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시인 신현림

8년만에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 펴내

동시대 기록하고 위로

‘사과꽃’ 출판사 세우고

작가 발굴·작품 소개 계획

 

시인 신현림은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가난의 힘’)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남다른 상상력으로 기록하면서도 동시대를 사는 이들을 가만히 다독이고 위로를 건넨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인 신현림은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가난의 힘’)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남다른 상상력으로 기록하면서도 동시대를 사는 이들을 가만히 다독이고 위로를 건넨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나는 자살하지 않았다’)고 시인은 외쳤다. 북촌 반지하 빌라에서 꼬박 8년을 보낸 신현림(56) 시인의 글 속엔 그간 반지하에서 웃고 울었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절망만 담긴 것은 아니다. 시인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혁명’을 했고 ‘희망’을 봤다.

“하루 햇빛 한 시간도 안 되는/ 끔찍한 반지하 인생”(‘광합성 없는 나날’)이라며 삶을 한탄하고  “8년 일해 번 돈을 잃고 8년째 반지하 방을 못 나오는”(‘물음 주머니’)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가난의 힘은/ 그래도 살아가는 것”(‘가난의 힘’)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가난의 ‘어둠’을 담담히 드러내지만 글은 결국 ‘빛’으로 향한다.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가난의 힘’)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남다른 상상력으로 기록하면서도 동시대를 사는 이들을 가만히 다독이고 위로를 건넨다. 위로가 고픈 이들이 많아서 일까. 반지하에서 써내려 간 시 68편을 모아 펴낸 『반지하 앨리스』(민음사)는 출판 불황 속에서도 출간 한 달 만에 초판이 다 나가고 2쇄를 찍었다. 시인은 딸과 함께 10년 가까운 세월을 반지하에서 보내며 “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든 앨리스”들을 만났다.  

“반지하는 공간을 뜻하는 동시에 서민을 의미해요. 서울에만 반지하가 있다고 해요. 지방에는 드물고요. 지금 청춘들도 반지하로 가고 있죠. 햇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에 살면서까지 중심부에 살고 싶은 이들이 그만큼 많은 거죠. 소외된 존재라도 이곳에선 소외된 느낌이 덜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반지하 앨리스’라는 시에서 진정한 소통을 그렸어요. 나와 같이 반지하로 간 세대와 반지하로 가고 있는 세대의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요.”

“토끼 굴에 빠져든 백 년 전의 앨리스와/ 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 든 앨리스들과 만났다//생의 반이 다 묻힌 반지하 인생의 나는/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서로 마음에 등불을 켜 갔다”(‘반지하 앨리스’)

 

그동안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면도 컸던 시인의 시선은 연륜이 쌓이며 시대의 아픔에도 함께 아파한다.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베이비 박스, 평화의 소녀상 등 동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애도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동안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면도 컸던 시인의 시선은 연륜이 쌓이며 시대의 아픔에도 함께 아파한다.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베이비 박스, 평화의 소녀상 등 동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애도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현림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에 등단해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통해 ‘당대의 제도권적 여성 담론을 뒤흔든 가장 전위적인 여성 시인’으로 손꼽혀 왔다. 『반지하 앨리스』는 그가 8년 만에 내놓은 다섯 번째 시집이다. 그는 전방위 작가라 불린다. 시인이자 화가이며 이미 여덟 차례나 사진전을 연 중견 사진작가다.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관’으로 2012년 울산 국제사진 페스티벌 한국 대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27년차 중견 시인이 된 그는 최근 더욱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달 광주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한국 대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참석했다. “조직위원장인 고은 시인의 추천 덕에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동안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면도 컸던 시인의 시선은 연륜이 쌓이며 시대의 아픔에도 함께 아파한다.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베이비 박스, 평화의 소녀상 등 동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애도한다. 

“너희를 구하지 못한 미안함은/ 뱃전을 치는 천의 물결과/ 천의 촛불과/ 천의 태양으로 쏟아져도/ 말로 다 할 수가 없다”(‘저물녘 푸른빛이 어른거리면’)

“살아서 죽었던 당신들은 다시 살아 행복하라/ 살아서 매맞던 몸은 다시 싱싱하게 펄럭이고/ 산 채로 태워졌던 몸은 되살아 꽃피워라/ 꽃피거나 시들거나 아픈 몸은 더는 아프지 말라”(‘잃어버린 나라의 사람들에게’)

 

8년 만에 내놓은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들고 환하게 웃는 신현림 시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년 만에 내놓은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들고 환하게 웃는 신현림 시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는 “현실을 외면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글들에 대해 “시가 아니라 일종의 아포리즘(aphorism·삶의 교훈 등을 간결하게 표현한 짧은 글)”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시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겐 그러한 ‘낙서 아포리즘’이 책을 접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지만, 시라고 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신현림 시인은 최근 ‘사과꽃 출판사’라는 이름의 독립출판사를 열었다. “돈이 아닌 신념을 갖고 출발한다”는 그는 “조용히 알차고 소박하게 천천히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해 사과꽃 출판사에선 ‘한국 대표시 재발견’이란 취지로 10권의 시선집이 세상에 나온다. 그는 “학연, 지연을 떠나 시대의식을 정직하게 품은 시인들의 작품을 재발견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또 다른 도전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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