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특정집단 혐오로 불안 해소하려는

전세계적 퇴행 속 페미니즘 부상

연대·확장 없는 운동, 정당화 어려워

차이 넘어 공동 목표·전략 논해야

페미니즘 대중화하려면 

‘강강강’만 할 순 없어

다양한 페미니즘 관한 글·논문 나오길

 

“페미니즘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중요한 건 차이를 넘어 어떤 공동 의제를 갖고 운동할지 끊임없이 소통하고 논쟁하는 일이다.” 이현재 교수는 인터뷰 동안 거듭 이렇게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즘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중요한 건 차이를 넘어 어떤 공동 의제를 갖고 운동할지 끊임없이 소통하고 논쟁하는 일이다.” 이현재 교수는 인터뷰 동안 거듭 이렇게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논쟁은 치열했고, 상처는 깊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의 말대로다. 2015년 본격 등장한 ‘뉴 페미니즘’은 이제 “페미니즘 트러블”로 번졌다.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페미니스트들은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무엇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즘이냐’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차성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한편에선 ‘래디컬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우린 여자만 챙긴다. 다른 소수자 안 챙긴다”는 구호가 득세하고 있다. 

“연대했던 ‘우리’ 페미니스트가 ‘그들’이 되었다. 페미니즘들 간의 트러블은 물론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페미니즘‘들’이었다.” 이 교수가 『여/성이론』 2017 겨울호에 발표한 글의 일부다. 그는 입장이 다른 뉴 페미니스트들과 의견을 나누고,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토론하고 연대할 공론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2일 서울시립대에서 만난 이 교수와 최근 이슈들에 관해 세 시간가량 얘기를 나눴다. “이 소란스러운 논쟁이 아프지만, 나쁘지만은 않다”고 그는 말했다.

- 2017년이 ‘페미니즘의 해’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만, 반발도 거센데요.

“전 세계적인 퇴행이 있었죠. 시대의 불안을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써 해소하려는 심리 말입니다. 그런 퇴행이 있었기에 곳곳에서 페미니즘이 부상한 게 아닐까요. 슬픈 일이죠.”

- 성평등을 이야기하면 ‘이미 다 이뤄진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솔직히 진보를 자처하는 한국 중년 남성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봤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자신이 지금 새로이 떠오른 페미니즘의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겁니다. 이들은 민주혁명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의 삶 속에서 어떻게 페미니즘과 민주주의를 함께 이룰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옛 주장을 반복하려 듭니다. 혁명 정신의 생명력이 다한 것, 그게 꼰대죠.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달라요. 진지해요. 인터넷 세상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뉴스와 논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어떤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강단에서 체감하기론, 남학생들이 페미니즘에 참 관심이 많아요. 이들은 기존의 ‘남성성’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불편한 껍질로 여기는 듯합니다. 세대교체랄까요. 페미니즘이 남성들에게도 ‘내가 ‘남성성’을 강요당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현재 교수의 저서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들녘, 2016) 표지. ⓒ들녘
이현재 교수의 저서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들녘, 2016) 표지. ⓒ들녘

‘김치녀’엔 ‘한남충’, ‘꽃뱀’엔 ‘방울뱀’으로 되받아치는 페미니스트들의 ‘미러링’은 무심히, 습관적으로 오가는 말들 속 여성혐오를 까발리고 조롱했다. ‘통쾌한 전략’으로 평가받았지만,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 모든 여성은 순수한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집단 이미지도 낳았다. 이는 “경계를 긋는 것에 집착”하는 태도이며, “여성 개인 혹은 여성 집단 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망각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이 교수는 비판했다(『여/성이론』 2017 겨울호 특집기획 중). 그가 저서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들녘, 2016)에서도 제기한 문제다. “나는 현재 여성혐오가 담론화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은 또 다른 강력한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성적 대상화에 대한 비판은 강력한 규제주의나 성 엄숙주의로 치닫는 것 같았다. 비판을 추동하는 분노의 감정에는 정치·경제적 측면에 대한 고려나 집단 내부의 차이를 배려할 여유도 없어 보였다.”

 

지난 2일 서울시립대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현재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일 서울시립대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현재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최근 ‘남성 페미니스트는 불가능하다’며 남성을 페미니즘 운동에서 배제하려는 태도도 눈에 띕니다. 뿌리 깊은 여성혐오에 맞서려면 직접적인 여성혐오의 타겟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 운동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요. 

“어떤 운동도 연대, 확장의 방식이 아닌 한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즘 페미니즘 논쟁은 누가 더 피해자인가 또는 누가 진짜 페미니스트인가를 증명하는 데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를 가려 나머지를 제외하려는 방식이죠. 이 시대의 페미니즘 담론이 ‘피해자 담론 선점하기’가 돼 버린 듯해 아쉽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상처가 깊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미러링은 너무 나쁘다’라는 말을 들으면 ‘왜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봐라’라고 해요. 여성들이 왜 그리 힘들게 소리치고, 악착같이 미러링을 하게 됐는지부터 생각해보라고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상처받았다’고만 반복하는 게 효과적인 전략일까요? 사회적 약자, ‘무력하고 나약한 피해자’의 위치만을 강조할 뿐이죠. 피해자의 위치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보지도 보여줄 수도 없다고 봅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동일성에만 집착하며 경계를 긋고 다른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페미니즘? 개인적으로 그런 건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진짜 페미니즘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죠. 페미니즘은 어쨌든 결코 단일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도, 어디까지 합의하고 어떤 공동 의제를 갖고 운동할지를 끊임없이 소통하고 논쟁하는 겁니다.”

- 소통과 논쟁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논쟁 이전에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살피는 자세, 공감(co-feeling)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요즘 온라인 공방 속에선 그런 자세를 찾아보기 어려워요.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니가 옳냐 내가 옳냐’ 식 소모전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감정적 격돌이 극심하죠. 반권위·반지성·반도덕주의적 태도도 눈에 띄고요. 기존 남성중심적인 도덕과 권위에 반대한다면서, 정작 자신들의 미래를 정당화할 규범 언어를 만들지 못한다면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제에 합의하거나 동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안티 페미니즘’ 같은 공동의 적을 확인하고, 우리는 언제 어떤 전략으로 나가는 게 효과적인지를 함께 논쟁하고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러링 같은 자극이 한두 번일 땐 효과가 크지만,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려면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작업도 필요하잖아요. ‘강강강’만 할 순 없죠. 균형의 문제입니다.”

- 온-오프라인과 세대, 입장 차이를 넘어 여러 페미니스트들을 잇는 플랫폼 ‘페미광장’이 지난해 탄생했잖아요. 이 공론장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셨는데요.

“페미광장은 중지 상태예요. 2030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을 빨리 주류 학계, 선배 페미니스트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기도 했고, 2030에겐 페미니즘의 뿌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며 계보를 잇고 싶었는데.... 어려운 문제죠. 솔직히 제가 오만했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이런 때에 다양한 페미니즘의 입장에 관한 글과 논문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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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womennews.co.kr/news/129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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