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년 ‘핫’했던

요리 예능프로그램서

셰프는 대부분 남성

여성 찾아보기 힘들어

요리계 내 젠더 불평등?

 

지난 15일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사상 최초로 여성 셰프가 등장했다. 정지선 셰프(사진)는 요리 경력 17년의 중식 정통파 셰프로 알려져 있다.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영상 캡처
지난 15일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사상 최초로 여성 셰프가 등장했다. 정지선 셰프(사진)는 요리 경력 17년의 중식 정통파 셰프로 알려져 있다.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영상 캡처

일명 ‘쿡방(요리방송)’이 방송가를 휩쓸며 여기저기서 요리 예능프로그램이 쏟아졌지만, 여성 셰프는 눈 씻고 보려 해도 볼 수 없었다. 올리브TV ‘올리브쇼’ ‘마스터셰프 코리아’ ‘노 오븐 디저트’, tvN ‘한식대첩’,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쿡가대표’ 등 다수의 요리 프로그램이 존재했으나 여성은 거의 전무했다. 그나마 김소희 셰프와 요리연구가 심영순 선생이 각각 마스터셰프코리아, 한식대첩에 출연한 바 있지만 공교롭게도 둘의 역할은 심사위원에 머물렀다. 요리 대결을 펼치거나 음식을 직접 선보이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셰프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지난 1월 15일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해)에 사상 최초로 여성 셰프가 등장했다. 2014년 방영을 시작한 이후 4년만이다. MC 김성주는 “전문 여성 셰프를 모시는 건 처음”이라며 17년 경력의 중식 정통파 정지선 셰프를 소개했다.

시청자들도 그의 등장을 반겼다. “셰프님 카리스마 넘친다. 너무 멋있다”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는 반응이었다. 정 셰프는 중국 22개 도시에서 요리 수련을 하며 실력을 쌓은 베테랑 요리사다. 혜전대 호텔조리과, 중국 양저우대 조리과를 졸업한 그는 2011년 국제요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 한·중·일 청도 요리대회서 특금상을 받았다. 현재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중식당 ‘중화복춘 골드’ 총괄셰프를 맡고 있다. 이연복 셰프는 “중식계에서는 여자들이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여성 셰프가 아주 드물다”면서 “하지만 정지선은 그 선을 넘어설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토록 실력 좋은 여성 셰프가 왜 ‘이제야’ 나온 것일까.

많은 요리 프로그램 중에서도 특히 ‘냉부해’는 15분 요리 대결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현석, 정창욱, 샘 킴, 미카엘, 김풍, 홍석천, 이원일, 박준우, 이연복, 오세득, 맹기용, 정호영, 레이먼 킴, 이재훈, 주배안, 박건영, 이찬오 등 20명 가까이 되는 남성 셰프들이 출연할 때, 여성은 1명에 그쳤다.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냉장고를 부탁해’에는 왜 남자 셰프들만 나올까?” “요리는 여자의 일이라면서 요식업계는 남자들의 것이 돼버린 걸까?”

 

 

JTBC 예능프로그램 ‘쿡가대표’ 제작발표회 당시 현장모습 ⓒJTBC 홈페이지
JTBC 예능프로그램 ‘쿡가대표’ 제작발표회 당시 현장모습 ⓒJTBC 홈페이지

 

올리브 ‘노 오븐 디저트2’에 출연했던 셰프들 ⓒ올리브 홈페이지
올리브 ‘노 오븐 디저트2’에 출연했던 셰프들 ⓒ올리브 홈페이지

이는 『여성 셰프 분투기-요리에 가려진 레스토랑에서의 성차별』(현실문화)을 쓴 텍사스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 데버러 A. 해리스와 패티 주프리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요리는 주로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는데, 왜 셰프의 세계는 남성이 장악한 것일까?” 이들은 ‘왜 여성 셰프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풀고자 유명 신문과 음식 전문 잡지의 레스토랑 리뷰를 비롯, 2206개의 셰프 프로필을 분석했다. 텍사스 일대의 여성 셰프 33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그들은 전문 요리계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은 “초기 셰프들은 자신의 업무와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요리 사이에 거리를 두기 위해 일부러 미식의 장 내 영향력 있는 단체에서 여성을 배척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남성 셰프는 지위와 정당성, 보상을 얻었고, 셰프는 남성적 활동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직종일지라도 일단 ‘여성의 일’이라 인식되면 평가절하는 기본에, 임금 또한 떨어진다. 이에 남성들은 전문 요리계를 ‘남성적인 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레스토랑 부엌에 존재하는 군사적 배경이 대표적 사례다. 그렇게 그들은 셰프의 세계를 ‘남성’의 것으로 만들었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도 전문 요리계는 여성에게 매우 냉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지선 셰프는 지난해 10월 월간 ‘호텔앤레스토랑’과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주방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여성에게 걸림돌이 된다. 출산하고 복귀하면 내 자리가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결혼·출산으로 여성들이 주방을 떠나는 걸 목격하면 안타까움이 앞선다고 말한 바 있다. 또 그가 중식의 길을 걷겠다 결심했을 때 주변에선 ‘여자가 중식 주방에서 뭘 할 수 있겠냐며 빨리 포기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고. 그의 증언을 통해 요리계 내 젠더 불평등을 엿볼 수 있다. 

정 셰프의 출연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셰프가 출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을 키워 여성 셰프 군단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한편 일각에선 ‘여성 셰프 출연’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조혜련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그동안 미디어에서 주목받는 셰프는 남성뿐이었고, 몇 년 간 ‘냉장고를 부탁해’에 여성 셰프는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다”면서 “이번에도 여성 한 명 나오고 끝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구색 맞추기로 여자 하나 끼워 넣는 건 의미 없다”며 “전체적으로 성비 격차를 조정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 교수는 “(정 셰프가)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대결하느라 실수하고 그 후에 약간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MC들이 그걸 보고 ‘새색시 같다’고 표현했다. 그건 정 셰프를 (남성과) 동등한 셰프로 보기보다는 단순히 ‘여성’으로 본 것 아닌가”라며 “그런 건 지양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냉장고를 부탁해’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프로그램 안에서 여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에 대해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세심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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