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 화려한 드레스 대신

검은 색 의상으로 등장 

‘미투’ 캠페인·‘타임스 업’ 언급

여성감독·진실 고발 필요성 주장'

최초 흑인여성 공로상 오프라 윈프리

“새로운 시대” 수상 소감 화제

 

흑인 여성 최초로 세실 B.데밀상을 수상한 오프라 윈프리. 수상소감 영상 캡처. ⓒgoldenglobes.com
흑인 여성 최초로 세실 B.데밀상을 수상한 오프라 윈프리. 수상소감 영상 캡처. ⓒgoldenglobes.com

올해로 75회를 맞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미국의 여성 영화인들이 시상식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지난 해 할리우드를 휩쓴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 캠페인 이후 치러진 이번 시상식의 레드 카펫과 단상의 테마는 ‘여성들의 연대’이었다.

레드카펫에 등장한 영화인들은 이전의 화려한 드레스 대신 검은색 의상을 입고 여성운동가나 NGO 활동가들과 함께 등장했고 가슴에는 ‘타임스 업’(Time’s Up)이 인쇄된 배지를 달았다. ‘타임스 업’은 할리우드의 여성 영화인 300여명이 1300만 달러(약 139억 원)의 기금을 모아 미국 사회의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1일 출범시킨 단체다. 이들과의 인터뷰도 기존의 통상적인 패션에 대한 질문보다 미투 캠페인에 대한 언급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상식 내내 지속됐다. 특히 시상자 및 수상자로 나선 여배우들의 소감이 큰 화제를 모았다.

‘핸드메이즈 테일’로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모스는 이 작품의 원작자인 캐나다의 페미니스트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는 ‘우리는 신문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신문 가장자리 여백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우리를 더 자유롭게 했다. 우리는 이야기 사이의 공백 속에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작품 속 문장을 인용하며 “우리는 더 이상 여백에 살지 않고 이야기 사이 공백 속에 살지도 않는다. 우리는 기록된 이야기이며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마거릿 앳우드, 이 상을 당신과 당신의 이전, 이후의 모든 여성들에게, 이 세상의 부당함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고 평등과 자유를 위해 투쟁한 용기 있는 여성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 시상자로 나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수상작의 성차별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무대 뒤편에서 내가 골든글로브의 유일한 감독상 수상자라는 말을 들었다”며 “여러분도 알다시피 34년 전인 1984년의 일이다. 이제 시간이 됐다(Time’s Up)”라고 외쳤다. 그는 “진실은 강력하며 좋은 영화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진실을 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감동을 주며 궁극적으로 사회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강력하다”면서 좋은 영화를 위해 더 많은 여성 감독을 후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감독상 후보 소개자로 나선 나탈리 포트먼은 올해 이 부문에 여성 후보가 한 명도 없는 점을 지적하며 통상적인 정리 멘트 대신 “자, 이제 모두 남성인 감독상 후보는”이란 말로 소개 멘트를 마무리하는 재치를 보였다.

‘쓰리 빌보드’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시상식에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일을 하러 왔다”며 화려한 드레스에만 주목하는 인식의 개선을 요구하고 “함께 후보에 오른 동료 배우들에게 데킬라를 살 테니 내 이름으로 주문하라”고 말했다.

 

지난 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참석한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의 성폭력에 맞서는 의미에서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해 연대를 표했다. 이날 뮤지컬·코메디 TV 부문 작품상을 받은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슬(The Marvelous Mrs. Maisel)’의 에이미 셔먼 팔라디노(Amy Sherman-Palladino)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Paul Drinkwater/NBC via AP·뉴시스
지난 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참석한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의 성폭력에 맞서는 의미에서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해 연대를 표했다. 이날 뮤지컬·코메디 TV 부문 작품상을 받은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슬(The Marvelous Mrs. Maisel)’의 에이미 셔먼 팔라디노(Amy Sherman-Palladino)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Paul Drinkwater/NBC via AP·뉴시스

TV미니시리즈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빅 리틀 라이즈’의 로라 던은 “많은 사람들이 고자질하지 말라고 배웠고 그로 인해 침묵하는 문화가 정상이 됐다”면서 “정의 회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피해자를 지지하는 것 뿐 아니라 용기 있게 나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우리 문화의 새로운 북극성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니콜 키드먼은 호주에서 여성 인권을 위해 일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며 “어머니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한 후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길 믿고 바라며 이러한 담론이 계속되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한 ‘빅 리틀 라이즈’의 제작을 맡은 리즈 위더스푼은 “침묵을 깨고 성폭행과 성희롱을 고발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리며 여러분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응원했다. 또한 성희롱과 차별 학대를 당한 사람들에게 ‘시간이 됐다’고 말하며 “우리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그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결의를 전했다.

이날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은 주인공은 흑인 여성 최초로 세실 B.데밀상(공로상)을 받으며 새로운 역사를 장식한 오프라 윈프리였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최근 할리우드를 휩쓴 성추행 파문과 ‘미투’ 캠페인을 언급하고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모든 소녀들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새로운 날이 밝아올 때 그 날은 많은 여성들 때문이고 많은 사람들이 어느 누구도 ‘나도’(Me, too)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동적인 수상소감 후 SNS에선 윈프리를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항할 후보로 밀자는 의견이 일기도 했다.

이번 골든글로브는 시상식 전 작품상 및 감독상 후보에 여성감독이 한 명도 없는 등 성차별적 후보작 선정으로 여성계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여성 영화인들의 연대로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스트적’인 시상식으로 탈바꿈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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