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봄알람 펴냄

새로운 말·사유 고민하고

기존의 사고·기준·가치를

철학이라는 망치로 부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여성 철학자 6인 소개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봄알람 펴냄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봄알람 펴냄

많은 여성주의 주제들은 이원론적 사유 체계 안에서 놓여있다. ‘가정/직장’ ‘선택권/생명권’, ‘여성 억압적 모성/여성 해방적 모성’, ‘휴식처로서의 가족/억압 재생공간으로서의 가족’, ‘성 노동/성노예’, ‘발전옹호/발전비판’ 그런데 이 구도 속에서 여성들이 어느 것을 선택해도 곤란에 빠지는 딜레마를 겪는다. 예를 들어, 모성을 비판하면 건조한 이기주의자가 되고, 모성을 옹호하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포섭돼 버린다. 여성주의 논쟁이 여성을 또다시 얽어매는 구도 안에 몰아넣고 있다. 여성주의는 새로운 사유방식이 필요하다.

철학자 김은주의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 해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등 여섯 명의 여성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압제자의 언어에서 새로운 말과 사유를 고민한 이들이며, 당연하다고 여겨온 말과 생각을 의심했으며, 스스로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기존의 사고, 기준, 가치를 철학이라는 망치로 부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이들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극악무도한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전범자를 비난하는 쉬운 방법을 택하기보다, 그 사람이 만들어지는 시대적 사회적 체계, 즉 전체주의에 주목한다. 김은주는 아렌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철학이 사유와 관조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고자 맞붙어 싸웠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고정불변의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사회에 참여하며 역동하고 변화하는 주체의 등장을 이야기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행하는 존재’, 누벼지고 다시 누벼진 ‘누비이불 같은 존재’, 다양한 인용들로 이뤄진 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소개된다. 그는 제인 에어의 사랑의 서사 속에 소설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등장한 다락방의 광녀에게 주목해 식민문학의 민낯을 드러낸다.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사티 제도를 둘러싸고 야만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서구남성과 고귀한 인도전통이라고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의 설전 속에 침묵된 여성의 목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스피박은 자신이 분열되고 때워진 누더기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고 인정하면서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침묵의 소리에 관심하게 된다.

주디스 버틀러는 인간 주체의 이성이 아니라 인간 주체의 욕망에 주목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견디며, 무엇이 우리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가?’에서 시작해서, ‘살아갈 의미를 포기하게 되는 그 시작점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버틀러는 ‘자신의 욕망’을 승인받지 못할 때라고 주장하며 욕망과 그것을 금지한 규범의 문제를 치열하게 다룬다. 남성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주장 속에서 이성애의 근간인 남녀 범주를 흔들어버린다. 남자와 여자라는 말이 허구인데, 그것을 전제로 한 이성애만이 정상적이라는 담론은 허상이 된다.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삶의 의미에 관심했던 버틀러는 911 이후 타자의 욕망과 의미성에 관심하기 시작했다. 개별적 주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적 관계성을 모색하는 버틀러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필자는 그 어려운 이론들을 결코 가볍지 않게 다룬 김은주 글을 따라 읽으며 그가 무엇을 향해가고 있는가를 되묻게 됐다. 그는 각각의 사상가들의 개인적 삶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이론과 개념으로 구성되는가를 설명한다. 이것은 개념과 이론들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줬고, 그들의 이론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은주는 근대주체를 비판하며 근대 이후의 사유를 모색한다고 언급한다. 여성주의가 시급하게 찾고 있는 새로운 사유방식을 찾으려는 힘겨운 모험을 과감하게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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