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기본계획의

성평등 관점 부재는

개발독재시대 이후

적폐의 구조적 산물

 

 

‘적폐청산‘을 놓고서 ‘나라 바로 세우기 대 정치보복’ 이라는 관점이 대립하고 있다. “나만 그랬냐? 너희도 마찬가지다”식의 양비론으로 맞서는 집단은 정치보복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검찰, 국정원, 기무사 등 공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기관을 마치 개인 심부름센터 수준으로 부려먹었던 과거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적폐청산 관련 사회적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보겠다. 동시에 사회 각 영역에서 적폐의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대통령과 주변권력의 말 한마디로 폐쇄된 개성공단, 자원외교·방산비리·4대강 파헤치기로 날아간 수십조원의 국고, 권력만 잡으면 한 몫 하겠다고 덤벼드는 탐욕과 가렴주구의 낙하산 인사와 채용비리 등 수많은 예가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큰 적폐는 ‘사람을 도구화’한 한국사회 구조와 의식이다. ‘조국 근대화’를 내세우면서 밥벌이가 된다면 뭐든지 허용하고 받아주는 사회가 됐다. 법과 규정, 인권, 윤리도덕, 환경 등은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로 밀려났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긴 하지만, 보릿고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방법은 ‘싸우면서 건설하던’ 곳에서 찾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었다.

이미 1950년대에 런던 스모그와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상징되는 환경 파괴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1960년대 핵전쟁의 위기와 베트남전의 무의미함을 보면서 친환경 평화지향적 체제 구축을 통한 남북경쟁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970·80년대 이른바 ‘영국병‘으로 호도하면서 외면한 복지국가 체제는 오늘날 우리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내 한국 상황이 어떻다라고 비교할 때 늘 부러움의 기준이 되고 있다.

먼저 산업화의 길을 걸어간 국가들의 시행착오와 교훈을 외면하면서 개발독재정권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권력과 주변 충성집단의 지속가능 기득권 유지구조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양극화의 토대이다. “파이를 먼저 키워야 나눠먹을 수 있다”는 파이론에서 시작해 “위에 물이 괴이면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른다“는 낙수론에 이르기까지 성장론을 앞세운 기득권자들은 뒤로는 불법·편법·탈법적 축재로써 계층 상승의 사다리 자체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 신화와 스카이대 진학의 마약에 취해있다. 이렇게 수십 년을 지나온 사이 사람의 자리를 돈이 대신했다. 불행한 상황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돈벌이만 된다면 화재로 수십 명이 죽든 크레인이 무너져 누가 깔리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관성이 일상을 당분간 지배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사회 적폐의 민낯이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6월 출생아 수는 2만8900명으로 전년 동월(3만2900명)대비 12.2% 감소했다.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6월 기준 최저치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6월 출생아 수는 2만8900명으로 전년 동월(3만2900명)대비 12.2% 감소했다.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6월 기준 최저치다. ⓒ뉴시스·여성신문

가시적·물질적 성과를 이룬다면 모든 걸 용서해 주는 구조가 형성되는 가운데 사람으로서 여성이 대접받을 수 있는 공간은 사라져갔다. 여성은 가임기 여성으로 경제성장의 도구가 됐다. ‘인구증가 억제 → 목표 경제성장률 달성’ 구도에서 가족계획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유배우 여성’의 초기 임신 낙태를 국가비용으로 지원했다. ‘미혼’여성 낙태는 모른 척 방관했다. 이러한 적폐는 현존 저출산 기본계획에서 ‘목표 출산률 1.5, 임신 유지율 목표 82%, 난임 지원 등 효과성 높은 대책 집중적 투자를 통해 출산율 제고 효과 극대화’ 등 표현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성평등 관점이 부재한 이유는 개발독재시대 이후 한국사회 적폐의 구조적 산물이다. 따라서 기본계획을 성평등 관점으로 재구성함은 적폐 청산의 또다른 중요한 길이다. 숫자로 관리하는 대상으로 출생을 포기하고 출산주체로서 여성의 결정 및 행위를 존중하기 시작한다면, 돈과 물질적 성과에 자리를 내줬던 인간이 한국사회에 돌아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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