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이념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여당은 평화올림픽, 야당은 평양올림픽이라는 네이밍을 붙이면서 격돌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 18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가 유치한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만들면서 김정은이가 하고 있는 위장 평화 공세에 같이 놀아나고 있다”고 했다. 홍 대표는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을 포함한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 방한에 언론의 높은 관심이 쏠렸다는 것이 “평양올림픽이 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습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듯이 대화를 지키고 키우는 데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정치권과 언론도 적어도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일만큼은 힘을 모아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직접 수습에 나서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평창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평화까지 바라보고 있는 중장기적 구상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작용된 것 같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이후 자신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탄력을 받아 남북 대화 재개가 북미 대화로 연결돼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이 이념 공방에 따른 남남갈등으로 변질되면 기적처럼 다가온 남북 대화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더구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고공행진하던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60%대 급락한 것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인 것 같다. 특히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20~30대에서 조차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는 것도 대통령 행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젊은 세대층에서는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서 선수들 개개인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야당이 평창 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과도한 이념 공세적인 성격이 강하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지적처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고 북한 응원단이 왔으며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경기를 참관했지만 그 누구도 ‘평양 아시안 게임’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야당을 비판만 하지 말고 왜 평양올림픽 공방이 거세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차분히 성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김정은이 운전대를 잡고, 문 대통령은 조수석,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뒷좌석에 앉았다”고 보도한 것을 되씹어 봐야 한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이란 “특정 언어와 연계되어 연상되는 사고체제”이며 “사회·정치적 의제들에 대한 개인들의 경험과 태도는 언어 구조 안에서 프레이밍 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통상 프레임은 네이밍을 통해 만들어 진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정부 여당이 “평화 대 평창” 네이밍 전쟁에서 벗어나려면 야당에 반박하고 정면 승부를 하기 보다는 이를 무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 낡은 네이밍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보다 근원적인 해법은 여야가 여성성(性)에 입각한 리더십을 펼치는 것이다. 여야는 문제를 해결할 때 통상 ‘하드 파워’(hard power)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갈등과 대립만을 양상 할 뿐이다. 정부 여당이 올림픽을 앞두고 현송월에게 보낸 호의와 관심의 반에 반만이라도 야당에게 보냈다면 남남갈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당도 30년 만에 다시 개최되는 올림픽에 적극 협조하고 추후에 정부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엄중 책임을 묻는 유연하고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모든 것의 핵심은 근육질의 남성성에서 벗어나 따뜻함을 갖춘 여성성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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