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조 예산 국회 통과

하지만 예산이 성평등하게

사용되도록 책정·배분하는

성인지 예산은 외면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이 극심한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예산안 부결을 주장하는 반대 토론을 한 뒤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1일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을 했다. “사람중심 경제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역설하면서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경제를 사람중심 경제의 3대 축으로 꼽으며 429조원 규모의 예산안의 국회통과를 호소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 제고, 민생 안정, 국민 안전 등을 중심으로 재정지출을 추가 확대하도록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확정된 내년도 예산 규모는 올해 본예산 400조5000억원보다 28조4000억원 늘어났다. 증가율은 7.1%로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4.5%)보다 2.6% 정도 높은 ‘확장예산’이자 ‘슈퍼예산’이다.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144조7천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국회는 법인·소득세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익 상위 77개 대기업과 9만 명의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것을 중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과세표준(과세대상 이익) 3000억원 초과분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은 22%에서 25%로 3%포인트 인상된다. 과세표준 3억~5억원의 소득세 적용세율은 38%에서 40%로 오르고 5억원 초과분은 42%의 세율이 신설돼 적용된다.

새해 예산중에 가장 뜨거운 관심을 보인 항목은 내년 9월부터 지급 예정인 월 10만원 아동수당이다.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0~5세 아동이 있는 모든 가정이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소득 상위 10%는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소득 상위 10%는 소득과 재산을 모두 따져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3인 가구 월 소득 723만원, 재산 6억6000만원 이상이면 탈락 가능성이 크다. 소득은 높지만 양육에 대한 지출이 큰 맞벌이 가구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 무상 급식 논쟁에서 소득이 많은 가정을 배제하는 선별적 복지는 복지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그렇다면 왜 아동수당에서 이런 보편적 복지 기조를 버리고 선별적 복지로 바뀌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정의당이 이번 예산안이 잘못됐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변화된 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하튼 이번 예산 정국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 원안을 상당 부분 지켜냈고,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존재감 부각과 더불어 실속을 챙겼다. 어느 한 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39석의 의석을 가진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로서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예산안 통과를 가져왔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이 과정에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신의를 저버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바른정당과 정책연대를 거쳐 선거연대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합까지 간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예산 정국에서 바른 정당을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정책 연대가 얼마나 허구인지 잘 드러났다.

한편, 이번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가장 치명적인 잘못은 성인지 예산에 대한 논의가 전무했다는 것이다. 성인지 예산 제도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예산 과정에서 고려해 자원(또는 예산)이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예산의 배분구조와 규칙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성인지 예산은 “전체 예산 중 특별한 예산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닌 예산의 책정과 배분에 대한 과정”이다. 따라서 국회는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성인지적 정책목표를 제대로 설정했는지, 국가 차원의 성평등 목표를 설정한 후 이와 연계된 사업으로 대상 사업을 구성하는 방안이 옳게 이뤄졌는지, 부처 자체적으로 적절한 대상사업을 발굴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는지를 꼼꼼히 검토했어야 했다. 성평등 관점에서 볼 때, 예산 국회라 할 수 있는 이번 정기 국회가 성인지 예산 논의를 철저하게 무시한 것은 직무 유기를 한 것이다. 시대정신인 성평등을 외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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