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을 지켜라] ⑤ 토종 지키려면 ‘농부권’에 주목해야
[토종씨앗을 지켜라] ⑤ 토종 지키려면 ‘농부권’에 주목해야
  • 강지연 여성학 연구활동가
  • 승인 2017.12.05 15:49
  • 수정 2017-12-06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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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씨앗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금만 유전자 변형을 해도 미래세대까지 로열티를 받아낼 수 있는 수익의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기아해결의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씨앗산업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시키고 더 많은 기아인구를 만들고 있다. 기업의 상술에서 씨앗을 지켜 식량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배울토종씨앗포럼’이 마련됐다. 앞으로 10회에 걸친 가배울토종씨앗포럼 내용을 격주 연재한다.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전남 곡성서 농사 지으며

120여종 토종씨앗 나눠

“농부가 자유롭게 육종하고

씨앗 판매할 수 있어야“

 

변현단 씨드림 대표 ⓒ변현단
변현단 씨드림 대표 ⓒ변현단

헌신적인 페미니스트, 전남 곡성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120여종의 토종씨앗을 심고 나누는 사람. 가배울 김정희 대표는 11월 27일 열린 가배울 토종씨앗 포럼 강연자로 나선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를 이렇게 소개했다. 토종씨드림은 씨앗의 공익화를 추구하고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면서 전국의 농가에 씨앗나눔을 하고 있다. 포럼에서 변현단 대표는 자신이 농부가 되고 토종씨앗운동에 나서게 된 삶의 과정과 토종씨앗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사라지게 됐는지, 현재 토종씨앗 살리기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변 대표는 사회운동에 참여하다 1990년대 중반 가장 자유로운 삶은 농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귀농을 준비하던 중 두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한다. “시골할머니들이 겨울에 약초를 캐는 것을 보며 경제적인 의미에서 정말 불쌍한 것은 도시빈민이구나 하는 것과 가족을 잃고 사지를 잃어 비관을 하던 사람이 농사를 짓게 되면서 평온하게 되는 것을 보고 정서적인 의미에서의 치유를 알게 됐다.” 그때 마침 경기도 시흥에서 도시빈민운동을 하던 제정구 전 의원으로 부터 힘들게 사는 여성들과 공동체를 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시흥에서 연두농장이라는 자활공동체를 시작해 농사를 통해 자립을 실현해 보고자 했다.

연두농장은 토지가 없어 그린벨트를 빌렸고 돈이 없어 화학비료와 농약을 하지 않는 생태농사를 하게 됐다. 처음 2년은 설탕, 식초, 소주 등으로 천연농약을 만들어 썼다. 그러나 돈이 없는 그들에게 이것은 돈이 드는 것이었고 토양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치유해야 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농약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폐기하게 된다.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전통적인 방법들, 혼작, 섞어짓기 등 토양이 건강해지는 방법으로 자연농을 하게 된 것이다. 종자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계기가 오는데 농촌진흥청에서 준 신품종 옥수수종자를 심었고 다음해 그 씨앗으로 심었는데 농사를 망치게 됐다고 한다. 기후 문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품종 F1종자로 당해에만 결실이 좋은 것이고 매해 새로 사서 심어야 되는 것이었다. 그 일로 종자문제를 깨닫고 토종씨앗을 조사하러 1년에 6개월씩 전국의 농가를 돌아다녔고 최초의 토종종자수집단이 됐다. 제주도에서 구억배추, 무릉배추를 가져와 증식하고 형질분석을 해 그 다음해 전국 농가에 나눠주었다. 8년 정도 운영된 연두농장은 아파트개발로 토지를 빼앗기고 도시에서는 소요되는 비용이 많은 등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아 공동체는 해산된다. 변 대표는 연두농장을 통해서 자연농, 토종씨앗이라는 결과물을 얻게 됐다고 했다.

왜 씨앗이 토종이어야 할까. 토종씨앗의 의미에 대해 변 대표는 우리 종자가 우리 토양과 환경에 가장 적응이 잘 된, 즉 토착화된 것이라면서 더 중요한 것은 종자가 다양화되는 것이며 지속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같은 종자라 해도 서울 신촌과 전남 곡성에 심으면 토양과 기후가 달라 결과가 다르고 한 품종이라 해도 경작자가 맛과 품질에서 다른 것을 선택해 재배하기 때문에 한 품종이 두 품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농가가 선택하는 기준에 의해 하나의 품종이 다양한 것으로 번져나게 되는데 이것이 토종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종씨앗은 언제부터 사라지게 됐나? 변 대표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는 1425종의 다양한 벼 품종이 있었으나 일본이 식량기지화하면서 식량증산이라는 미명하에 다마금이라는 일본종자를 들여와 토종종자들을 괴멸시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종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들여왔고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통일벼 등 신품종으로 대체하고 농업진흥청 전문가들이 이일을 담당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현행 종자산업법 문제에 대해 강도 높게 지적했다. 이 법에서 씨앗이나 모종을 파는 것은 종자관리사나 종묘사만 가능하다고 한다. 농부는 종자를 나눠 줄 수 있지만 판매할 수는 없는데 이러한 종자산업법은 농부에게 종자권, 종자를 관할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종자를 가꾸고 키워왔던 것은 농민이며 씨앗이 다양할 수 있었던 것은 농민이 해왔기 때문이다. 변 대표는 “방송이나 언론에서 우리나라 종자산업이 다국적기업에 넘어가서 종자산업이 위기라고 하면서 종자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하는데 종자기업이 육성되더라도 농부의 권리는 더 배제되고 대기업이 더욱 독점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씨앗 나눔을 하고, 씨앗지도 등을 만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권이라고 한다. 농부들이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어야 하며 농부들이 씨앗을 선발 육종할 수 있어야 하고 육종가를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농부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종자에 대해 판매할 수 있도록 종자산업법을 개정하는 것이 당면한 주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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