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말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말을 시작한 사람과 한시간 가량 여러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이 친구와 한 팀이 되어 창문틀에 끼울 방충망을 새로 조립하고 있는데 우연히 일본 이야기가 나왔다가 불쑥 그가 “동양 여자들이 남자를 존경해서 난 동양 여자들이 좋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찔한 것이….

그는 케냐에서 이곳으로 온 국제 학생으로 처음부터 동양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홍콩과 도쿄를 꼭 가보고 싶어했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면서 프랑스 문화에 익숙한 그가 흥미로웠다.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반갑기도 했고.

그의 한국, 중국과 일본에 대한 지식은 단편적인 것이고 사실 나랑 일하면서 알게 된 것에다가 일본에 대한 관심으로 덤으로 알게 된 지식이 전부이지만 주변 외국인들과 미국 애들에 비하면 꽤 높은 것이었다. 또한 태권도가 한국의 스포츠이며 올림픽 종목인 것도 알고 있어서 내심 기분이 좋았고 우쭐한 마음에 가끔 발차기도 선보이곤 했다.

한번은 한국 음식을 한번 만들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일하면서 그가 점점 싫어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얘기하자면 길고 복잡하다.

하여간 오늘 모처럼 이 친구와 한 짝이 되어 일하면서 나온 이 얘기에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아연질색할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동양여성들이 남성을 잘 따르고 순종적이고 무엇보다 존경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나는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다. 책에서 읽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언제 나온 책인지 그리고 누가 쓴 것인지 참 궁금했으나, 그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한 콜롬비아 인이 “정말? 나도 요즘 일본 애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끼어들었다. 나는 그 말을 막으며 “너 그 사실을 믿니?”라고 묻자 그 녀석은 책에서 그렇게 말하니 확신하고 그렇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난 그에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더 이상 유효한 말은 아니라고 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이뤄지면서 여성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전통적 동양사회에서 변하기 시작했다고.

그러자 그는 대뜸 “그것이 다 미국 시스템 때문이야!”라고 한다. 미국 문화가 여러 나라의 전통문화를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사회에서 지나친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며 사회적 지위는 함께 누려야 하는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당연한 것이라고 하자 그는 동의하는 데 어려워했다. 이쯤에서 대충 이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이 친구와 오늘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사고를 하고 있는 남자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도 남자들끼리 있으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농담들이 얼마나 난무하는지… 나는 그 때 반대적인 입장의 이야기를 했다가 바보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수차례 했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여성 차별을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그 이면에서 여성차별적 사고와 말들을 주고받는 것, 그리고 은어를 통해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여성주의에 열려 있으며 함께 하겠다는 남자들도 그 속내는 다른 것을 품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럼, 나도?” 하는 질문도 함께 던지면서 그럴 수 있겠다는 것과 간혹 남자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자 참으로 씁쓸했다. 내 입장을 당당하게 밝히고 그렇게 소신있게 살아가는 것에 나 자신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해방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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