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가난 악순환 끊는 해법은 ‘교육’이에요”
“질병·가난 악순환 끊는 해법은 ‘교육’이에요”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1.10 18:13
  • 수정 2018-01-16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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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국경없는 교육가회 대표

2018 학부모가 뽑은 교육브랜드대상 교육부장관상 수상

무지·질병·가난 악순환

고리 끊는 해법은 ‘교육’

교육못받고 돌봄노동에

내몰린 아프리카 여성들

‘물고기 잡는 법’ 알려줘

“여성이 교육받으면

가정·마을·국가 달라져”

 

김기석 국경없는 교육가회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기석 국경없는 교육가회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부르키나파소. 인구 1800만명, GDP는 131억 달러로 세계 122위(2017 IMF 기준)인 이 나라는 꼭 6·25 전쟁 직후 한국처럼 가난하다. 미국과 프랑스의 원조에 국가재정을 의존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름조차 낯선 이곳을 제2의 고향을 삼아 1년에 3~4개월씩 머무는 한국인이 있다. ‘국경없는 교육가회(EWB·Educators Without Borders)’를 이끄는 김기석(70)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수십 년 동안 교편을 잡으며 교육자를 키운 그는 2013년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정년퇴임 후 지구 반대편에서 새로운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국경없는 의사회를 본보기 삼아 현지 전문가, 교육자들과 함께 비영리단체 국경없는 교육가회를 만들었다. 국외 교육원조를 표방한 국내 첫 NGO다. 교육이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해법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새 10년이 됐다. 그 사이 부르키나파소 곳곳엔 김 대표와 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남긴 발자취가 새겨졌다. 교육가회 지부가 생기고, 5개의 문해교육센터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글을 배우고 기술을 익히며 이들의 자립을 지원한다. 10년간의 봉사와 단체 활동을 인정받아 김 대표는 여성신문이 주최하는 2018 학부모가 뽑은 교육브랜드대상 ‘교육부장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이런 큰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라는 감사 인사로 소감을 대신했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그의 왼쪽 옷깃에 뱃지가 눈에 띄었다. 빨간색과 초록색, 별무늬가 어우러진 부르키나파소 국기 모형이었다. 2012년부터 주한 부르키나파소 명예영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명예 부르키나파소인’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김 대표가 건넨 명함도 독특했다. 명예영사라는 소개와 함께 그의 이름이 Ki-Seok “Korbil” KIM이라고 적혀 있었다. 알고보니 ‘코빌’은 아프리카에서 김 대표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코리아 빌 클린턴’을 줄여 부른 말이란다. 그러고 보니 닮은 듯 했다. 은발에 하얀 피부, 큰 키에 호탕한 웃음까지…. 특히 그는 올해 일흔인 나이가 무색할 만큼 인터뷰 내내 에너지가 넘쳤다. 1년에 3~4개월은 아프리카 등 해외에 있을 만큼 바쁘지만 지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2월에도 그는 부르키나파소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김 대표는 1972년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85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이라는 한 길을 걸었다. 그는 가나안농군학교 개척자인 일가 김용기 선생의 둘째 사위로, 김찬란 서울여대 교수의 남편이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농촌지도자 교육을 받는 등 농업에 대한 관심도 컸다. 그러던 그가 정년퇴임 후 서아프리카로 눈을 돌린 것은 우연히 부르키나파소 아이들을 만나면서다.

“2007년 1월에 회의에 초청받아 부르키나파소에 처음 갔어요. 거기서 어린 아이가 제게 물 한 그릇을 대접했는데 그 아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참 아프더군요. 그 길로 교육 입양을 했죠. 벌써 그 녀석이 커서 바칼로니아를 하고 의과대학을 간다고 할 만큼 컸어요. 쌍둥이 손녀들은 공무원,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이 환해졌다. 김 대표는 “왜 그렇게 부르키나파소에 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참 매력이 있다, 묘하게 향수가 느껴지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과거 60~7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닮아있는 나라라고 했다. 거리는 먼지가 풀풀나는 흙바닥이고 먹을 것도 부족하다. 하지만 교육열만큼은 한국 못지 않게 뜨거운 곳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와 참 비슷해요. 보존자원도 없고 돈 벌이는 가까운 코트디부아르에 가서 일해서 벌어와요. 그 돈이 국부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에요. 또 하나 무엇을 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또 해낸다는 게 닮았어요.”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정부나 자치단체, 기업의 지원금을 토대로저개발국 주민들의 빈곤 탈출을 돕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 읽고 쓰는 문해교육을 통해 글을 깨친 주민들에게 비누 만들기와 양계 같은 기술 교육과 소액대출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유도한다. 부르키나파소는 불어가 공용어이지만 현지 부족어가 60개에 달해 같은 나라 국민이라도 통역 없인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현지 부족어를 가르친다.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문해교육을 받았다. 그 가운데 학생에서 교사가 된 이들도 있다. 꾸준한 문해교육 활동은 지난 2014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수여하는 세종 문해상(Literacy Prize) 한국 기관 최초로 받으면서 그 효과가 입증됐다. 유네스코 세종문해상은 문해를 통해 발전에 기여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특히 김 대표는 여성들이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곳에선 땡볕 아래에서 아이를 업고 일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어요. 이들에게 ‘글을 깨치면 스스로 길을 열 수 있다’고 말해요. 지금의 한국은 어머니, 할머니들이 공부해서 이뤄냈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요. 한국이 처음부터 부국인 줄 알았던 거에요. 실제로 여성들이 문해교육과 기술교육을 받고 돈을 벌게 되면 집 안에서도 목소리를 내게 돼요. 그럼 집안 분위기가 달라져요.”

