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사줬다’ 성 착취 지적장애아

검찰 채팅앱 무혐의 처분에 항고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 59.2%

채팅앱 통해 성매매 접해

정부당국 ‘증거 부족해 유해매체 

지정할 수 없다’...규제 없이 방치

 

성매매에 쓰인 채팅앱 ⓒ뉴시스ㆍ여성신문
성매매에 쓰인 채팅앱 ⓒ뉴시스ㆍ여성신문

지적장애 아동 하은이(가명)는 2년 전 성 착취를 당하고 떡볶이를 얻어먹었다는 이유로 1심 패소 판결을 받았고 항소심에서는 승소했다. 하은이의 어머니는 최근 검찰에 채팅앱 운영자를 상대로 항고장을 제출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성폭행의 매개가 된 채팅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은이 측은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로 채팅앱의 문제를 밝히고 정부가 하루 빨리 규제법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무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증거가 부족해 유해매체로 지정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채팅앱과 관련된 사건들은 이미 넘쳐난다. 2016년 3월 서울 봉천동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가출 여중생 살해 사건도 채팅앱을 통해 가해자와 만남이 이뤄졌다. 올해 최근 발생한 에이즈 감염자도 채팅앱을 통해 상매매 상대를 모았다. 그러나 채팅앱은 지금도 규제 바깥의 사각지대에서 성매매 소굴로 변질되고 있다.

지정작애아 성 착취사건은  만13세를 갓 넘겼지만 7~8세의 지능을 가진 하은이가 채팅앱에서 채팅방을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는 스스로 채팅방을 개설해 남성과 만나 성폭행을 당하고 떡볶이를 얻어먹고 잠자리를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성매매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성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상황을 이용해 성적 만족을 얻었다는 것이다.

하은이 어머니와 여성단체들은 지난해 10월 채팅앱 운영자들을 고소·고발했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1년 후인 지난 10월 30일 여러가지 이유로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결정했다. 고소·고발인들은 검찰의 판단에 대해 “성매매를 알선·유인·조장하는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업체들만의 입장만을 근거로 판단하면서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채팅앱에서 성관계 할 여성을 찾는 글. ‘조건녀’는 조건만남을 할 여성을 뜻한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채팅앱에서 성관계 할 여성을 찾는 글. ‘조건녀’는 조건만남을 할 여성을 뜻한다. ⓒ십대여성인권센터

현행법은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과 관련해서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처벌하고 있는 반면, 스마트폰 채팅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매매 알선 등에 관해서는 서비스제공자를 단속하고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12월 1일 항고장을 제출한 고소인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시선의 최석봉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 등을 들어 검찰의 입장을 반박했다. “검찰은 처벌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먼저 검찰은 불기소 이유로 채팅앱 운영자들이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의 직간접적인 행위나 인식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성매매 특별법상 건물주가 성매매 업소인줄 모르고 장소를 제공했다가 처벌을 받는 판례를 들어 채팅앱 운영자도 채팅앱을 매개체로 한 성매매 알선 행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검찰은 채팅앱 운영자들이 어플리케이션 내 금지어를 설정하고 필터링과 모니터링 등 자체 검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금칙어와 필터링이 형식적이어서 ‘조건만남’ 등의 단어나 성기 사진이 현재까지 계속해서 채팅방에 올라온다는 점과, 검찰이 필터링 직원이 몇 명이나 있는지 제대로 수사도 안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채팅앱 운영자는 앱을 만들어놓았을 뿐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무혐의라고 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성매매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성매매가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채팅앱을 매개로 편의를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했다고 반박했다.

최 변호사는 또 2년 전 카카오의 대표가 음란물 유통을 방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선례도 참작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당국의 수사와 별개로, 채팅앱의 성폭력 예방을 위한 규제 강화와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는 요구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희생자가 발생해도 정부당국은 별다른 대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지적장애아 성 착취 사건 소송을 지원하고 채팅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봉천동 모텔 살해 사건에서 가출 여중생이 채팅앱으로 성매매를 했던 사실이 드러났지만 해당 채팅앱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제재조치도 받지 않았다”며 “사후 관리대책이나 정화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앱은 사건 이후 자체적으로 3개월 정도 성인인증절차를 도입했다가 없애고 형식적으로 20세 이상임을 체크하도록 시스템을 바꿔 지금까지 그대로이고, 오히려 채팅방을 캡처할 수 없도록 기능을 만들어 증거 수집이 어렵도록 만들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의 응답자 중 59.2%가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성매매를 접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채팅앱 단속과 규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조장 앱 317개 가운데 87.7%가 본인인증이나 기기인증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국회에서 입법 노력은 이뤄지고 있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10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채팅앱을 성매매 경고 문구 게시 의무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온라인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가 성매매 알선 등 정보를 발견할 경우 전송방지 등 기술적 조치를 취하게 했다. 그러나 피해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라고 보긴 힘들다.

조 대표는 “관련 부처들에 해결책을 촉구하면 해결이 어렵다거나 담당이 아니라는 답변만 하고 있는데, 어느 한 부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방송통심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관계부처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전방위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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