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행복한 왕자』 속 게이 커플의 사랑을 읽다
[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행복한 왕자』 속 게이 커플의 사랑을 읽다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8.01.16 16:39
  • 수정 2018-01-17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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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행복한 왕자』 초판에 실린 삽화 ⓒ위키피디아
『행복한 왕자』 초판에 실린 삽화 ⓒ위키피디아

영화 ‘1987’은 두 명의 젊은 투사를 기억하는 진혼곡이다. 그리고 진혼곡은 내 안에 여러 명의 나를 불러냈다. 나는 박종철과 이한열의 살아남은 동무였고, 두려움과 의혹에 가득한 연희였으며, 종로거리를 함께 뛰었던 시민이었다. 그리고 죽은 자식의 얼굴을 한번이라고 더 만져보고 싶어 오열하는 어머니였다. 어머니, 그들의 어머니는 어떻게 사셨을까? 텍스트는 내가 변화되면서 다르게 읽혀진다. 영화 텍스트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다시 읽게 된 『행복한 왕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린 날 기억 속에서 『행복한 왕자』는 자신을 모두 내어주며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필자는 인간의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때론 멋진 여성에게 마음이 흔들리며 다양한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내게 『행복한 왕자』 텍스트는 다르게 읽혔다.

‘날씬한 허리를 가진 갈대에 매혹되었던 제비는 은빛 물결을 일으키며 여름 내내 갈대와 사랑에 나눴다. 그러나 강가에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갈대는 친척이 너무 많으며, 바람에게 추파를 던졌다. 게다가 모험보다 집에만 머물기를 원하는 갈대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갈대를 통해 가족 안에 갇혀있는 전통적 여성성을 비판하며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제비를 묘사하고 있다.

남성들로 묘사되는 제비와 왕자를 연결하는 매개는 ‘눈물’이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흘린 왕자의 눈물, 그리고 제비는 왕자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함께 세상을 사랑하는 일을 한다. 아픈 아이에게 오렌지 하나 사줄 수 없을 정도로 저임금에 시달리는 재봉사에게 왕자의 루비를 갖다 주고, 얼은 손을 녹이면서도 꿈을 꾸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청년 작가에게 왕자의 사파이어 눈을 갖다 주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성냥을 파는 소녀의 손에 왕자의 마지막 남은 사파이어 눈을 빼어 나눠 주었다. 그렇게 왕자는 장님이 됐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 순간 왕자를 통해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에는 비참함(misery)보다 신비한 것은 없어.” 제비는 그 말을 이해했을까? 왕자가 어둠에 갇히는 순간 그와 함께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들을 왕자에게 들려주었고, 왕자의 몸에 붙은 금박을 떼어내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죽음을 앞둔 제비는 왕자에게 손 키스를 할 수 있게 해달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제비야 내 입술에 키스를 하고 떠나거라. 난 너를 사랑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손 키스와 입술 키스를 대조시켜 그들의 사랑의 의미를 재확인한다. 제비는 마지막 힘을 내어 왕자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왕자의 발 옆에 툭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순간 납으로 만들어진 왕자의 심장도 고통스런 소리를 내며 두 조작으로 쪼개졌다. 이 도시에서 가장 소중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라는 신의 명령에 왕자의 심장과 죽은 제비가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신을 기쁘게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사회에서 명성을 얻은 극작가였지만 42세에 동성애 금지법 위반으로 2년간의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그는 감옥에서 조차 글을 쓰려고 했다. 프랑스로 건너가 몇 편의 글을 남겼지만 감옥에서 얻는 수막염으로 47세에 삼류호텔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은 그의 창조성을 죽이지 못했다. 지금 영국에는 동성애 금지법이 폐기된 지 오래됐고, 그를 위대한 문학가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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