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세 보이려는’ 전략 삼는 남학생들

 

‘패드립(패륜 드립)’, ‘섹드립’이 “꿀잼”이라는 10대들이 있다. 어머니, 여자 아이돌 등을 성적으로 조롱하거나 낙인찍는 게 그들의 주된 놀이다.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 표현은 놀이에 재미를 더하는 양념일 뿐이다. 반발하거나 불쾌함을 표하는 학생들은 공격받거나, ‘프로불편러’ ‘보빨러’(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남성들을 비하하는 말)로 낙인찍힌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소수자 혐오가 교실로 번졌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다. ‘나쁜 아이들의 문화’는 언제나 고민거리였다. 요즘은 그게 10대 주류의 문화로 변해간다는 게 더 문제다.

질문을 바꿀 때다. 누가 이 문화를 주도하고 있나? 최신 연구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적극적으로 차별·혐오 놀이문화를 받아들여 퍼뜨리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인권 감수성이 훨씬 낮다는 해석이 나온다. 폭력적인 언행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자신의 성적 권리를 주장하고, 침해 시 대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적다. 공교육이 신속하게 대응하지도, 적극 개입하지도 못하는 사이, 멍들고 망가지는 것은 여학생들만이 아니다.

61.1%, 혐오 표현 사용

여학생의 세 배 이상

성적 권리 인식 낮고

성폭력 당해도 말 못해

 

“느금마, 엠창, 니애미... 너도 친구들끼리 이런 말 하니?”

“안 하는 애들은 없겠지. 근데 그냥 하는 말이야.”

“그냥?”

“별 의미는 없는데, 그런 말을 해야 대화가 된다고.”

경기도 안산시 모 중학교 2학년 김준환 군과 어머니 이혜승 씨의 대화를 묵묵히 듣던 아버지가 말했다. “부끄럽지만 남자들끼리 세 보이려고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건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야. 내가 어렸을 땐 남자들끼리 욕만 하는 게 아니라 도시락통에 가래침을 뱉었어.”

서울 A 고등학교 2학년 한 학급에선 “닥쳐 게이 새끼야” “후장 조심해라” 같은 말이 남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오간다. 이효성(17) 군은 “너무 불편하고 화나서 그런 말은 쓰지 말자고 했다가 다른 남학생들에게 ‘노잼 인간’ ‘호모종자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한때는 그도 혐오 표현을 썼다. 자신이 젠더퀴어임을 깨달은 뒤로 달라졌다. “페미니스트 친구와 함께 공부하며 ‘남성성’에 대해 고민 중인” 이 군은 지난 11월 25일 서울시교육청 주최 성평등 교육정책 1차 토론회에 참석해 자신의 생각을 나눴다. “저도 그랬지만, 남자들은 자기의 소수자성을 부인하려고 하고, 그게 강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요. ‘갈 데까지 가보자’ 대회를 여는 것 같아요. 함부로 한 혐오발언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을 상처입히는데도요.”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이 서울 시내 중학교 3학년 학생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 결과 중 일부. ⓒ박규영 디자이너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이 서울 시내 중학교 3학년 학생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 결과 중 일부. ⓒ박규영 디자이너

요즘 10대 남학생들은 ‘야동’ 등 성적 재현물을 집요하게 검색하고, 보고, 공유한다. 남성들이 어릴 때부터 소수자 비하적·폭력적인 ‘남성성’을 학습하고 이에 기초한 또래문화를 만들어가는 배경이다. 실제로 여성이나 남성 혹은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표현이나 ‘패드립’을 쓴 적 있다는 남학생은 61.1%. 여학생(17.2%)의 세 배 이상에 달했다. 최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이 서울 시내 중학교 3학년 학생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 결과다.

일부 여학생들도 성적 비하·혐오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학생들이 “친구들이 쓰니까, 습관적으로” 여성 비하·혐오 언행을 한다면, 여학생들은 이런 문화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미러링’ 반격 차원에서 남학생들의 문화를 답습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0대 간 성적 ‘놀이’와 ‘장난’은 성폭력과 맞닿아 있다. 성적 권리를 침해당해 불쾌했다면서도, 그것을 ‘문화’로 받아들여 문제제기하지 못했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남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겪은 또래 성폭력 피해 양상은 여학생들보다 다소 심각했다. ‘원치 않는 성관계(여 1.2%, 남 3.9%)’, ‘신체 부위나 성적 행위를 담은 사진, 동영상에 찍힘(여 2.2%, 남 5.4%)’, ‘다른 사람 앞에서 성관계나 자위행위 등 강요(여 1.8%, 남 9.9%)’ 등이었다.

