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여학생 비율 28.4%

여성 연구개발 인력 19.4%

임신·육아로 ‘사라진 여성들’

인력 누수 막기 위한

일·가정 양립 제도 필요

 

 

지난 해 ‘페미니즘’은 세계적인 이슈였다. 우버 내 성희롱 고발과 할리우드 제작자의 성추문 폭로로 촉발된 ‘미투’ 해시태그(#MeToo) 캠페인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를 고발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냈다. 정치계에선 메르켈 독일 총리가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고, 아이슬란드에선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노르웨이는 내각 톱3(총리·외무장관·재무장관)을 여성이 차지했다.

 

우리나라도 뒤지지 않았다.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운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새 정부의 첫 내각에서 여성 장관 비율은 31.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교부,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소위 힘 있는 6개 부처에 여성을 임명한 점은 구색 맞추기가 아닌 실질적인 질적 향상을 이뤘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출판계 페미니즘 바람은 몇 년째 계속됐다. 『82년생 김지영』 같은 젊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 꾸준히 출판되고 인기를 얻었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발의, 낙태죄 폐지 청원 운동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페미니즘 열풍 속에 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매년 새벽잠을 설치며 해맞이를 하고, 작심삼일에 그칠지라도 새해 계획을 세우며 마음을 다잡는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 때문일 것이다. 연초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자문회의가 여성과학기술인의 삶이 한 층 더 나아질 수 있게 소통 창구로써 역할하기를 기대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을 지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여성과학기술인 관련된 곳이면 찾아 갈 기회가 많은데, 30~40대 후배 여성 과학자나 엔지니어를 만나기가 힘들다. 외부에서 젊은 강연자나 자문위원을 추천해달라고 요청이 오곤 하는데, 워낙 찾기가 힘들어 아쉽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이 때의 여성 연구자는 결혼·임신·출산·육아로 일을 그만두거나, 취업난에 급변하는 과학기술계에서 다시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육아를 병행하며 야근하고 해외출장을 다니기 쉽지 않아 실적을 내기 또한 여의치 않다. 실제 이공계열 입학생 중 여학생 비율 28.4%, 과학기술 연구개발 인력 중 재직 여성 비율 19.4%, 여성 관리자 비율 8.5%라는 수치가 이를 반영한다.

이런 ‘미싱’(missing·사라진) 현상을 막으려면, 30~40대 코어(core·중심) 그룹 육성에 힘써야 한다. 우리 몸도 상·하체 균형을 맞춰주는 코어가 중요하듯이, 과학기술계도 균형감 있게 발전하려면 코어그룹이 단단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앞서 말했듯이 인력 누수 현상이 심각하다. 여성 인력 누수를 막기 위해 경력단절 예방과 복귀지원을 위한 일자리 지원과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을 병행 지원해야 한다.

지난해 말 정부는 육아휴직 급여를 40%에서 50%로, 배우자(남성) 육아휴직 3일에서 10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선 현장의 목소리는 제도가 있어도 눈치가 보여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 정비와 함께 현장에서의 실제 이용률을 높이는 것이 숙제다. 맘 편히 출산·육아 휴직을 다녀올 수 있게 인력을 제공하는 것도 한 방편일 수 있겠다.

올해부터 정부는 국정과제로 대체인력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체인력 지원사업은 출산, 육아로 3개월 이상 휴직하는 여성 연구원을 대신한 인력을 연구기관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여성연구원은 일을 그만두거나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갈수 있고, 연구기관은 업무공백으로 인한 부담을 덜 수 있다. 또 경력단절 중인 여성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해 복귀전에 유연하게 활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사회적 비용을 들여 육성한 이공계 여성인재가 사회에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사회와 국가의 역할이다. 과학기술이 국민의 삶 곁에서 질적 혁신과 성장을 꾀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코어 그룹 육성에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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