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 교육감 등 선출직에 출마하는 후보들을 인터뷰합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섯번의 선거를 치렀지만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중 당선된 여성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성 교육감은 단 1명입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정당 간 경쟁이 아니라 정당 내에서 공천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후보자들의 힘든 싸움 그 자체가 여성운동이기도 합니다. 첫번째로 인천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한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인천시장 출마 선언한 홍미영 부평구청장

달동네서 빈민운동하다

주민 권유로 구의원 출마

시의원·국회의원·구청장까지

“시민들 행복하지 않아

사람 중심 행정으로 가야 

돈·조직 경쟁서 밀리는

여성들 연대해야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풀뿌리 의정 경험을 다진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이제 내년 인천광역시장에 도전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풀뿌리 의정 경험을 다진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이제 내년 인천광역시장에 도전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성하게 전개되는 출마설 속에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은 누구보다 먼저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나섰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입지전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달동네에서 빈민운동과 마을공동체 운동을 하던 주부가 주민들의 권유로 1991년 구의원에 출마하면 정치를 시작했고 이후 광역의원(재선), 비례 국회의원을 거쳐 구청장 연임에 성공해 7년째 뛰고 있기 때문이다.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풀뿌리 의정 경험을 다진 그는 이제 내년 인천광역시장에 도전한다.

홍 구청장의 인천시장 출마는 한국 정치 지평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기대감을 준다. 전국을 통틀어 단 한 명의 여성도 당선되지 못한 광역자치단체장 도전이기도 하고, 기초의회부터 시작한 지자체 행정 전문가의 도전이라는 점도 그렇다. 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그가 민주당의 험지로 꼽히는 인천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보수의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

18일 인천 부평구청장실에서 만난 홍 구청장은 출마를 하는 이유로 “사람이 중심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구청장으로 일하면서 사람 중심의 행정을 어떻게 실천해왔느냐는 질문에 홍 구청장은 ‘숙박행정’을 꼽았다. 동네마다 찾아가 경로당 등에서 하룻밤 숙박을 하면서 다양한 일을 벌인다. 오후 10시부터 주민들과 대화하고, 11시부터 동네의 야간 환경을 살펴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반 동네를 다시 돌아보고 출근한다.

“주민들이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얘기하다보면 실생활에 필요한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건의할 수 있어요. 우리가 직접 보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도 되고 소통하고 이해하기도 쉬워요. 구청장 한명만 숙박을 하지만 각 부서의 공무원들이 동네에 찾아와서 들여다보게 되죠.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는 행정의 시선을 그쪽으로 끌어오는 효과가 있어요.”

홍 구청장이 도서관 건립을 “사람 중심의 사업이고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 중 하나”라고 소개하는 데서는 그의 철학이 엿보였다. 작은 예산을 더 아끼고 주민센터 신설하지 않는 대신 도서관 5개를 건립한 것도 잘 한 일로 자평한다. 한 도시 한 책읽기, 토론회 등 주민들이 저절로 모이고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청렴도 꼴찌였던 부평구청은 홍 구청장의 임기 첫해가 지나자 1위로 탈바꿈했다. 그 비결에 대해서는 “공직자들에게 열심히, 소신껏 일을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줬다”고 했다.

“공직자는 적게 벌더라도 사회적 보람도 있고 내부에서 근평(근무성정평정)·승진 등으로 인정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동안 직원들은 지연, 학연 등으로 나뉘고 승진에 영향을 받았는데요. 그렇다보니 주민을 보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위를 쳐다봤습니다. 저는 주민과 소통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챙기고 올바르게 일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현장에 민원 처리하러 갔다가 새우젓 뒤집어쓰고 온 직원이 있어 직원 아내에게 상품권도 챙겨주고 나중엔 승진에도 반영이 됐어요. 저는 부모님이 이북 사람이어서 지역 연고도 없고, 인천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아 학연도 없이 자유롭고요.”

