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에 대한 ‘전문적’ 정보 없이

처방되는 ‘전문의약품’, 응급피임약

어렵게 약을 먹었으나 임신 5주 진단

사후관리비 뺀 60만원에 수술 받아

애인이 지는 책임·고통은 일말이었고

모든 것은 내 몫이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12월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폐지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12월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년 전 즈음이었을까, 그 시기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입대한지 얼마 안 된 군인이었다. 그의 첫 휴가 때 우린 첫 섹스를 했다. 전부터 몇 번 시도를 했었지만 발기가 되질 않아 허탕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번의 삽입을 시도하다 콘돔을 착용할 겨를도 없이 그는 사정을 해버렸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진료를 하는 병원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맘에 문 연 약국에 가 응급피임약 처방을 요구했으나, 약사는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응급피임약은 성관계 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복용해야 피임 효과가 높아지는데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어 응급한 상황임에도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떤 산부인과에서는 이런 절박함을 이용해 비급여로 5만원에서 10만원의 비용을 받고 응급피임약을 그냥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국 하루를 더 기다려 응급피임약을 처방 받았다. 하지만 ‘전문’의약품임에도 의사는 약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안내하기는커녕 “아직 48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살짝 불안하겠지만 약을 잘(?) 먹고 생리를 안 하면 다시 오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덜렁 ‘처방전’ 하나를 들고 급하게 약국을 찾아갔다. 약국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통한 복약 안내는 하지 않고. 토를 하거나 설사를 하면 다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의사의 애매한 진단과 15%의 피임율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불안에 떨며 일상을 보냈다.

다음 달이 되어도 생리 혈이 비치치 않았다. 속은 이상하게 메스껍고, 유난히 졸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다. 다음날 간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고, 임신 5주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진단을 내린 의사에게 원하지 않는 임신이라고 했더니, 실장이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녀는 수술비와 사후관리비를 포함해 120만원을 불렀다. 나는 가난한 공무원 준비생이었고, 남자친구는 군인이었던지라 그 큰돈을 구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한 병원에서 사후관리비를 제외하고 60만원에 수술을 해준다고 했다. 절박했던 나는 의료진의 전문성, 수술 시의 안전, 수술 후의 부작용 ‘따위’ 등은 고려할 여력조차 없었다. 내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내가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의 질도 그만큼 낮아졌다. 현재 직장을 다니는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120만원의 ‘사후관리’를 해주는 병원을 택했으리라. 현실은 여성들이 몇십 만원조차 없어 제대로 된 수술 장비조차 구비되지 않은 곳에서 위험한 시술을 받거나, 계단에서 구르거나, 심지어는 자살을 하는 등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몰아간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날짜를 잡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신분증을 들고 직접 내원해서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군인이라 내원하기 힘들다 했더니, 병원에선 동의서가 없으면 수술을 할 수가 없다는 말만 딱 잘라 반복했다.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은 전적으로 남자친구에게 있었고, 나는 휴가를 빨리 나와 서명해달라고 ‘구걸’해야 했다. 남자친구가 거짓말로 둘러대고 간신히 휴가를 받아낸 건 2주 후였다. 그 사이 나는 스트레스로 하혈을 했고, 의사는 유산기가 있으니 하루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내 안전을 위한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이 모든 것에는 남자친구의 동의가 필요했다. 내 불안은 극에 달해 돈을 주고 남자친구 대행을 구해야 하나 까지에 이르렀다. 실제로 돈을 주면 직접 남자친구를 대행해주거나, 연결해주는 업체들까지 있었다. 남자친구에게도 임신의 책임이 있었지만, 그가 지는 책임과 고통은 일말이었고 모든 것은 내 몫이었다. 이미 법은 날 낙태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낙인찍었으나, 죄를 같이 범했음에도 법의 책임에선 벗어난 남자친구가 후에 헤어진 보복으로 날 고소하진 않을까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위 이야기들은 내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아닌 내 친구를 포함한 대다수의 여성이 겪고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제까지 ‘찬성 혹은 반대’, ‘여성의 결정권 혹은 태아의 생명권’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낙태죄를 이야기 해왔다. 나는 누군가의 찬반 의견 따위와 상관없이 안전과 생명을 위해 기꺼이 불법이 됐다. 생명을 가볍게 여겨 임신중절을 결정하지 않았다. 내겐 어떤 결정권도 오롯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과 맥락들,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통하여 낙태죄 사안에 접근해야 한다. 피임, 섹스, 출산, 임신중절, 양육까지 모든 논의의 주체와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일을 멈춰야 할 것이다. 현행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 남성의 문제도 아니며 우리 모두가 관심 갖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다. 그래서,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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