남학생들의 성폭력과 자신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인식은 여학생보다 전반적으로 더 낮다. 서울 B 중학교 보건교사 김미리(34·가명) 씨는 “분명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심각할 것이다. 남학생들은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는 경우가 많고, 피해를 당하고도 말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일상적인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불쾌하다고 앞에서는 말하는 건 보통 여학생들이에요. 남학생들은 가만있거나 일단 동조하는 척하죠. 나중에 따로 와서 ‘선생님 그때 힘들었어요’ 라는 남학생들이 있어요. 한 번은 한 남학생이 반창고를 달라고 왔는데, 자세히 보니 심각한 육체적 괴롭힘을 당한 것 같더라고요. 바지 엉덩이 쪽이 찢어져 있고 피가 묻어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 애가 ‘게이’라는 소문이 났더군요.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어렵게 인정했지만, 끝까지 자기 몸을 보여주길 거부했고 신고도 안 했어요. 나는 약하니까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 인식도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낮다. 친구가 동성애자이거나 트랜스젠더임을 알게 됐을 때, ‘절교하겠다’거나 ‘거리를 두겠다’고 답한 비율은 남학생(동성애 26.8%· 트랜스젠더31.7%)이 여학생(동성애 10.4%·트랜스젠더 16.2%)보다 높았다. 33.4%가 성 소수자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봤는데, 여학생 중에선 41%, 남학생은 26.1%였다.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봤다는 남학생은 각각 5.4%와 0%뿐이었다. 여학생은 21.7%와 5%였다.

 

학교와 미디어, 한국 사회가 10대들, 특히 10대 남성들을 어떤 시민으로 길러내고 있는지 되묻을 때다. ⓒ뉴시스·여성신문
학교와 미디어, 한국 사회가 10대들, 특히 10대 남성들을 어떤 시민으로 길러내고 있는지 되묻을 때다. ⓒ뉴시스·여성신문

현실 성범죄로 이어지기도

교사 변화·정부 개입 필요

공교육은 이러한 문제 앞에 속수무책이다. 김애라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생 시기 폭력적인 성적 놀이문화는 학교교육 내에서 제대로 대응 및 교육이 되고 있지 않다. 최근 대학가가 몸살을 앓고 있는 카톡방 성희롱 문제, 온라인상의 여성 및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발언, 각종 몰카 촬영 등 사안은 바로 학생 시기 적절한 교육적 대처가 부재한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C초등학교 나용호 교사는 “어른들의 나쁜 문화가 아이들에게 쉽게 흡수되는 원인과 해결책을 찾자”고 제언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사들이 먼저 변화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예회 논의를 할 때 남학생은 태권도 시범을, 여학생은 부채춤 추자는 얘기를 더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는~’ 이라며 일반화하는 일이 학교에서 사라져야 해요. 교사들은 아이들이 성별로 자신을 규정짓지 않고, 개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차별과 혐오가 발붙일 수 없는 교육을 원한다면, 학생, 교사, 학부모, 미디어, 사회 모두를 성찰하고 새롭게 기획해 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학생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처럼 학교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적 없는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교육청 정책생산 담당자들의 성평등 의식 수준도 점검해야 한다. 이들의 왜곡된 성의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교사들의 변화 노력은 헛된 구호에 그친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나, 행정 주체인 교육부 내에는 사실상 통합적인 성평등 교육 관련 전담 부서가 없다.  

학교와 미디어, 한국 사회가 10대들, 특히 10대 남성들을 어떤 시민으로 길러내고 있는지 되묻을 때다. 평등과 다양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공교육은 실현되고 있는가? 학교 구성원의 절반인 여성의 시각은 교육 정책에 반영돼 있는가? 여성신문은 신년호부터 학생들과 교육 관계자의 물음과 답변을 전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