사람 중심의 행정은 거창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교통주권’을 예로 들면 우리 지역 안에 아무리 세계적인 공항이 있고, 고속철도가 지나다닌다고 해도 주민들의 일상 속 편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시에서 제일 큰 병원에 가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버스타고 가기 불편하다면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잖아요.”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천은 민주당 험지 맞다”

구청장직을 소신껏 수행하고 있지만 선거에서는 지역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은 민주당엔 험지이기 때문이다. 민선 6기 동안 송영길 전 시장을 제외한 인천시장 전원이 보수정당에서 배출됐다. 송 시장은 현역 프리미엄에도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낸 자유한국당 유정복 시장에게 패했다. 대선에서는 문 대통령이 1위를 했다는 점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홍 구청장은 “인천이 험지가 맞지만 한편으론 기회이기도 하다”고 내다봤다. 그에겐 동네 구의원 출마도 험지였다고. “가진 것 없어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떤 당이나 멋진 정치인보다, 자신들의 삶에 공감하고 진정성있게 바꿔 줄 수 있는 대변자를 절실히 원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인천의 보수적 색채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때문에 보수적 세력이 강하다는 건 어느 지역보다 평화를 갈망한다는 의미”라고 정의했다.

“인천은 일제시대에는 착취의 중심지였고 6·25전쟁의 피해가 심각했어요. 시민들은 평화를 통해 행복을 얻기를 바란다고 생각해요. 주민 중에 참전 용사 다섯 어르신의 구술을 자서전처럼 만들어 펴냈더니 보수단체가 저에게 상패를 주는 거예요. 전쟁 피해자들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처 보듬고 고통을 헤아려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닐까요.”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가 제일 힘든 게 공천”

‘인천 험지’에 여유와 자신감을 드러낸 홍 구청장이 생각하는 험지는 따로 있었다. “제가 제일 힘든 게 공천”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즉 그의 험지는 ‘민주당’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선거철만 되면 성차별은 극심해진다. 추우나 더우나 선거운동 일선에 뛰는 이들은 여성이지만, 정작 공천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정당이 받는 여성정치발전기금은 받으면서도 교육은 하지 않고 여성인재가 없다고 여성혐오 발언을 한다.

홍 구청장은 지금의 정치는 중앙과 남성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고 정당의 문제에 있다고 설명했다.

“100년 정당이 없어요. 수시로 바뀌면서 내부에서 좋은 틀거리가 충분히 쌓이지 못하고, 권력을 위해 이합집산되니 돈이나 조직이 없는 여성으로서는 끼어들 수가 없어요. 여성들은 대학까지 나와도 집에 있는 경우 많고 가진 것도 없죠. 사회에 나오더라도 일·가정양립이 버겁다보니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힘들었고요.”

홍 구청장은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경쟁을 정치권은 원칙인양 했다”면서 “공천을 바로 잡는다는 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촛불민심을 반영한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촛불민심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 내각 여성 30%를 임명했던 것처럼 당이 지방정부의 변화를 위해 30% 공천 노력을 해야 한다. 촛불 민심이 당심을 바꾸고 국회를 바꿔 탄핵했듯이, 지금 촛불 민심이 중앙당의 남성 중심적 관점을 바꿔내서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사자인 여성들이 꽃길 걷듯이 하면 안 된다. 목숨 내놓고 하는 남성보다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구청장은 정치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당 위원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하지만 돈과 조직을 놓고 남성들과 경쟁하면 대다수 여성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면서 “중앙당이 여성정치아카데미를 열면 전국에서 참석하는 건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의지를 보이고 연대를 강화하는 기회”라며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의 전국여성위원장과 여성 국회의원 등 선배정치인들의 책임과 역할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 스웨덴 의회에 방문해 만났던 여성 국회의장의 소개했다. 의회에 여성이 45% 정도에 이르는데도 의장 자신의 목표는 여성의 비율을 올리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는 거다.

“여성 선배들은 혼자서 남성들 눈치 볼 게 아니라 같이 가야 한다는 의지를 가졌으면 해요. 성평등한 세상이 여성만 좋은 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고 후대를 위한 국가 동력이 나올 거라는 확신을 가졌으면 합니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경로당에서 쪽잠을 잔다는 그지만 노파심이 생겼다. 해가 바뀌면 정치경력 26년차가 되는 기성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칼과 방울을 차고 다닌 조선시대 남명 조식 선생과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몸가짐을 살피고 반성하는 마음에서 방울을, 돋아나는 그릇된 생각을 잘라내기 위해 칼을 가졌다고 해요. 현장을 돌아보면서 비전 세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새벽마다 명상을 하고요. 정치인이건 행정가건 리더는 손은 직원과 함께, 눈은 멀리, 발은 현장에서 주민보다 반발자국 앞서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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