또는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을 이유로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는다.’ (여성단체연합 성평등 개헌 10대 과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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