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괴물이 돼버린 페미니스트의 딸, 메리 셸리
[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괴물이 돼버린 페미니스트의 딸, 메리 셸리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7.12.12 21:08
  • 수정 2017-12-28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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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스타인』 메리 셸리

 

『프랑켄스타인』 메리 셸리
『프랑켄스타인』 메리 셸리

영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책 『여성의 권리 옹호』(1792)을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는다면 이성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비웃었다. 이것은 마치 오랑우탄을 교육하면 이성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장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는, 다른 몸을 가진 여성이 어떻게 이성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의심했던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여성을 남성을 위한 보조적 존재로 길러야 한다고 봤고, 현명한 임마누엘 칸트조차도 여성이 가볍고 감정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외모에만 관심을 보이고 복종을 강요한 사회에서 결혼은 거룩한 제도가 아니라 “합법적 매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런 도덕 가치를 만들어내고 지속시키는 군주제와 교회권력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아나키즘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동거를 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불같이 살아온 울스턴크래프트는 38세에 11개월된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런던 사회에 또다시 그의 이름이 퍼져나갔다. 그의 딸 메리가 아버지의 제자이자 천재 시인 퍼시 셸리와 이탈리아로 애정도피행각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임신한 퍼시의 아내는 템즈강에 뛰어내려 자살해버렸고, 런던 사회는 그들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었다. 결혼제도에 도전하고, 용감하게 사랑을 선택했던 메리의 삶은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아나키스트 아버지의 철학을 그대로 따르는 삶이었다. 그러나 평생 결혼제도를 비판했던 고드윈은 사람들의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둘을 불러들여 빠르게 결혼시켜버렸다.

더욱 과감해지고 용감한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보면서 떠오른 에피소드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자유로우며, 철저하게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때론 무례하게도 보이고 당당하게도 보이는 그들은 사회의 관습과 권위에 도전한다. 그들은 메리처럼 제멋대로의 사고뭉치 영영 페미니스트들이 아닐까?

울스톤크래프트의 딸에 관해 살짝 접혀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메리와 퍼시가 애정도피행각을 벌이며 찾아간 곳은 제노바의 호숫가, 바이런의 집이었다. 평생 달콤한 연애 시나 쓰며 살아갈 것 같은 낭만 시인 바이런과 그들은 길고 먼 창작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들이 선택한 주제는 ‘공포 문학’이었다. 등줄기가 오싹하고 소름이 돋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창작의 열정을 함께 나눴다. 그들은 왜 낭만, 사랑, 공포 따위의 하찮은 감정을 읊조리는 한심한 놀이를 했을까?

계몽주의자들은 중세 암흑시대를 밝힐 이성의 빛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성이 진리를 탐구할 수 유일한 도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성만을 강조할수록, 감정은 불필요한 것, 혼란스러운 것 그리고 여성스러운 것으로 치부됐다. 공포, 슬픔, 열정은 이성이 부족한 여성들의 특성일 뿐, 감정의 절제가 지성이며, 모호함 없는 분명함이 진리였다. 그런 시대에, 제노바 호숫가에서 벌어진 ‘공포 문학’ 경연은 감정의 언어를 지키려는 저항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의 논쟁이 아니라 뜨겁고 뒤틀리고 경악스럽고 설레는 감정을 언어를 조각하고 있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딸 메리는 이곳에서 『프랑켄스타인』(1818)을 쓰게 된다. 소설이 처음 런던에 등장했을 때, 아무도 그 소설이 스무 살의 어린 여성의 글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지식의 방대함과 상상력의 웅장함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도 소설속의 괴물이 느꼈던 외로움, 비참함 그리고 그것이 차츰 분노로 변화하는 심리 묘사는 사람들을 전율시켰다. 사람들은 철없는 메리를 비난했을 뿐, 그가 외로움과 멸시 속에서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메리는 소외당해 울부짖는 괴물의 모습 속에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낸 것이다.

어떤 영페미니스트들은 종종 철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며,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프랑켄스타인』은 필자에게 묻는다. 영페미니스트들의 상처, 외로움, 공포 그리고 분노를 눈치나 채고 있는가? 그들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가? 그들이 우리들의 거울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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