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버럭 엄마와 평화주의자 딸의 유럽 공연 축제 여행] 뮌헨의 일요일
[까칠버럭 엄마와 평화주의자 딸의 유럽 공연 축제 여행] 뮌헨의 일요일
  • 박선이 동서대 객원교수
  • 승인 2018.01.09 18:08
  • 수정 2018-01-23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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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도시에서

보낸 뜨거운 일요일

“모녀 여행의 성패는

나이 차, 취향 차에서

오는 긴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바이에른왕의 공식 주거지였던 레지덴츠 궁. ⓒ박선이
바이에른왕의 공식 주거지였던 레지덴츠 궁. ⓒ박선이

여름의 뮌헨은 초록 천국이다. 높푸른 하늘에 서늘한 날씨는 어느 곳을 가든 기분 좋은 하루를 허락한다. 오전 9시 전 시내 도착을 목표로 마음먹고 나섰다. 문제의 1989년 판 『세계를 간다』에 일요일은 뮌헨 시내 모든 미술관이 무료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 여행 때 미술관, 박물관, 궁전 입장료는 상당히 부담된다. (영국은 그 점에서 최고다. 공공 박물관, 미술관은 모두 무료. 단, 출입문 정면에서 방문객을 노려보고 있는 커다란 기부금 통의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 그런데 일요일은 무료라니! 적어도 서너 곳은 훑고야 말리라!

결론부터 말하면, 무료는 없었다. 바이에른왕의 공식 주거지였던 레지덴츠 궁도, 화가의 아틀리에 자리에 세운 렌바흐하우스 미술관도, 일반 입장료를 그대로 받았다. 그래도 옛 정보가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미술관 지역 정도로 번역하면 좋을 쿤스타레알(Kunstareal) 지역에 몰려있는 바이에른 국립회화컬렉션(Bayerische Staatsgemäldesammlungen) 소속 미술관 다섯 곳, 알테 피타코테크(Alte Pinakothek)와 노이에(Neue) 피타코테크, 피타코테크 모데르네(Moderne), 브란트호어슈트(Brandhorst) 박물관, 샤크미술관(Sammlung Schack)은 각각 4~10유로의 입장료를 일요일 하루만 1유로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레지덴츠 궁을 휘리릭 둘러본 뒤 쿤스타레알로 갔다. 먼저 알테 피타코테크에 도전했다. 건물의 1층 부분은 노란색 사암으로, 2층 부분은 벽돌로 치장한 건물은 독일 건축 특유의 건실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미술관 주위는 미술관 보다 훨씬 더 넓은 잔디밭. 그야말로 하얗게 햇빛이 부서지는 잔디밭에는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거의 다 벗은 채 담요 위에 누워있다. 저렇게 뜨겁고 밝은 데서 책이 읽어질까? 신통하게 다들 책을 한 권씩 들고 있다.

 

1층은 노란색 사암으로, 2층 부분은 벽돌로 치장한 알테 피나코테크 건물. 독일 건축 특유의 건실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박선이
1층은 노란색 사암으로, 2층 부분은 벽돌로 치장한 알테 피나코테크 건물. 독일 건축 특유의 건실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박선이

알테 피나코테크의 ‘얼굴’은 알브레히트 뒤러(Dürer)다. 흔히 ‘예수님 얼굴’이라고 알려진, 갈색 장발의 미남 초상화는 뒤러가 28세 때인 1500년 그린 자화상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길과 자신감으로 충만한 표정에서 자신을 ‘거룩한 얼굴’(Holy Face)로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뒤러의 자화상 부제는 ‘28세’. 그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셀카를 찍는다. 뒤러의 표정을 따라 해보지만, 그 눈빛은 흉내 낼 수가 없다.

