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는 재밌다”. 최근에 들은 가장 충격적인 말이다. 놀라운 건 페미니스트 게이머 연합인 ‘전국디바협회’ 내에도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20대~30대 중에는 게임을 통해 여성혐오를 체화한 이들이 많다. ‘재밌는 여성혐오’는 게임 시스템에 녹아있었고, 우리의 유년 시절에 스며들었다.  

상식적인 게임 시스템의 원칙은 ‘레벨 업을 할수록 튼튼한 갑옷과 강한 무기를 얻는다’, 즉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캐릭터가 점점 강해진다’다. 게이머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게임을 할 동기를 부여하는 식이다. 이 보상이란 게 좀 수상하다. 만약 당신이 여성 캐릭터를 키운다면, 레벨 업을 할수록 캐릭터의 노출도가 높아질 것이다. 즉, 당신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높은 공격력과 방어도, 그리고 여성의 벗은 몸을 얻을 수 있다. 전투를 해야 하는데, 배와 가슴 같은 급소가 다 드러난 옷이라니! 그러나 “방어도와 노출도는 비례한다”는 말도 안 되는 문구가 게임 업계의 정통 문법이다. 처음엔 ‘게이머들이 보기에 좋아’서였고, 나중엔 ‘원래 그런 것’, ‘재미’의 또 다른 형태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여성을 예쁘게 벗기는지가 게임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됐고, 이 과정이 게임의 재미 요소가 됐다. 여성혐오는 그렇게 게임 시스템이 됐다. 

게임 개발사가 은근히 여성혐오를 유도하기도 한다. 2030세대라면 한 번쯤 들어본 게임일 ‘프린세스 메이커’는 천사로부터 입양한 여자아이를 공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본의 육성 게임이다. 한국판 게임에선 아이의 능력치 중 ‘매력 지수’가 있었다. 일본판 게임에서 이 수치의 이름은 ’색기’였다. ‘매력(색기)’이 높은 시점에서 아이를 훈계할 때 ‘때린다’를 선택하면, 아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매력(색기)’이 상승한다. 프린세스 메이커가 아동용 게임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 불편하다. 

옛날 게임만 그랬을까? 슬프게도 이 시스템은 2017년의 게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붕괴3rd’는 현재 구글 앱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권에 오른 액션 모바일 게임이다. 이 게임엔 여성 캐릭터를 성희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메뉴 화면에 있는 여성 캐릭터의 가슴, 배, 허벅지, 사타구니, 팔, 머리를 찌르면, 캐릭터가 “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부끄러워한다. 찌를 때마다 ‘호감도’가 올라가고, 캐릭터의 능력치가 증가한다. 게이머는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좋든 싫든 캐릭터를 성희롱해야 한다. 이런 기이한 게임 시스템의 바탕에는 ‘이 여성이 말은 싫다고 해도 내게 강간이나 성추행을 당하면 쾌감을 느낄 것이다’라는 왜곡된 믿음을 전파하는 강간문화가 있다. 

‘재미있는 여혐’을 이식한 게임들이 판치는 대한민국은 부인할 수 없는 게임 강국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의 전통 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겼고, 세계 게임리그 결승전에선 한국 팀끼리 맞붙는다. 온라인 게임 방송을 하는 게임 스트리머들이 1020 세대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제 재밌는 여성혐오를 넘어 재밌는 페미니즘이 스며든 게임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워도, 그렇지 않아도 좋다. 매 순간 선택과 보상이 주어지는 게임 속에서라면, 페미니즘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도 현실에서보다 더 쉬울 수 있다. 

‘빻은’ 게임이 많지만, 게임은 재밌다. 페미니스트 게이머들은 언제까지고 게임을 사랑할 것이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2060년의 세계최고 프로게이머 ‘송하나’가 태어나고 활동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페미니스트 게이머들은 오늘도 대한민국 사회와 불편한 게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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