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해고 승무원 김승하·정미정

동일방직노조 이총각 전 지부장

40년 만에 만난 여성노동자들

저임금·비정규직 그대로

이총각 “나체시위, 똥물투척

우리 대에서 투쟁 끝날 줄”

정미정 “동료의 딸에게 엄마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파”

김승하 “코레일 측의 승진과

급여 인상 제안 거부”

 

21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제4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후 김경숙상을 수상한 KTX열차 승무지부 해고 승무원들과 이총각 동일방직노동조합 전 지부장이 참석한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제4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후 김경숙상을 수상한 KTX열차 승무지부 해고 승무원들과 이총각 동일방직노동조합 전 지부장이 참석한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이 12년째 계속되고 있다. ‘철도의 꽃’, ‘지상의 스튜어디스’라고 홍보하는 2004년 KTX 여승무원 모집 공채가 이들을 운명을 바꿔놓았다. 노동계에선 “공기업인 코레일의 채용은 사실상 ‘취업사기’”라고 비판한다. 자회사에 채용하던 당시 정규직 전환을 약속 해놓고 2년이 지나자 또 다른 자회사와의 재계약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철도노조 KTX열차 승무지부 조합원과 1970년대 노동 탄압을 상징하는 동일방직의 이총각 전 노조지부장이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 자리에 모였다. 근 반백년의 흐름에도 여전히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불평등과 맞서 싸워온 여성노동 운동가들의 모습은 어딘가 닮아있었다.

동일방직노동조합은 1970년대 ‘여공’들이 주도해 세우고 여성 노조지부장을 최초로 탄생시키면서 여성 노동자의 실태를 알리고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1976년 경찰의 파업 강제 진압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이 ‘알몸 시위’를 벌여야 했고 1978년 노조 대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사측이 벌인 이른바 ‘똥물 투척 사건’으로 사회적 분노를 일으켰다. 

KTX열차 승무지부는 지난해 12월 21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마련한 제4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수상했다. 김경숙상은 1979년 YH무역의 여공으로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사망한 김경숙 열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KTX승무지부의 김승하 지부장은 수상 소감을 통해 “선배님들의 투쟁과 저희가 많이 닮아있더라. 저는 YH사건이 발생한 해인 1979년생이고 동료들도 80~81년생이다. 과거 어린 여성을 산업역군으로 치켜세웠던 것처럼 지상의 스튜어디스라고 했다. 차별과 멸시, 착취당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 때 탄압받았는데 저희도 (박근혜 정부 때) 그 망령이 살아나 대법 판결로 다시 1억원 넘는 빛에 시달리는 처지에 처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싸워 뿌리 뽑았으면 한다. KTX 안에서 안전 담당하는 진정한 승무원으로 일하는 소식으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지극히 평범한 여성노동자였던 세 사람이 불의와 맞서싸우는 노동운동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 고민 등을 나누고 함께 눈물 흘렸다. 진행은 최광기씨가 맡았다.

 

본격적인 귀성이 시작된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KTX 해고승무원들이 복직촉구 농성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본격적인 귀성이 시작된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KTX 해고승무원들이 복직촉구 농성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조 활동에 온식구 고통… 엄마는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정미정 KTX열차 승무지부 총무(이하 정) “저희가 12년간 투쟁을 해오면서 매 순간 순간 고민도 하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지나왔어요. 지금까지 투쟁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자리까지 있게 된 건 지난 2015년 대법원의 안 좋은 결과 때문입니다. 이렇게 끝낼 순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저희 문제 판결로 인해서 비슷한 다른 투쟁사업장에 많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되지 않게 이 땅에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이 됐으면 해서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총각 동일방직노조 전 지부장(이하 이) “김승하 지부장님 지난 투쟁과정 얘기할 때 가슴 뭉클했어요. 그래서 우리 대에서 투쟁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선배로서 (투쟁을) 제대로 못해 이런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김승하 KTX열차 승무지부장(이하 김) “2006년부터 3년간 온갖 투쟁을 했어요. 삭발 고공농성 등등 안 해본 거 없이 다했더라고요. 그러다 지쳐서 소송에 들어갔습니다. 1·2심 판결 지나면서 아직 사법부가 살아있구나 생각했는데 대법원에서 뒤집힐지 몰랐어요. 비상식적인 판결 때문에 다시 투쟁에 나섰어요. 7년 세월이 흐른 다음에 다시 싸우려니 20대와 30대의 차이가 느껴지더라구요. 예전엔 저 혼자 싸우면 됐지만 지금은 아이와 가족이 있으니 눈치 보이고 한계가 있어요. 지금은 서울역 부산역에서 선전하고 서명받고 오체투지 했어요.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기에 다시 철도공사와 대화 창구가 열리긴 했어요. 이번엔 문제가 잘 마무리되지 않을까,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갖고 있어요.”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희망됐으면”

사회 “말이 그렇지 정말 긴 시간입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는 언제였고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 “함께 투쟁한 동료들 덕분입니다. 10년 전 투쟁은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2015년 대법 판결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 때문에 한 분은 안 좋은 선택을 했구요. 지금은 좀 극복했지만... 그 동료에게 딸이 하나 있어요, 그 아이에게 엄마와 엄마 친구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사회 “동일방직은 알몸투쟁, 똥물투척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투쟁은 어땠습니까?”