모녀 여행의 성패는 어쩔 수 없는 나이 차, 취향 차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뒤러나 루벤스의 눈빛 따윈 별 재미없다는 표정이 딸의 얼굴에 점점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을 무시했다가는 수습하기 어려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빨리 비무장 지대(다른 말로 하면, 카페)로 피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알테 피나코테크가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라 카페가 없었다.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안뜰 ⓒ박선이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안뜰 ⓒ박선이

길 건너 렌바흐하우스 미술관으로 갔다. 노이에 피나코테크도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 전에 짜증과 피곤이 폭발하는 사단이 날 수도 있다(너무 더웠다!). 렌바흐하우스는 19세기 말 뮌헨에서 활동한 화가 프란츠 폰 렌바흐(Lehnbach)의 아틀리에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겨자색의 로마네스크 건물이다. 엄숙 고상 정숙한 알테 피나코테크와는 공기부터 다르다.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은 초록색 나무들이 가득하고, 분수가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준다. 20세기 초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칸딘스키 등 표현주의 작가로 이뤄진 청기사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낯익다. 칸딘스키의 ‘구성’, ‘말 위의 연인’, ‘낭만적 풍경’ 등 25점을 비롯해 청기사파 작품이 약 400여 점 전시돼 있다. 렌바흐하우스가 미술관으로 지켜진 것, 칸딘스키와 청기사파의 그림이 하나의 사조로 유럽 회화사에 살아남은 것은 칸딘스키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가브리엘레 뮌터의 공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뮌터의 자화상, 초상화, 풍경화 등 130점이 10여년 만에 전시되고 있다.

 

뮌헨 구시가의 중심 오데온플라츠. 한 여름에는 가설 카페가 운영된다. ⓒ박선이
뮌헨 구시가의 중심 오데온플라츠. 한 여름에는 가설 카페가 운영된다. ⓒ박선이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정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었다. 겨자색 기존 건물 옆으로, 현대적인 금빛 건물이 붙어있다. 애플 사옥을 디자인한, 영국 출신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작품이다. 기존 건물, 정원에 비해 분명 현대적이지만 일맥상통하는 흐름이 있다. 옛것과 새것이 서로 생명을 주고받으며 도시의 맥락을 키워간다.

렌바흐하우스에서 그림 구경, 뜰 구경, 미술관 구경을 하다 보니 다른 곳에 갈 시간이 없다. 하늘은 새파랗고, 아직도 대낮 같은데 피나코테크 모데르네 뜰에 설치한 키오스크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럴 때 “너 때문에 못 갔잖아~”하면 안 된다. 비키니 차림으로 잔디밭을 뒹구는 게으른 쟤네들에 비하면 우리 딸,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해야 여행길, 인생길이 순탄하다. 순탄함을 더하기 위해, 우리는 시내의 호프브로이하우스로 갔다. 10월이면 맥주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안마당에 자리 잡고 독일식 돼지족구이와 흰소시지, 맥주를 시켜서 한 잔 마신다. 순간,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핫, 우린 차양 아래 앉았다구요!

 

호프브로이하우스 안뜰 ⓒwww.hofbraeuhaus.de
호프브로이하우스 안뜰 ⓒwww.hofbraeuhaus.de

TIp. 뮌헨 미술관·박물관 순례

1506년 통일 바이에른 왕국이 수립된 이래 뮌헨은 정치와 경제, 예술 모든 면에서 독일 최고의 도시였다. 알테·노이에 피나코테크는 1836년 개관했다. 바이에른 국립회화컬렉션 산하 다섯 개 미술관은 소장 작품의 시기별로 특성을 보인다. 알테 피나코테크는 독일 르네상스 회화를 중심으로 루벤스와 브뤼겔, 홀바인 같은 네덜란드 화가, 프라고나르, 푸생 등 프랑스 화가 등 16~18세기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고야에서 피카소까지’를 슬로건으로 내건데서 보듯, 19세기 개관 때 유럽 최초의 현대미술관이었다. 피타코테크 모데르네는 전 세계에서 20~21세기 미술과 건축, 디자인 종합 미술관으로는 가장 큰 미술관이다. 샤크미술관은 19세기 미술품으로, 브란트호어슈트 미술관은 앤디 워홀과 사이 톰블리, 브루스 나우만, 다미엔 허스트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쿤스타레알 지역에는 이들 다섯 개 미술관 외에도 렌바흐하우스 미술관, 고대 그리스 로마 예술작품을 소장한 글립토테크, 이집트 박물관, 국립골동품박물관이 모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이들을 하루에 다 보는 것은 무리. 취향에 따라 두 곳 정도 고르는 게 좋다.

뮌헨 구 시가지를 지나 이자르 강 위에 있는 박물관 섬도 가볼만하다. 세계 최대의 과학 기술 박물관인 독일박물관이 알타미라 동굴, 아마추어 라디오부터 항공우주기술까지 다양한 분야를 전시하고 있다. 문화박물관, BMW박물관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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