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보다 어려운 공천”

여성 출마들 우려 목소리

공약 대상,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공천 기준에서 지표로 드러내야

 

26일 국회도서관 지하대강당에서 개최한 ‘여성생활정치 실현을 위한 지역 이슈 발굴 경진대회’에 에서 국민의당 여성당원들이 정책 의제 실현을 다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6일 국회도서관 지하대강당에서 개최한 ‘여성생활정치 실현을 위한 지역 이슈 발굴 경진대회’에 에서 국민의당 여성당원들이 정책 의제 실현을 다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13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정당의 공천 과정에 성인지 관점이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2월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2월13일부터는 시·도지사 및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3월2일부터는 시·도의원 구·시의원 및 장 선거 예비후보가 등록하면서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성인지 관점은 구체적으로는 각 정당이 구성할 공천심사위원회와 공천 기준뿐만 아니라 이미 각 정당 별로 실시한 현역 지방의원, 단체장 평가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의 속성 때문이다. 중앙의 획일적인 권한이 아닌 지역 주민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주민의 다양성을 반영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들에 의해 작동해온 의회에서 성인지 관점은 선택의 요소가 아니라 다양성의 기본이 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더불어민주당은 일찌감치 현역 지자체장과 광역·기초의원들을 대상으로 평가항목을 제공해 자체평가서를 제출받았다. 공천의 근거 자료로 참고할 전망이다. 광역·기초의회 의원의의 ‘평가항목 배점 및 산식 총괄표’의 제목의 평가항목에는 △의정활동35%(입법성과30%, 성실도 20%, 지역주민에의 기여도 20%, 도덕성 20%, 의회임원 10%) △지역활동 35%(주민소통활동 50%, 당무기여도 50%) △지치분권활동 10% △다면평가 20% 등이다.

평가요소는 상세하고 구체적이지만 정작 지방자치에서 필수적인 성인지적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민주당은 지자체장의 공약 평가 기준에 성인지 관점을 넣기 위해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희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의 행정들과 사업들 안에 성인지 관점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남성중심적인 지방정부와 정치권에서 성인지 관점이 없어 예산낭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도로를 설계할 때 사전에 보행이 편한 경사도나 유모차를 끌기 좋게 하고, 범죄예방 디자인이 들어가지 않아 예산을 이중으로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복지나 여성 관련 부서만이 아니라 모든 부서에서 이같은 관점으로 사업을 집행하고 조례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다수 의원들은 아직도 성인지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옥분 경기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도 “경기도에서 성인지 관점이 반영한 사업 편성이 늘고 있는데 도정 전반에서 의원들의 성인지 관점이 없어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그 대책으로 “문재인 정부가 성평등 실현을 제시했고 민주당이 지방정부를 위해 할 수 있는 첫째 방법이 성인지 관점의 공천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인지 관점의 공천 기준으로 박 의원은 “공천심사위원회에 50%를 여성으로 구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인지 관점을 가진 위원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현역 정치인들을 대상으로는 관련 조례나 입법 발의, 대표 질의 등을 반영하고, 교육과정 수료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 전국 여성 출마자들이 여성정치참여확대 촉구 및 규탄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도 속고 우리도 속았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항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 전국 여성 출마자들이 여성정치참여확대 촉구 및 규탄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도 속고 우리도 속았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항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방 의원의 공천에 특히 영향을 미치는 지역위원장 차원에서 평가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홍인정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자유한국당)은 “대의원 선거나 여론조사를 통해 당내 경선에서 후보자 선출을 하는데, 조직과 돈이 직결되다보니 여성들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실력있는 제대로 된 후보를 가려내는 방법으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기존의 공천 과정에서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홍 위원장은 주민들과 함께 하는 공약발표회를 지역 출마 희망자들에게 제시해둔 상태다. “후보자가 주민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정책을 설명하면서 의견을 수렴하는 능력을 평가하고 지역 발전의 디자인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등 주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경선의 문제를 보완하면서 실력으로 승부하는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원들 역시 지역당의 변화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방식이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여성 후보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홍 위원장은 내다보고 있다. 남성후보들에게는 조직과 돈만이 아니라 콘텐츠로 승부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고, 경험과 자신감이 부족한 여성들에게는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본다.

실제 공천은 아니지만 정당 차원에서 여성의 눈으로 지역 문제를 발굴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훈련의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국민의당의 경우 여성 정치아카데미나 워크숍, 강의 같은 방식을 넘어서 상금을 걸고 ‘여성정치 실현을 위한 지역이슈 발굴 경진대회’를 최근 개최했다. 선거 출마 희망자들이 중심이 돼 각 지역위원회가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10월부터 두 달 넘게 머리를 맞대고 골목을 찾아다녔다. 이슈를 발굴하고 정책화하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만나는 방법을 훈련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발표하는 것까지 지역주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만드는 지역밀착형 정책 개발 실전 훈련에 나섰다.

이렇게 정당과 지역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지만 변화를 일으킬 만큼 변화라고 보기엔 이르다. 당지도부와 공천심사위원회의 인식 변화가 담보되지 않으면 이행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일찌감치 “청년과 여성을 50% 공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벌써부터 ‘공수표’, ‘희망고문’이라는 목소리가 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장은 정당이 성인지적 관점이 포함된 공천기준 마련하는 일은 정책 대상자를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역의 정치인이 주민 모두를 포함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누구를 위해 어떤 정책을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공직자라면 주민들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책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공천심사위원회는 단순히 지역주민이 아니라 대상이 누구인지 물어볼 수 있어야 하고 공천기준에서 계량화된 지표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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