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성/서울대 사회학 교수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거부의사 표명으로 우리 정부는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일관계는 급격히 냉각될 전망이며 별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사회 전체의 보수성과 일본 정부의 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경시 태도를 비판하고만 있는 것은 이제 무책임하게조차 생각된다. 그것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할 때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단 말인가. 문제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이미 1994년 ‘자유주의사관연구회’가 만들어지고 곧바로 그것의 실천을 위해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자민당에서 연구와 검토를 통해 제안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언론, 기업과 우익단체 및 학자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작년 하반기에 이미 문부성 검정을 위해 제출된 이 모임의 새로 제작된 교과서와 엄청나게 개악된 기존 교과서 내용이 유출되었으며, 시민단체들의 안타까운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분노는 너무 때늦었고, 어찌 보면 부적절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과 ‘밀월’이라 할 만큼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고 믿었던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사회 전체를 움직여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우리 정부는 ‘과거’는 이제 묻지 말고 앞만 바라보자고 했다. 피해자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고 유엔이나 국제노동기구에서 시민단체들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동분서주하는 동안, 우리 정부는 ‘일본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냉담하게 침묵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분노는 무엇인가.

우리 시민들은 묻고 싶다. 도대체 일본이 일관되게 왜곡해온 고대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은 무엇인가,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인식은 일본과 마찬가지인가. 의문은 꼬리를 문다. 왜 작년까지 눈감아 주던 과거사 문제를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자 갑자기 강력 비판하기 시작한 것인가. 교과서 왜곡만이 문제인가, 아니면 전쟁책임 전체가 문제인가. 문화개방은 교과서 문제에 도구화되어도 좋을 주변적인 것이었나, 그렇다면 한일간에 걸려 있는 여러 현안 중 어느 것이 중심적인 것인가. 심히 걱정도 된다. 혹시 주변적인 것으로 생각해 내어준 다른 문제는 없는가.

말이 나왔으니 하는데, 요즘 미국에서 진행 중인 군위안부 배상소송에서 한국 정부의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입장 요구가 긴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밀월관계’인 일본 정부는 1965년 조약으로 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모든 과거 피해문제는 해결되었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한 데다, 미국 정부에까지 로비의 손을 뻗쳐 미 법무부는 일본 정부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기본 입장이 없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지 않는가.

가뜩이나 일본 정부에게 자존심 상해 온 사회가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 사이에 상호비방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말로 바라건대, 한일간 역사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근본적인 철학과 일관된 태도가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남북문제 등 현안과 그 기본원칙을 어떻게 슬기롭게 연결시킬 것인가는 또다른 우리 정부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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