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씨앗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금만 유전자 변형을 해도 미래세대까지 로열티를 받아낼 수 있는 수익의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기아해결의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씨앗산업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시키고 더 많은 기아인구를 만들고 있다. 기업의 상술에서 씨앗을 지켜 식량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배울토종씨앗포럼’이 마련됐다. 앞으로 가배울토종씨앗포럼 내용을 격주 연재한다.

 

토종 살림 운동의 현장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정성렬 달마지 마을 영농조합 법인 상무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토종 살림 운동의 두 현장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과 이름도 고운 전남 강진의 달마지 마을이다. 전여농은 다국적 기업들의 종자회사 인수합병, GMO 등으로 씨앗의 중요성을 깨닫고 토종씨앗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씨앗을 심고 거두는 중요한 역할들을 해왔음을 알게 되고 여성농민단체로서 이 운동을 적극 추진해 왔다. 달마지 마을은 전통적으로 동네 ‘아짐’들이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던 마을로 토종 씨앗으로 농사지은 농산물과 반찬들로 구성한 꾸러미사업으로 도시 소비자와 직거래하고 있다.

구례에서 매실, 감, 밤 등을 농사짓고 있는 정영이 전여농 사무총장은 “1980년대 노래 농민가는 ‘3000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던 날’로 시작하는데 그 때 1000만이었던 농민은 현재 5000만 인구 중 250만명이다”라며 그간의 농업의 위축과 농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80년대 수입 개방이 시작되고 87년 우루과이 라운드 때 농민들이 투쟁에 나서면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출범했다. 한 켠에서 여성농민들은 농사에 투여되는 노동시간, 노동강도는 높지만 농촌 현장에서 정책이나 교육은 남성 중심으로 이뤄지고 농기계도 남성 위주로 만들어지는 등 여성농민을 농업 주체가 아닌 보조적 수단으로 보는 불평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89년 전여농을 만들었다.

전여농이 토종씨앗 살리기 운동을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세계적인 자유무역으로 농산물이 수입, 개방되고 다국적 기업들이 종자회사를 합병하고 GMO 문제 등 2000년대 이후 국내 조직과 연대만으로는 농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면서 국제사회에서도 연대활동을 벌여왔다. 2004년부터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농민의 길)라는 국제적인 소농조직과 연대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토종 종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정 사무총장은 70, 80년대까지도 농민들이 채종을 했다고 한다. 농부는 죽을지언정 종자는 베고 죽는다고 할 정도로 농민에게 종자는 중요하다.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맞는 토종 종자들이 있었는데 70년대 정부 주도로 통일벼, 유신벼를 심으면서 500여종이 넘는 우리 토종 벼들도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홍농종묘 중앙종묘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묘회사들이 있었지만 IMF 때 홍농종묘 중앙종묘는 미국의 몬산토 코리아로 넘어갔고(1998) 서울종묘는 스위스의 신젠타(1997), 청원종묘는 일본의 시카타(1997)에 넘어갔다. 우리나라 종자지만 로열티를 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청양고추도 우리나라의 종자지만 다국적기업에게 로열티를 내야한다. 또한 씨앗과 모종은 죽지 않도록 종자 때부터 농약으로 소독해 종묘상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 씨앗을 받아 다음 해 심으면 발아가 되지 않는데 이는 계속해서 종자를 팔기 위해서다. 세계 10대 종자기업이 종자 점유율 74%를 차지하며 독점하고 있다.

우리나라 종자산업법에는 농민이 종자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러한 법을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 농민들은 종자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농민에게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종자의 권리를 농민에게 돌려달라는 내용의 세계농민인권선언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것이 유엔에서 채택되도록 전여농과 비아 캄페시아가 노력하고 있다.

그간 토종씨앗을 살리기 위해 실태조사, 1명이 1품종의 토종씨앗 지키기, 토종씨앗 채종포 운영, 토종씨앗축제, 토종씨앗 나눔, 토종씨앗 10년의 자료집 발간 등 다양한 사업들을 벌여왔다. 전여농 실태조사에서 토종씨앗은 할머니들이 대를 물려 종자들을 갖고 있었다. 저마다 사연도 있었다. 한 할머니는 “흰팥을 친정어머니가 시집올 때 주었는데 그 이유가 너희 시댁에 제사가 그리 많은데 언제 그 제사에 하얀 계피를 내서 떡을 하겠느냐, 흰팥으로 해라 하시며 주셨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토종씨앗은 여성들이 가장 좋은 씨앗만을 알뜰히 골라 내년에 심어서 더 좋은 종자를 채종하고 또 심고 그래서 할머니의 할머니 대에서 딸과 며느리에게로 전해져 내려온 종자라는 것이다.

토종 작물의 직거래 사업으로 ‘언니네 텃밭’을 통해 꾸러미사업도 하고 있다. 토종쌀, 토종으로 하는 다양한 농산물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토종농사가 10년이 돼가니 판매가 가능할 만큼의 양이 나오고 있다.

 

정성렬 달마지 마을 영농조합 법인 상무
정성렬 달마지 마을 영농조합 법인 상무

달마지 마을

달마지 마을은 전남 강진에 있으며 월출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이 마을 아짐들은 대대로 토종씨앗으로 소규모 농사를 지어 왔다. 정성렬 달마지마을 영농조합법인 상무는 현재 마을에 65가구 117명이 살고 있는데 70세 이상이 70%이며 50대는 없고 지난해에 4명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마을에서 자신이 막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대대로 농사짓던 토종 작물들을 자신들이 먹고 자식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 농사짓고 내년 농사를 위해 씨앗들을 받아왔다. 마을에서 심고 있는 토종들은 강낭콩, 완두콩, 오이, 녹두, 참깨, 옥수수, 땅콩, 마늘, 쪽파, 대파, 콩나물콩, 시금치, 메주콩, 약콩, 서리태, 팥, 돈부(동부), 파란콩, 들깨, 상추, 조, 수수, 갓, 검정깨, 도라지, 당귀, 둥글레, 쑥갓, 유채 등 30여 종이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촌한 정 상무는 마을에 온지 1년 정도가 됐고 연로하신 동네 분들이 많은 달마지 마을에서 영농조합의 실무적인 일들과 작년에 사회적기업이 된 달마지 마을의 반찬작업장 지기도 맡고 있다. 달마지 마을은 손수 농사지은 토종 작물, 토종 콩으로 담근 된장과 간장, 반찬류 등으로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의 소규모 직거래인 꾸러미사업도 하고 있다. 토종씨앗 포럼을 진행하는 가배울은 토종농사 문화를 살리기 위한 문화단체로 달마지 마을을 2013년부터 지원하고 있으며 이곳의 꾸러미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정 상무는 “지금의 70, 80대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고 10년에서 20년이 지나면 마을이 공동화될 것이다. 누가 이 땅을 지킬 것인가 막막하다”고 했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아짐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들이 지어온 토종농사, 종자도 사라지고 오랜 농사 문화, 음식 문화, 이를 지속시켜 온 여성들의 오랜 삶의 지혜도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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