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민혁명, 대통령 파면, 대통령 선거를 거친 역사적인 2017년. 올해는 대선을 거치며 다양한 성평등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했고 생리대 안전성 문제와 낙태죄 폐지 요구로 여성 건강권 이슈가 전면에 부각됐다. 특히 지난해 불붙기 시작한 페미니즘 열풍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며 다양한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페미니스트’를 자임한 대통령이 당선됐고 여성 30%의 내각을 구성했다.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뿌리 깊은 여성혐오도 낱낱이 드러났다. 여성신문이 선정한 10대 뉴스를 통해 울고 울었던 올 한해를 돌아본다.

이어보기▶ [2017 여성 10대 뉴스 ①] ‘페모크라트’에 웃고 생리대 파동에 울고

 

 

♦ 출판계 페미니즘 돌풍

올 한 해 출판계에선 ‘페미니즘’이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올해 한국문학 결산에서 빠지지 않는 화두는 ‘여성 소설’이다. 특히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1982년생 김지영』은 문학을 통해 페미니즘을 쟁점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 작가 7명은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를 발표했다. 여성 작가들의 약진도 돋보였다. 김애란(동인문학상), 강영숙(이효석 문학상), 황정은(김유정 문학상), 손보미(대산문학상), 김성중(현대문학상), 조남주(오늘의 작가상), 정세랑(한국일보 문학상) 등 여성 작가들이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웹툰계에서도 페미니즘이 빛났다. ‘2017년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작 5편 중 3편이 젠더 이슈를 다룬 작품이다. 결혼 후 시댁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불합리함을 다룬 ‘며느라기’, 가족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섬세하게 조명한 ‘단지’, 미혼모 문제 등 여성이 겪는 폭력의 문제를 판타지의 틀을 빌려 다룬 ‘아 지갑놓고 나왔다’ 등이다. 

 

♦ 성평등 개헌 요구 뜨거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정치 이슈는 개헌이다.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고, 30년 만의 개헌 기회인 만큼 ‘성평등 개헌’이 여성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주권자의 권리장전이자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이다. 여성단체연합은 △헌법 원칙과 국가 방향으로서의 성평등 실현 △여성대표성 확대 및 이를 위한 정당의 의무 △평등권 조항의 차별사유 확대 △적극적 조치를 포함한 실질적 성평등 실현·보장 의무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는 가족 구성권 명시 등 △성적 주체로서 존엄의 원칙과 재생산권 신설 △노동에서의 성평등 및 일·생활균형 보장 등을 제시했다. 지난달 말부터 개헌 논의에 돌입한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개정안에 ‘성평등’ 조항을 신설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 단체와 자유한국당의 반발에 공식 논의는 주춤한 상황이다. 

 

♦ 대중문화 속 여성 절벽 현상

대중문화 속 만연한 여성혐오는 아예 여성의 존재조차 찾을 수 없는 ‘여성 절벽’ 현상을 낳았다.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가 실종됐다는 지적은 하루이틀 나온 말이 아니다. 몇 년째 ‘남초 영화’가 스크린을 점령했다. 동시에 천편일률적인 여성 캐릭터와 여성을 수동적·보조적으로만 다루는 서사가 수없이 쏟아졌다.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선 여성 연예인이 보이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 기준, 지상파·유료 채널 예능 중 진행자와 고정 패널이 모두 남성 혹은 여성인 프로그램 비율은 26 대 4다. 여성 예능 가뭄이 역으로 여성 예능은 안된다는 세간의 인식을 부채질한다. 여성은 나와도 ‘2등 시민’이었다. 남성 출연자를 보조하거나 ‘꽃’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 비판이 일었다. 데이트폭력을 미화하거나, 가부장적 성역할을 강조하거나,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을 앞세운 드라마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루한 틀을 깨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코미디언 김숙은 가부장을 미러링(mirroring)한 ‘가모장’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 EBS ‘까칠남녀’ 등 여성 패널이 이끌어가는 이슈 토크쇼들도 나왔다. 지금 온라인상 화제인 젠더 이슈뿐 아니라 화제의 인물과 최신 이슈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월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내 파면당한 첫 사례가 됐다.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의 실정은 사회·정치적 혼란을 낳았다. 대통령과 그 측근 사이에 일어난 수상한 사건들도 언론 보도로 밝혀졌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전국적 대규모 촛불시위가 약 반년간 이어졌다. 2016년 12월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됐으며 헌법재판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파면했다. 원칙에 따라 평화롭게 이뤄진 탄핵 과정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여줬지만, 뿌리 깊은 여성혐오도 낱낱이 보여줬다.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박 전 대통령과 측근 최순실 씨를 빗대어 ‘여성 리더십의 위기’라거나 ‘여자 대통령은 안 된다’는 엉뚱한 주장이 나왔다. 잘못된 성차별적 프레임은 사안의 심각성을 오히려 축소시킬 수 있다는 진단과 함께, 새 시대에 걸맞은 ‘젠더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가 각계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 국회에서 국회의원 22명을 비롯해, 사회 오피니언 리더 100여명이 참여하는 ‘히포시코리아 포럼’이 출범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7월 국회에서 국회의원 22명을 비롯해, 사회 오피니언 리더 100여명이 참여하는 ‘히포시코리아 포럼’이 출범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히포시 운동 확산

전 세계에 만연한 여성 인권 침해 문제를 해소하고, 성평등 확산을 위해 남성들의 참여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UN Women(UN 여성)이 시작한 ‘HeForShe’(히포시) 운동은 한국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히포시 캠페인은 남성들의 성평등 이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성차별과 각종 성폭력을 해소하는 데 있어 책임을 진 동반자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신문은 UN 여성과 협력해 히포시캠페인 운동본부를 설립하고 2년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히포시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올해 7월엔 국회에서 국회의원 22명을 비롯해, 사회 오피니언 리더 100여명이 참여하는 ‘히포시코리아 포럼’이 출범했다. 5월 열린 ‘2017 제17회 여성마라톤대회’에서도 다양한 히포시 캠페인이 펼쳐졌다. 히포시를 문자 그대로 '여성을 위하는 남성'이라고 직역하기도 하지만, '남성이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라고 부르며 주변의 참여를 권유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남성들이 새해에는 더 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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