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논의하면서

돌봄 가치, 관계는 외면

사회적 지원, 관용 등

행복 기반 회복해야

 

몇 달 전 한국인의 행복지수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2017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살펴보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을 분석해 시사점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세미나에는 개회사와 축사, 기조발표와 발제, 지명 토론과 정당인 토론까지 총 17명의 화자가 등장했지만 모두 남성이었다. 우리사회가 아무리 남성 중심이고 남성적 가치가 주를 이루는 사회이지만 행복에 관한 논의조차 여전히 남성 위주로 진행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행복의 사회적 기반을 논의하면서 인간다운 삶에서 중요한 돌봄 가치나 관계에 관한 언급은 없어 실망이 컸다.

유엔(UN)은 2012년 ‘행복과 안녕(well-being)에 관한 유엔고위급회의’의 지원으로 처음 세계행복보고서를 출간한 이래 올해 다섯 번째 세계행복보고서를 발간했다. 여기서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155개 국가 중 56위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가 세계 11위이고 1인당 GDP가 28위인 우리나라의 국민은 물질적 부에 비해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간 GDP가 국민의 행복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는데, 바로 우리나라가 그러한 비판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제는 국가정책 기조를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성장의 질, 즉 국민의 행복에 두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국정의 중심에 두는 것으로 성장 담론을 재정의”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물질적 부나 건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가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미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네만 교수의 행동경제학 연구에서 밝혀졌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연구자들은 친밀한 관계와 열정과 목적의식으로 할 수 있는 일, 두 가지를 중요한 행복요인으로 꼽는다. 한국사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돌봄이나 관계 인프라가 매우 취약해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거나 지탱하기 어렵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개인 간 소외가 크다.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은 서로 만날 시간도 부족하고 소통에도 미숙하다. 일은 또 어떠한가. 우리국민의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회원국 35개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 이외의 삶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의 노예처럼 살아간다.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불건강한 조직문화로 인해 자신의 일에 열정과 목적의식을 느끼기 어렵다.

세계행복보고서는 국민행복지수의 국가별 차이를 일인당 GDP, 건강한 기대여명, 사회적 지원(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 자기 삶의 선택의 자유에 대한 만족도, 관용(지난 한 달 기부를 한 적이 있는지) 사회적 신뢰(정부와 기업의 부패에 대한 인식) 등 여섯 가지의 핵심 요인으로 설명한다. 실제 이 여섯 가지 요인들이 나라별 국민이 느끼는 행복의 차이의 75%를 설명한다. 전년도에 국민행복지수 상위 10위를 차지했던 나라들(1위 노르웨이, 2위 덴마크, 3위 아이슬란드, 4위 스위스, 5위 핀란드 등)이 올해도 상위 10위를 차지했는데, 위의 6가지 요인 모두가 높은 국가들이다.

이 여섯 가지 중에서도 사회적 지원, 삶의 선택의 자유, 관용, 사회적 신뢰(반부패) 등 네 가지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행복의 사회적 기반’ 요인으로 분류된다. 반면 GDP나 건강한 기대여명은 사회적 기반이라기보다 발전의 목표로 간주된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바로 이 네 가지 요인 – ‘행복의 사회적 기반’ 평가가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경제성장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행복의 사회적 기반’을 회복하지 않는 한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어렵다. 단적으로 위의 보고서는 만일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10%만 증가해도 1인당 GDP를 두 배 올린 것과 같은 정도로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사회적 지원은 수입이나 건강의 영향을 배제하더라도 행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삶의 선택의 자유에 불만족한 사람의 10%가 줄어든다면 1인당 GDP의 40%를 올린 것만큼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지지가 높은 사회는 돌봄 역량이 있는 사회이고, 그런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삶의 선택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기회의 차이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관용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 국민의 10%가 기부를 하게 되면 GDP가 25% 이상 높아진 정도로 행복지수가 향상된다. 호혜적이며 친사회적 행위가 행복을 높인다는 결과는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신뢰는 정부의 부패와 기업 각각의 부패에 관한 응답의 평균으로 정의한다. 사회적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하다. 정부와 기업이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인구가 10% 감소하면 GDP를 20% 높이는 것만큼 행복이 올라간다. 굿 거버넌스는 경제 위기에도 행복을 유지하거나 개선한다는 보고도 있다.

행복해질 권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권에 속한다. 의학의 발전으로 100세 시대가 다가왔다고 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삶은 모두에게 고통일 뿐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고 신뢰할 만하며 협동적이고 삶의 요구에 더 잘 적응한다. 이제 국민의 행복을 우선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과거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추진하는 동안 와해된 공동체를 복원하고 가치관을 회복하며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사회정의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돌봄, 공감, 소통, 배려, 평화, 생명 등과 같은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에 이제까지 발전 과정에서 소외시켜 온 여성과 여성적 가치를 통합하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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