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피해 늘고 있지만

피해자와 합의해서

범행 인정 해서

쉽게 선처 받는 범죄자들

 

 

관음증은 성도착증의 한 유형이다. 전형적인 관음증은 타인의 벗은 몸 혹은 성적 행위를 몰래 관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타인의 은밀한 신체부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관음증의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가 바뀌기는 했으나 며칠 전 “총 12차례 여성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싱가포르 소재 교회 한인 목사에게 여성 모욕죄로 징역 8주 실형을 선고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했다. 단기이기는 하지만 실형선고가 반가웠다. 싱가포르 사법부의 판결이 부러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필자는 2017년 한 해 동안 수십 건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했다. 그 중 50% 이상이 ‘카메라 이용촬영죄’였다.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매장 안에서, 공중 화장실 안에서 허락 없이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다. 심지어 술에 취해 잠든 지인의 신체 은밀한 부위를 촬영한 사람도 있었다. 핸드폰을 수리해 주는 업체 직원이 고객이 맡긴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중 노출이 심한 사진들을 골라 몰래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람들이 관음증에 취한 것 같다. 왜 이러는 것일까? 왜 허락받지 않고 타인의 사생활을 함부로 촬영하고 자기들끼리 공유하며 자신의 친구, 이웃일 수도 있는 피해자들을 성적 도구로 삼는 범죄행위가 계속되는 것일까?

필자는 사법부의 안이한 판결 태도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필자가 진행했던 카메라이용촬영죄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 합의했다는 이유로 벌금형 선고, 피고인이 범행사실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매장 안에서 손님인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한 범죄자가 피해자의 신고로 현장에서 잡혔고, 현장에서 확보된 범인의 핸드폰 안에는 685장 이상의 많은 여성들 신체부위 촬영 사진이 들어있었다. 피해자와 어떤 형사합의도 없었는데 재판부는 피고인이 반성한다는 이유로,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685명 이상의 피해여성 치맛 속을 촬영했는데 초범이라고 칭하는 것이 합당한가? 범행 현장에서 핸드폰이 확보됐기 때문에 범행 사실을 자백할 수밖에 없는 피고인의 자백을 집행유예 사유로 참작하는 것이 마땅한가?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수사관, 검사, 판사, 심지어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변호사들조차 강간과 같은 심각한 성폭력에 비해 카메라이용촬영행위는 경미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강간피해자를 지원할 때 카메라이용촬영죄 피해자를 지원할 때 보다 마음가짐이 좀 더 가벼운 것이 사실이었다. 과연 ‘몰카’ 범죄 피해자들의 마음도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몰카 피해자들의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출근길에 집 앞 지하철역 내에서 몰카 피해를 입은 여성은, 한 여름임에도 출근길에 가해자에게 또 다시 얼굴이 노출될까봐 두려워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출근한다고 한다. 직장이 위치한 건물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가 몰래카메라에 찍힌 여성은 피해를 입은 이후부터 8시간 근무하면서 건물 내 화장실에 가지 못하며, 심지어 생리기간 중인데도 생리대를 교체하기 위해 혼자 화장실에 가지 못해 참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용변보는 모습이 인터넷으로 떠돌아 다닐까봐 불안해서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피해자들의 이런 고통은 기억이 유지되는 한 지속되는데, 몰카 범죄자들은 쉽게 선처 받는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배상 없이도 선처를 받는다. 싱가포르에서는 12회 몰카 촬영을 한 사람이 실형을 선고받는데, 우리나라는 왜 685회 몰카촬영을 한 사람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가? 몰카 범죄에 대한 수사기관 및 재판부의 이런 은혜로운 판결이 계속되는 이상 몰카범죄자들은 조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관음증이 그 대상이 된 피해자의 삶에 어떤 고통을 주든지 간에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관음증에 취해 있는 대한민국이 제 자리를 잡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몰카 범죄를 엄히 처벌해야 한다.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 즉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쉽게 선처해 줄 것이 아니라 피해 회복을 위한 당연한 노력조차 하지 않은 피고인을 더 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판사들이 자신의 딸, 아내, 여동생의 치마 속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는 생각을 하면 좀 더 현실적인, 피해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판결이 내려지려나 하는 원시적인 소망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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