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안전성 문제

제기한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사무처장이 전하는

생리대 사태와 월경권

‘1+1’ 할인판매 제품과

직구 유기농 제품 사이에서

‘월경난민’이 된 여성들

 

여성환경연대가 9월 5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 촉구 기자회견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를 열고 생리대를 몸에 붙이고 바닥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환경연대가 9월 5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 촉구 기자회견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를 열고 생리대를 몸에 붙이고 바닥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오랜만에 대형할인마트 일회용 생리대 코너 앞에 갔다. ‘순한’ ‘한결같은’ ‘좋은’ ‘유기농’ 표지를 입은 생리대들은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이제 생리대 시장은 ‘안전함’이 대세가 된 듯 보였다. 하지만 성분표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일회용 생리대가 표리부동하지 않은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20대 여성 3명이 생리대 코너를 기웃기웃하다 말한다. “저쪽에 엄청 할인하는 생리대 있던데, 그냥 그거 살까?”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된 불안감은 무기력을 낳는 걸까, 혹은 식약처 조사결과를 신뢰하는 걸까. ‘1+1’ 할인판매와 해외직구와 유기농제품 품절 사이를 오가는 ‘월경난민’들이 떠올랐다. 8월 ‘생리대 사태’이후 무엇이 변했고 어떤 것은 여전하며, ‘생리대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진 질문은 무엇일까?

 

여성환경연대가 8월 24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제보 결과와 피해 제보자의 경험을 듣는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환경연대가 8월 24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제보 결과와 피해 제보자의 경험을 듣는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09명의 목소리 “내 몸이 증거다”

지난 8월초 뜨겁던 여름, 몇몇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생리대 부작용 게시글을 보도하면서 ‘생리대 사태’는 시작되었다. 피해사례는 생리양과 생리기간 감소, 부정출혈과 생리통 증가부터 난소증후군과 자궁내막증 등 좀더 심각한 질환까지 뻗어 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여성들과 증상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일회용 생리대 논란이 터졌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올 게 왔다 싶었다. 경험상으로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여성들이 호소한 건강문제의 원인이 모두 일회용 생리대라는 증거는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일관성과 연관성이 보였다. 일단 목소리를 모아보자.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피해 제보를 받기 시작했고, 48시간 만에 생리대 부작용 제보자가 3009명이나 모였다. 하지만 식약처와 기업은 여전히 ‘과학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9월 5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 일회용 생리대를 온 몸에 붙이고 아스팔트 위에 누웠던 검은 옷의 여자들은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라며 일회용 생리대 유해한 모든 성분조사와 역학조사를 요구했다. 생리대 아바즈청원 서명이 6000명을 넘고, 오프라인 서명까지 합치면 총 7222명에 달했다. 정의당과 환경부에 생리대 역학조사 청원서명을 제출한 인원도 2천명이 넘었다. 별도의 법적 소송에 직접 참여한 여성도 5000명에 이를 정도로 상황은 거세고 심각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40년간 사용하는 생활필수품 생리대.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고 의심했지만, 남성 중심의 의학체계 내에서 ‘질병으로 정의되지 못한’ 증상, ‘발화되지 못한’ 몸의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예민하거나’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거나’ ‘게을러서 면생리대도 사용하지 못한’ 몇몇 여성들의 매우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취급받던 경험적 증거가 공동의 요구로 집단화되고, 확인됐으니 이미 과학적 증거였다. ‘품위를 지키는’ 공식 석상에서는 ‘위생용품’ ‘여성용품’이라 불려야 했던 생리대를 누구나 수치심없이 입에 올리고 토론하게 됐다.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사회의제가 되지 못한 여성의 월경, 생리통, 생리대 안전성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됐다는 것이 이번 생리대 사태의 가장 큰 성과다. 이제까지 일회용 생리대에 어떤 물질이 들어있는지, 생리대는 안전한지, 급증하고 있는 여성 생식계 질환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조사가 전혀 진행된 바 없다는 것을 알고 연구자들조차 깜짝 놀라기도 했다.

‘월경’ 드디어 사회의제 되다

식약처는 부실한 관리책임 발뺌하기에 바빴다. 여성환경연대 생리대 검출실험에서 발암성, 생식독성, 피부자극성 등이 확인된 물질만 22종이지만, 식약처는 “하루에 7.5개씩 평생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언론과 국회는 관련부처에 여성건강 대책을 마련하고 압박하는 대신 ‘생리대 부작용’을 문제제기하는 여성들의 청원과 검출실험 자체의 ‘의도’와 ‘배후’를 ‘부적절하게’ 문제 삼았다. 우리는 다함께 여성의 몸이 겪는 불편과 고통을 대하는 국가와 사회의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재확인했다. 다시 확인하자면, 생리대 사태의 본질은 기업이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생리대를 50년 가까이 생산해왔고, 정부는 책임있는 관리를 하지 않고 방관했으며, 여성은 고통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비록 검출된 양이 미량이지만 그 어디에도 유해화학물질이 미량이라서 안전하다는 증거는 없고,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환경과 물건을 통해 장기간 중복노출되는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지금, 4차 혁명을 논하는 시대, 저렴하고 안전한 생리대는 기술부족이 아니라 의지 부족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기업 스스로가 자신이 생산해 수많은 이익을 얻었던 제품의 안전성 입증하는 책임을 져야한다.