이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고 해요.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에요. 똥물까지 뒤집어씌울 줄 몰랐어요. (회사측이)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서 사전에 다 준비했더라구요, 중앙정보부에서도 나왔고요. 우리가 사전에 보호요청해서 경찰이 와있었는데도 다들 뒷짐지고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똥물바가지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그 때 상처를 씻을 수 없고 잊을 수 없어요. 나체시위 당시엔 감옥에 있었어요. 당시 노조사무실이 50~60명 정도 들어갈 곳인데 경찰들이 잡으러 오니까 200명 정도가 몰려들었어요. 한참 더울 때여서 처음엔 누가 더위에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아 벗었는데, 나중에 김광자 부지부장이 다 같이 벗자고 제안했어요. 옷을 벗은 여자들을 남자들이 손을 못댄다고 생각했던거죠. 살기 위해서 수치심 다 버리고 정말(울먹임) 자존심 다 버리고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사회 “똥물 뒤집어씌운 건 인간으로 견딜 수 없게 모멸감 수치감 느끼라고 한 거죠. 노동을 탄압하는 방식이 악랄하고 잔인합니다. 감옥까지 가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으신가요. 인간적으로 괴로웠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괴롭죠. 정말 도망가고 싶고... 후회라기 보단 단순무식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감옥보다도, 고문보다 훨씬 더 한 온몸이 뜯겨지는 고통이었죠. 나 혼자 그런 고통당하는 건 얼마든지 참고 이겨낼 수 있지만 온 식구들에게 다 찾아와 괴롭혀 마음고생 많았어요. 남동생도 집 한 칸 없어 중동에 일하러 가려했는데 비자를 안내주고, 여동생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경리로 취직했는데 경찰이 회사에 밤낮 찾아가서 나 찾아내라고 하니 해고당했어요. 엄마가 오죽하면 저한테 ‘동일방직 다니다가 신세 망쳤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라고 했는데 부모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자식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원수는 꼭 갚고 죽겠다 하는 분노와 오기가 굉장히 강하게 생겼고요. 그 때문에 오늘날 현장에서 여러분 만나면서 함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21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제4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수상한 KTX열차 승무지부 해고 승무원들과 이총각 동일방직노동조합 전 지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제4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수상한 KTX열차 승무지부 해고 승무원들과 이총각 동일방직노동조합 전 지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더 많은 피해 입기 전에 함께 행동을”

김 “이렇게 오랜 시간 지나도 울컥해요. 10년 뒤면 우리가 웃으면서 이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요. 평생 트라우마로 안고 갈 듯합니다.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동료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고요. 코레일은 다른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재위탁에 동의하면 승진시켜주고 급여도 더 주겠다고 했어요. 개인 영달이 목적이면 따르는 게 맞아요. 그렇지만 안전을 위해 직접 고용돼야 한다는 목적으로 끝까지 투쟁했어요. 조합원 모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어요.”

정 “처음엔 몰랐어요. 학교 다닐 땐 등록금 투쟁 한번 안 해봤고, 노동 문제, 노조에 관심 없던 사람 중 한명이었어요. 그런데 유니언숍(노조가입 강제 제도)이라는 걸 계기로 가입했고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사람이다 보니 후회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투쟁하면서 뭐가 올바르고 잘못됐는지 많이 배웠어요. 저희는 바로잡는 과정에 서있는데 지금 뛰쳐나가면 누가 할 것인가 생각도 들고, 저희가 한건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김 “제 일로 닥치니까 투쟁 나선 거예요. 저도 투쟁 한번 안 해봤고 아버지도 노조 가입하지 말라는 분이에요, 제가 불합리한 일을 당하니까 싸울 수 밖에 없더라구요. 무관심 분들에게 서운하기도 하지만 당하지 않아서 모를 수 있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저희에게 공감해주지만, 본인 일로 닥치고 비정규직 늘어나면서 관심 갖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관심 없다가 가져주니 고맙기도 하지만 일을 당한 후 깨닫는 것이 안타깝기도 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기 전에 싸우고 있는 약자들에게 관심 갖고 함께 투쟁하고 행동해주셨으면 합니다.”

김 “정부와 정책적 협약을 통해 잘 해결하겠다는 답변을 받긴 했어요. 아직은 감감무소식이어서 철도공사 사장이 임명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복직하고 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복직 못한 다른 곳의 사람들을 위해 투쟁을 계속 할 건가요.”

김 “복직하고 나중에 생각하면 안될까요.(웃음)”

이 “승무지부 여러분이 잘 해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김 “투쟁을 겪어봤기에 저희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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