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삼권분립?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많다”
[낙태죄 폐지] “삼권분립?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많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7.12.02 22:50
  • 수정 2017-12-04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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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500여명 ‘낙태죄 폐지’ 한목소리

정부가 강력한 의지만 갖는다면

입법·위헌소송에 역할 할 수 있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서 2017 검은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서 2017 검은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덮어 놓고 낳다 보면 나는 인생 망해. 덮어 놓고 낳다 보면 나는 경력단절녀. 몸 상하는 것도 비난 받는 것도 모두 나. 나도 사람이란다.”

12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시민 5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노래를 불렀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낙태죄 폐지’다. 대부분 여성들인 이들은 “낙태죄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낙태죄”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정부의 책임있는 결단을 요구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건강과대안 등 11개 단체와 조직이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이날 집회는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현장 발언과 청와대와 200m 떨어진 청운효자동주민센터로의 행진으로 이어졌다.

공동행동은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은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여성건강을 위협하는 국가와 법, 제도의 부정의를 해체하고자 하는 사회적 관심과 열망이 담긴 요구”라며 “연령, 결혼유무, 장애와 질병,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경제적 차이 등을 넘어 개인의 삶과 존엄을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2일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며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일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며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검은 옷 차림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날 시위의 제목은 <2017 검은시위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다. 지난해 폴란드에서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낙태금지법 반대 시위’를 벌여 법안 철회를 이끌어낸 ‘검은시위’에서 따왔다. 여성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당시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가 성폭력, 무허가 주사제 사용, 대리수술 등 8가지 유형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집도한 의료인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해 임신중절수술(낙태)을 한 경우도 포함되면서 논란을 촉발시켰다. 여성들은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처음 시위를 열었다. 이후 부산, 광주, 대구 등 전국적으로 검은시위는 확산됐다.

‘낙태죄’는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명시돼 있다. 형법 제269조에서는 낙태를 한 여성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제270조에서는 낙태 시술을 한 의사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상 유전적 정신장애·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험한 경우 등 다섯 가지 경우만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예외 조항에 해당하더라도 수술을 받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2010년 보건복지부 낙태실태조사를 보면 낙태 수술 추정 건수

 

2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이 서울 종로 정부 청사 앞을 지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이 서울 종로 정부 청사 앞을 지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청와대 답변 환영, 적극적 대책 마련해야

앞서 지난 11월 26일 청와대는 조국 민정수석을 통해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했다. 한 달만에 23만명이 서명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청와대가 응답한 것이다. 이날 조국 수석은 “국가와 남성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으며, 현실의 임신중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낙태죄’의 문제점을 짚었다. 8년간 중단됐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내년에 재개하겠다고 밝혀 사회적 공론화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하지만 청원의 가장 핵심인 ‘낙태죄 폐지’ 여부 자체에 대해서는 사실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성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첫 번째 이유다. 집회 참가자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 시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책임있는 결단을 촉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삼권분립’의 취지에 반해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하지만 성과재생산포럼은 논평을 통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설명했다.

성과재생산포럼은 “정부는 의료법 시행령, 시행규칙에서 당사자가 동의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한 의사 징계를 폐지하거나 경미하게 수정해 의료인이 위축되지 않고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제약사들이 미프진(을 수입할 수 있도록 홍보, 장려 정책을 펼칠 수 있다.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정제해 만든 약의 브랜드명이다. 현재 미페프리스톤의 경우 국내에 금지 법령은 없다.

또한 입법과 관련해선 정부가 각 부처와 논의해 정부입법계획을 수립하고 특별법을 도입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소송과 관련해서는 행정부가 의지만 가진다면 법무부를 통해서 오늘 청와대 답변의 내용에 해당하는 위헌의견서를 제출 할 수 있다. 이미 2003년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을 직접 제출한 바 있다.

여성계는 “무엇보다 당장 임신중단이 필요한 여성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 대책 마련엔 시간이 걸리며,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위험 속에 방치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안전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 일조차 막막하고, 수술 후유증이 있어도 다시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임신중절 사실을 빌미로 한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개선되기 어렵다”며 “한시적 경과조치 등 지금 당장 현행법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청와대가 제시하고 있는 대책들은 당장 시행 가능한 것들이 아니다”라며 이 대책들이 마련되는 기간 동안 여성들은 여전히 청와대가 답변한 대로 “처벌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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