저개발국가는 뿌리 깊은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인해 교육과 노동시장, 공적영역에서도 불평등을 심각하다. 특히 돌봄노동에 발이 묶여 교육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 뿐 아니라 그들의 가정을 넘어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김 대표도 “10년간 활동하면서 개발의 원동력은 여성이라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젠더 이슈에 대해 한국에서보다 그곳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어요. 여성 한 명이 교육을 받으면 그 가정이 바뀝니다. 사회적인 관계가 바뀌는 거죠. 실제로 남성들이 달라져요. 아내가 글을 배우고 비누 만들기나 양계에 대해 알아오면 그것을 남편에게도 전해주면서 남자들도 배우고 일하는 것에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되는 거죠. 자연스레 부부싸움도 줄어들고요.”

 

자녀와 함께 문해교육을 받는 부르키나파소 여성. ⓒ국경없는 교육가회
자녀와 함께 문해교육을 받는 부르키나파소 여성. ⓒ국경없는 교육가회

김 대표는 교육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글을 깨우친 여성들에게 소액의 자금을 융자해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주는 일이다. 한 가구당 최대 100달러씩 빌려주는데 대출금 회수율이 95%에 이른다고 했다. 김 대표는 여성들의 자립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펼친 이 프로그램을 ‘가파(GAPA, Global Alliance for Poverty Alleviation) 프로젝트’로 이름 지었다. 우리 말 발음 ‘갚아’와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했다. 이는 원조 받던 나라가 이제 ‘갚는’ 위치, 곧 주는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됐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 프로젝트가 세계로 전파되는 성공적인 ‘한국형 원조모형’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국경없는 교육가회의 목표이기도 하다.

현재 아프리카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단체는 이제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 아시아로도 외연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부르키나파소에선 이른바 ‘출구전략’을 써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국경없는 교육가회가 없이도 주민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구축해놔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주민들을 지원한다.

김 대표는 국제개발협력을 “산파술”에 비유했다. “산모가 아기를 낳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산파의 역할처럼 저개발국가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주는 것이 국경없는 교육가회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김기석 대표는 1년 3~4개월은 부르키나파소에서 생활한다. ⓒ국경없는 교육가회
김기석 대표는 1년 3~4개월은 부르키나파소에서 생활한다. ⓒ국경없는 교육가회

최근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여성들에게 비누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직접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본격적인 시도다. 부르키나파소는 비누와 핸드크림의 원료로 유명한 시어버터 원산지다. 시어버터는 서아프리카에서는 식용으로 사용할 만큼 안전하고 자외선 차단 효과와 보습 효과가 탁월해 미용용품에 널리 쓰인다. 프랑스 유명 브랜드 록시땅도 이곳에서 생산한 시어버터로 핸드크림을 생산하고 있다.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자립을 원하는 여성을 돕기 위해 창업센터를 개설하고 부르키나파소 여성들에게 비누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시어버터의 원재료인 까리테를 돌 위에 올리고, 나무를 때서 불을 지피고 끓인다. 여기서 기름을 짜내 걸러내는 과정을 거치면 비누가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한 비누는 ‘싸봉 부르키나베’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이돈아 작가가 패키지 디자인을 재능기부했다. 부르키나파소 지역의 대기업 CEO의 아내인 제네바 카나조에와 전 국회의원인 나레가 이 비누를 구입해 국경없는 교육가회에 기부하고 이를 단체가 한국에 운반해와 판매할 예정이다. 생산부터 운반, 포장, 디자인의 전 과정이 여성의 손으로 이뤄진 비누다. 김 대표는 “모양은 투박하지만 정말 특별한 비누”라고 말했다. “비누는 수공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향이 없고 모양도 일정하지 않고 색소도 넣지 않아 색도 누래요. 우리 단체가 부르키나파소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 비누를 사서 한국으로 가져오면 필요한 분에게 판매할 생각입니다. 판로 확보가 쉽지 않지만 특별한 비누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거에요. 비누 하나로 아프리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습니다.”

 

김기석 대표

△1948년생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학사·석사과정 졸업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교육정책연구학 박사과정 졸업 △1985~2013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2007년~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대표이사 △2012년~ 주한 부르키나파소 명예영사 △2012년 부르키나파소 국가기사훈장 수훈 △2015~2017년 서울여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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