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 사건’ 이후 9년 지났으나 연예계 현실 여전히 제자리
‘고 장자연 사건’ 이후 9년 지났으나 연예계 현실 여전히 제자리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1.03 07:49
  • 수정 2018-01-09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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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상납·폭력 피해 호소하며

세상 등진 배우 장자연씨


사건 이후 9년 흘렀지만

여성 연예인 인권 여전히 바닥

 

2011년 6월 8일 서울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열린 ‘고 장자연 사건 분노의 목소리’ 시민법정 현장. 배우 고 장자연은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며 성접대 사실을 밝히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여성민우회
2011년 6월 8일 서울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열린 ‘고 장자연 사건 분노의 목소리’ 시민법정 현장. 배우 고 장자연은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며 성접대 사실을 밝히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여성민우회




고 장자연씨 사건이 법무부·검찰 개혁위원회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의 재조사 검토 대상에 포함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검찰 과거사위는 재조사를 검토 중인 25개 사건 리스트 외에 8개를 추가 제안하기로 했고, 8건의 검토 대상 사건에는 고 장자연 사건이 포함됐다고 전해진다. 지난 2009년 3월 신인배우였던 장씨는 소속사 대표로부터 유력 인사들의 성 상납을 강요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다. 이에 여성 연예인들이 겪는 성차별·성폭력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여성 연예인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성폭행, 성 상납 강요 등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특히 어리고 경력이 적은 여성 연예인은 ‘을 중의 을’이기에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여성 연예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참혹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촉구가 높은 이유다.

성 상납 요구, 스폰서 제안

시달리는 여성 연예인들

신인배우 장자연씨는 2009년 기획사 대표로부터 유력 인사들의 성 대접을 강요받고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씨가 사망 직전 남긴 유서에는 성접대 인사들의 명단이 담겨 있었고, 그 안에는 드라마 PD, 언론사 대표, 기획사 관계자, 재계 인사 등 유명 인사들이 포함돼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또 해당 유서에는 그들에게 100여 차례 이상 술접대 등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장씨의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만 불구속 기소됐을 뿐, 나머지 유력 인사 10여명은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로써 당시 사건은 흐지부지하다시피 종결됐다.

여성 연예인들은 스폰서 제안에 몸살을 앓기도 한다. 걸그룹 타히티의 전 멤버인 지수씨는 지난 2016년 1월 스폰서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폰 브로커’가 보내온 메시지를 캡처해 공개하며 “이런 다이렉트 굉장히 불쾌합니다. 사진마다 댓글로 확인하라고 하고, 여러 번 이런 메시지 보내는데 하지 마세요. 기분이 안 좋네요”라고 밝힌 바 있다.

‘스폰서 브로커’라고 밝힌 익명의 발신자는 지수에게 스폰서와의 만남을 제안하는 내용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나는)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모임에서 고용된 스폰 브로커다. 손님 한 분이 지수씨의 극팬이다”라며 “그분이 지수씨를 만나고 싶어 하니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했다. 이에 소속사 측은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정식 수사를 의뢰하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메시지 발신인에 대한 수사는 어렵게 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수의 인스타그램으로 스폰서 제안 문자를 보낸 이의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미국 페이스북 본사에 보냈지만, 계정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수에게 스폰서 제안 메시지를 보낸 이는 해외 IP로 접속한 것으로 드러났고, 페이스북은 요청 대상자의 IP가 제3국에 있어 내부 지침상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수사를 미제종결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 연기자 60.2%

“성 접대 제의 받은 적 있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씨 사망 이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여성 연기자와 지망생을 대상으로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기자의 60.2%가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이 2009년 9~12월 여성 연기자 111명과 연기자 지망생 240명 등 총 3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였다. 여성 연기자 중 45.3%는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스폰서 관계를 제의받는 사례도 다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 연기자의 55%가 유력 인사와의 만남 주선을 제의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매니저 등 연예산업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에서도 스폰서 관계를 매개하는 만남은 연예계 주변에서 매우 일상적이고 빈번한 것으로 평가됐다.

영화 촬영장에서도

여성 배우는 ‘을 신세’

배우 곽현화 씨는 자신의 동의 없이 노출 장면을 IPTV 등에 유포한 이수성 감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형사 고소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이 감독에 무죄를 선고했다. 

곽씨는 2012년 5월 이 감독의 영화 ‘전망좋은 집’ 촬영 당시 감독이 “가슴 노출 장면은 극 흐름상 꼭 필요하다. 일단 촬영을 하고 편집 때 제외해달라고 하면 반드시 빼주겠다”고 설득해 이 부분에 동의하고 해당 장면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영화는 곽씨의 노출 장면 없이 극장에 걸렸지만, 이 감독은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와 IPTV 등에 곽씨의 노출 장면을 넣어 유통했다. 이에 곽씨가 이 감독을 고소하자 이 감독은 “사전에 합의해 영상을 촬영했고 결과물의 모든 권리는 제작자인 나에게 있다. 허위사실로 고소한 곽씨를 처벌해달라”며 곽씨를 무고죄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했다. 이어 3년간 법정공방을 펼쳤고 곽씨는 지난해 6월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해 9월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감독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한 심경을 밝히며 영화 촬영 당시 노출 장면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했다. 곽씨는 “영화를 찍을 때 소속사가 없었고, 영화를 찍은 경험도 전무했다. 개그우먼에서 연기자고 거듭나고 싶었다”면서 “첫 작품인데 ‘안 한다’, ‘이거 문서로 남겨달라’고 말할 정도의 여유나 내공이 없었다. ‘버릇없어 보인다’ ‘까탈스러운 배우로 보인다’는 인식에 대한 두려움도 앞섰던 게 사실이다”라고 털어놨다. 곽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여성 배우는 촬영장서 곧잘 ‘을’로 전락한다. “여배우는 까다롭다”는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편견은 여성 연예인을 억압하고, 그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곽씨가 감독의 부당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여성 연예인의 인권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이에 여성영화인모임과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산업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하기 위해 지난달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설립했다. 영화계 내 성평등 실현을 위해 의미있는 한 발을 뗀 셈이다. 여성 영화인들은 지난달 열린 ‘2017 여성영화인축제’에서 센터 출범을 알렸다. 센터장을 맡은 임순례 감독은 “성평등 운동은 남성이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아 여성에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별의 공익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지형도를 만드는 일”이라며 성평등 실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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