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러시아 문학 통해

한국 근현대 바라본 

『시베리아의 향수』 펴내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조선의 지식인 독자에게 러시아 문학의 휴머니즘과 비판 정신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고 이는 당연히 문학만의 얘기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조선의 지식인 독자에게 러시아 문학의 휴머니즘과 비판 정신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고 이는 당연히 문학만의 얘기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러시아 문학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보다.’ 김진영(56)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최근 출간한 저서 『시베리아의 향수』를 관통하는 내용이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은 지식인과 문인을 비롯해 한국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 당시 러시아, 특히 시베리아는 방랑과 자유의 공간, 유토피아로 여겨졌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당시에는 존재했던 것이다. 지금은 생경한 제3세계로 인식되는 러시아가 그때는 제1세계이자 그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곳,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의 공간으로 얘기됐다.

러시아문학자인 김 교수는 방대한 기록을 참고하고 세밀한 분석과 성찰을 통해 책을 완성했다. “우리의 문화가 당시 러시아와 얼마나 바탕을 같이 하고 있었는지를 밝히고 싶었어요. 당시 우리의 문학 지성사는 러시아에 근원을 두고 있었죠. 제 작업은 단절돼 잊힐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함으로써 자취를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리 작업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잊히고 말죠.” 김 교수의 말이다.

성악가인 어머니와 기자인 아버지 덕분에 그는 러시아 음악을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 때 피아노를 부전공한 김 교수는 러시아 음악에 심취하며 신비함과 장엄함을 느꼈다. 자연히 러시아 문학에도 흥미를 갖게 됐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러시아 문학에 빠져들었다. “러시아 문학은 거대 담론을 얘기해요. 삶은 어때야 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와 같은 이야기들. 음울하고 어둡죠. 그러니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처음 러시아 문학을 공부할 땐 저도 힘들었어요. 지금 학생들에게도 러시아 문학의 담론을 먼저 가르치기보다는 러시아의 예술문화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러시아가 과거부터 우리와 얼마나 가까웠는가를 먼저 얘기해줄 필요가 있어요. 그럼 러시아 문학이나 언어, 사회, 경제, 정치 분야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시베리아의 향수』
『시베리아의 향수』

그렇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예전처럼 문학이나 역사 등 한 분야에 치우쳐 공부하는 것은 편협한 것 같아요. 이제는 ‘러시아학’을 공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볼 수 있죠. 언어만 해서는 그 나라를 알 수 없어요. 러시아 전반에 대한 지식을 쌓고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다양성이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외국 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알 필요가 있게 됐어요.”

현대 한국인에게 러시아는 왠지 모르게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나라, 나와는 상관없는 나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근대 지식인들에게 러시아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자 향수의 대상이었다. 현대 청년들이 ‘탈조선’을 부르짖는 것처럼 당시의 지식인들은 시베리아를 열망한 것이 아닐까.

“그때의 탈조선은 지금과는 달리 ‘탈제국’, ‘탈식민’이었어요. 그때는 러시아가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죠. 또 그때의 지성은 러시아 문학이나 사상을 잘 아는 것과 통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 문학의 힘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약자들끼리의 동지의식, 연대감을 다른 서구문학에서는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당시 러시아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예요.”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 교수는 이번 저서를 통해 “당시 지식인들은 러시아 문학에 열렬히 호응했다. 당시 일본의 서구 열풍을 타고 들어온 외국문학 중 러시아 문학은 강력한 영향력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어 모았다”며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 등은 일본판 러시아 문학을 읽거나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번역해 잡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러시아 문학은 소년과 청춘의 문학이었다”고 밝혔다.

한국과 러시아 문학이 그렇게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 데에는 역사와 시대적 배경이 자리한다. 김 교수는 “핍박 받는 민중의 고통을 분노와 연민의 붓으로 투시한 리얼리즘은 식민지 조선을 비춰주는 거울이자 대리 발언대였고, 투쟁의 창구이기도 했다”며 “조선의 지식인 독자에게 러시아 문학의 휴머니즘과 비판 정신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고 이는 당연히 문학만의 얘기도 아니었다”고 책에서 설명했다.

특히 근대 지식인들은 러시아 여성의 이름을 호명하며 그들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문인들은 쏘냐, 나타샤, 카츄사 등과 같은 여성의 이름을 시나 에세이를 통해 전시하거나 목 놓아 불렀다. 러시아 이름은 조선의 남성들이 애호한, 발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창조되는 낭만의 기호였고, 근대기 남성 작가의 시적·낭만적 공간에서 러시아 이외의 이국적 이름을 발견하는 것 또한 흔치 않은 일이었다.(『시베리아의 향수』 305쪽) 특히 남성 지식인은 백계러시아인 여성을 통해 이상향을 찾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왜 하필 백계러시아인 여성이었을까?

“그들에게서 친밀감이나 동병상련을 느낀 것 같아요. 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잖아요. 이효석 작품에 나오는 ‘인간은 다 쭉정이’라는 표현처럼 쭉정이는 쭉정이끼리 하나가 돼야 한다는 동질의식을 느낀 게 아닐까요. 또 백계러시아인 여성은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무력하면서도 갖출 건 다 갖춘 존재예요. 귀족의 딸인지도 모르겠고, 교양도 있어 보이고, 문화적인 우수함과 지적인 수준은 갖췄지만 남자를 위협할 것 같지는 않죠. 우리말로 하자면 현모양처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러시아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이러한 여성을 ‘내조자로서의 강인한 여성’이라고 대변하기도 해요. 이러한 요소가 당시 조선인 남성들의 이국적이면서도 모던한 로망을 만족시켜준 거죠.”

당대 남성 문인들은 러시아 문학에 무한한 애정을 보이며 탐독해나갔다. 그러나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은 한계로 읽히기도 한다. 특히 문인 함대훈은 『예브게니 오네긴』의 여자주인공 타티아나를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조선의 신여성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러시아의 신여성상에 빗대 조선의 신여성을 비하한 바 있는 그는 자신의 신념과 도덕적 기준에 따라 오네긴을 거부한 타티아나의 행동을 ‘정조를 지킨 여성’으로 바라봤다. 

김 교수는 “타티아나는 단순히 지조를 지켰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완벽하게 간직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며 “그것을 만약 남편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만으로 이해한다면 1차원적 해석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도 옛 사람들의 생각과 글을 읽으며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지?’라며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진화해왔다고 생각해요. 사고의 확장을 꾀하며 앞으로 더 개선해나가야 할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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