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려원, 소신발언

성범죄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한국사회 문제 지적

여성 배우들의 ‘말하기’

노동환경, 성폭력 문제

해결하는 마중물 삼아야

 

KBS2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여성아동범죄전담부 소속 검사 ‘마이듬’ 역을 맡은 배우 정려원. ⓒKBS2TV
KBS2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여성아동범죄전담부 소속 검사 ‘마이듬’ 역을 맡은 배우 정려원. ⓒKBS2TV

배우 정려원씨가 공식석상에서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1일 열린 ‘2017 KBS 연기대상’ 시상식 자리에서였다. 드라마 ‘마녀의 법정’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정씨는 수상소감을 말하며 뼈 있는 메시지를 함께 전했다. 성폭력에 대해 여전히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는 한국사회를 다그친 셈이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성범죄는) 감기처럼 이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있지만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성범죄, 성폭력에 대한 법이 강화돼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죄 피해자 중 성폭력 피해자 분들은 유일하게 밖으로 나서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이 동반되기 때문인데요. 저희 드라마가 (피해자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정씨 수상소감 중)

여성의 목소리에 유독 냉담한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면 정씨가 이 발언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사회는 여성이 노동환경 내 성 불평등이나 여성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낼라 치면 ‘지금 시대에 성차별은 무슨, 여성 상위 시대지’라며 반박하곤 한다. 특히 페미니즘 발언을 한 여성에게는 거센 공격이 쏟아지기 일쑤다.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면서도 정씨의 목소리에 떨림이 묻어있던 이유다.

여성 배우들의 ‘말하기’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배우 엄지원씨는 지난해 영화 ‘미씽’ 개봉 후 영화 시사회장과 언론 인터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영화계 내 성차별을 이야기했다. 그는 “충무로에 좋은 남자배우는 많은데 좋은 여자배우는 없다고 한다. 여자배우가 없어서 없었을까, 아니면 쓰이지 않아서 없었을까. 한 번 질문해보고 싶다”며 남성 중심적인 한국 영화판을 비판했다. 아울러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여성혐오적 표현에도 일침을 가했다. “현장의 꽃은 여배우라고 한다. 여배우는 왜 꽃이 되어야 하나? 여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다.”

배우 김꽃비씨는 “한국사회의 영화·영상 콘텐츠계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며 직접 행동에 나섰다. 2016년 신희주, 박효선 감독 등과 함께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여성들의 자기방어 훈련을 독려하는 영화 ‘아이 캔 디펜스’에 출연했다. ‘찍는페미’ 구성원이 제작에 함께했다.

아울러 남순아 감독은 촬영장 내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실제적인 액션을 취했다. 영화 ‘걷기왕’ 촬영 당시 작가로 참여했던 그는 스태프 전원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권유했다. 백승화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요청을 받아들여 남 감독 주도 하에 한국 영화계 최초로 성희롱 예방교육이 이뤄졌다.

여성 배우를 비롯한 여성 인력들의 노력 덕분에 영화계에는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영화산업 내 결정권자들이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영화계의 성차별적 노동환경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여성 배우들이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내뱉어도 되는 순간이 왔다. 또 목소리를 냈을 때 비난보다는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됐다”며 “배우들의 ‘사이다’ 같은 발언에 다른 많은 여성들도 쾌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 배우들이 한 분 한 분 용기 있게 나서 목소리를 내주셨으니, 이제 제도를 정비해야 할 차례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콘텐츠 제작 환경 내에서 적용될 수 있는 법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인권, 젠더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 등이 기본적인 권리로 안착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갖춰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관련 법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적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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