한편, 생리대 속 유해물질이 문제되는 순간 여성 내부 불평등의 문제도 제기됐다. ‘누가 안전한 생리대와 월경용품 접근권을 가지는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온라인으로 대량 구입한 생리대의 부작용 논란은 2~30대 여성에게 집중됐고, 유기농 생리대는 ‘안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성들에게 좀더 실현가능한 대안이 됐다. 유해한 일회용생리대를 피해 선택하는 면생리대와 생리컵은 생활보조인으로부터 일상의 세세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여성에게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고, 통풍도 어렵고 햇빛도 들지 않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20대 여성도 면생리대를 사용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때 불법유통으로 논란이 된 일회용 생리대가 국내 판매처를 찾지 못하고, 코이카 해외원조 프로그램를 통해 아프리카 10대 여성들에게 지원됐다는 뉴스 기사도 글로벌 차원의 여성 내부 불평등을 고민하게 했다. ‘모두를 위한 월경권’에 대한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벌인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풍문으로 떠도는 것처럼, 내년 상반기에 출시될 ‘안전하고 비싼’ 프리미엄급 생리대로 수렴되지 않도록 노동권, 주거권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요구와 통합해야 한다.

생리대 사태 이후 4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지지와 거센 요구에 힘입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성과가 있었다. 정부에 의한 생리대 전수조사 실시, 생리대 성분분표시제 시행 확정, 생리대 건강영향조사 결정이 지난 넉달 동안 여성들이 이룬 성과다. 12월 7일에는 대안 월경용품인 생리컵 판매허가도 났다. 안전성 문제뿐 아니라 무상생리대 이슈도 재점화되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 생리대 거품가격을 조사한다고 발표했고, 한 생리대 업체는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며칠전, 한국소비자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의 제조·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업계의 자율적인 노력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단체와 환경단체 등은 ‘생리대 안전과 여성건강을 위한 행동네트워크’를 꾸려 공동대응과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정부가 적절하게 관리하고 규제하는지 감시하고 요구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월경권’ 논의해야

무엇보다 우선, 여성들이 40년 동안 안심하며 월경할 수 있도록 생리대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회용 생리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이옥신, 농약, 향, 프탈레이트 등을 포함하는 제대로 된 전수조사가 시행되고, 결과에 따라 생리대 규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시작될 생리대 건강영향조사 설계에 환경보건 전문가나 시민단체뿐 아니라 여성학자, 피해여성의 참여도 보장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민개방형 역학조사 모델로 출발해야 한다. 생리대 허가시 사전 안전성 검토 제도화가 필요하고, 내년 10월 예정인 생리대 전성분표시제의 공개범위와 표시방법 등에 대한 논의와 모니터링도 후속 과제다.

이번 생리대 사태가 일회용 생리대뿐 아니라 ‘여성용품’ 전반에 포함된 유해물질과 여성건강에 대한 무관심을 벗어나는 커다란 계기가 돼야 한다. 월경하는 여성의 몸을 ‘냄새나는 몸’으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비정상’의 몸으로 규정하며 화학약품처리를 권하는 여성청결제, 질세정제 등도 가부장적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일회용 생리대 안전성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여성건강정책 마련을 위해 현재 가임기 여성을 중심으로 한 건강 대책을 전반적인 여성 몸 의제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제품안전뿐 아니라 월경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과 인식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월경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이다. 여성혐오와 오버랩되는 월경혐오 등 월경문화와 인식개선, 다양한 월경용품 정보획득이 공교육 내에서 이뤄져야 하고, 생리대 공결제 실질화나 생리휴가 유급화 논의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5월 뉴욕시에서 실시한 것처럼 국공립학교와 공공시설 화장실 중심으로 무상생리대를 시범비치하는 등 무상생리대를 제도화하는 방안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으로 생리대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가능하겠다.

우리는 여전히 월경하는 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지식은 권력과 함께 가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사용하는 월경용품의 사용실태는 어떤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월경하는 기간 불편과 어려움과 고통을 받고 있고 증상은 무엇인지, 그 많은 생리통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월경을 ‘그날’ ‘마법’이라 말하고, 생리대를 ‘그거’라고 표현하는 것을 예의나 품위라고 여기며, 이를 강요하는 문화는 월경과 월경하는 여성의 몸을 혐오하는 사회적 인식을 드러낸다. 바로 이런 사회적 인식이 생리통과 생리대 부작용에 대한 여성들의 공론화를 막고, 문제를 오랜 시간 곯게 만들었다. 월경은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며, 안전한 생리대는 여성건강과 인권의 기초이다. 월경하는 몸의 증거와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몸이 발화하는 이야기, 월경을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 2017년 하반기에 일어난 한때의 해프닝이 아니라, 안심하고 월경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담론과 비주얼의 정치를 해야 한다. 삶은 계속되고, 월경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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