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섹슈얼리티 대가, 찰리다폰 송삼판 태국 탐마삿대 교수

친밀한관계가 주는 고통

이해 위해 섹슈얼리티 연구

‘나쁘면 죽이자’ SNS운동,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보수적

 

찰리다폰 송삼판 태국 탐마삿대 교수는  “3, 4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성적으로 개방적이고(Sex positive), 몸에 집착하며(Body positive)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자신들의 개인 경험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기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SNS를 통해 대의정치가 반영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찰리다폰 송삼판 태국 탐마삿대 교수는 “3, 4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성적으로 개방적이고(Sex positive), 몸에 집착하며(Body positive)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자신들의 개인 경험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기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SNS를 통해 대의정치가 반영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거듭된 성추행 의혹이 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고, 시민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들린다. 인류가 이상으로 삼았던 대의제 민주주의가 오작동하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원장 김은실 교수)은 11월 24일 ‘아시아 젊은 페미니스트 성정치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Asian Young Feminist Sexual Politics and the Possibility of new Democracy)’을 주제로 국제 워크숍을 열었다. 이날 기조 강연을 위해 내한한 찰리다폰 송삼판(Chalidaporn Songsamphan) 태국 탐마삿대학교 교수와 만났다.

송삼판 교수는 20여년 전 지금은 은퇴한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가 시작한 아시아 네트워크를 통해 아시아 8개국 여성학 교과서 만들기, 국제 포럼, 워크숍 등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태국의 성정치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른 아시아 학자들을 만나 토론하고 발표할 기회가 없었다면 자신의 이론을 그렇게 발전시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가 쓴 『포르노그라피』라는 책은 대형서점을 갖고 있는 태국 명문대 줄라롱컨 대학에서 판매 금지를 당했다. 이 책에서 그는 중산층 남성들이 싸구려 포르노잡지에서 섹스를 배운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그때 포르노잡지에서 쓰이는 용어를 알파벳 약자로 쓰지 않고 그대로 연구물에 사용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은 또다시 포르노 책으로 분류돼 학교에서 금서가 됐다. 송삼판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특히 3, 4세대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성정치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위, 인터넷 상 해시태그 등의 움직임은 대의 민주주의가 가름하지 못한 주변화된 목소리를 세상이 듣게 한 것이다. 특히 그는 ‘토크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서로에게 귀기울여주는 소통 공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젊은 세대들의 성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 이야기를 한다. 우선 당신이 말하는 제3, 4세대 페미니스트는 이전의 페미니스트와 어떻게 구분되나?

송삼판 “나는 서구 여성주의 책을 읽으며 정치 운동에 참여하였다. 최근에 만난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나와 다르다. 그들은 성적으로 개방적이고(Sex positive), 몸에 집착하며(Body positive)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자신들의 개인 경험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기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각각 다른 목소리는 집단적 행동을 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해시태그 운동을 비롯해 그들의 운동에 주목했다. 그들은 SNS를 통해 대의정치가 반영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젊은 진보주의자들의 움직임이 가볍고 의미 없이 녹아버리는 눈송이(snow flake, 스노플레이크)일뿐이라고 조롱했다. 마치 텅 빈 하늘을 향해 외치는 공허한 소리처럼. 당신은 이러한 움직임이 어떤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가?

송삼판 “현재의 민주주의는 너무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 투표만으로 사회가 바뀐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도 문재인 대통령을 뽑아놓고 잘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낙태법 폐지 등에 미온적 태도를 보임으로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지 않나? 나는 이 시점에서 정치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 가에 관해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당신은 모든 이슈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 무엇인가 당신의 가슴에 닿는 내용이 있다면 마음이 움직여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이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한국의 생리대 운동은 스노플레이크 현상이라고 본다. 비록 일부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생리대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했다며)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선거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가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고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현재 정치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나는 3세대 페미니즘을 스노플레이크라고 본다. 그들은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시위를 통해 정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그들의 정치 참여 방식은 다르다.”

 

찰리다폰 송삼판 태국 탐마삿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찰리다폰 송삼판 태국 탐마삿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적으로 개방적이고(Sex Positive)

몸에 집착하며(Body positive) 

개인의 삶에 초점 맞추는

3, 4세대 페미니스트

‘토크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장 열어

-당신은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곳은 실제로 여성혐오의 현장이기도 하다.

송삼판 “태국 사람들은 페이스북 같은 매체를 운동의 플랫폼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섹슈얼리티와 같은 이슈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년 전 태국에서 9, 10세 정도의 소녀가 기차에서 강간당한 후 창문 밖으로 던져진 사건이 있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다. 당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성폭력과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같은 이슈로 온라인 활동을 하던 다른 단체가 그를 죽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극단적으로 쉬운 해결책일 뿐이다. 온라인에서 클릭 한 번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나쁘면 죽이자’, 이것은 쉬운 것이고 아주 보수적인 태도다.”

-이것이 보수적이라고?

송삼판 “그들은 이 사건 속에서 섹슈얼리티, 성폭력의 문제를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이 보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변화를 원치 않았다는 의미다. 그들은 사건을 통해 이원론적 젠더나 불평등, 성차별 등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저 죽이라고 할 뿐이었다.”

-한국은 오랫동안 낙태법과 관련해 생명권(prolife)과 선택권(pro choice)의 논쟁이 있었다. 지금은 생명권에 기반을 두고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어쩔 수 없는 낙태를 해야 할 경우가 너무 많다. 국가는 현실을 외면한 채 낙태 금지법으로 여성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송삼판 “‘의도하지 않은 낙태’는 나의 중요한 연구 주제다. 생명권은 특히 기독교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도덕적인 가치체계와 연결해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여성은 임신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모든 상황을 생물학적인 부모, 특히 엄마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있지 않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신들만의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말할 때,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즉, 각각의 사람들이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2012년 태국은 생명권 운동가와 선택권 운동가가 함께 일한다고 발표했는데.

송상판 “우리는 그것을 초이스 네트워크(choice network)라고 부른다. 처음에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던 두 진영이 함께 만나는 것은 불편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씩 만났고, 번갈아 가며 모임을 주관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여성들의 선택폭을 넓힐 수 있었다. 한 여성이 기독교 센터에 가서 낙태를 원한다고 하자 다른 센터로 연결해 임신중단을 도왔던 사례도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함께 이야기(Talk)를 했기 때문 아닌가?”

-당신은 토크 민주주의(Talk Democracy)를 주장하는데, 이야기(talk)와 논쟁(argument)의 차이는 무엇인가?

송상판 “내가 토크(talk)라고 이야기할 때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쟁은 상대를 이해하기보다는 상대를 이기려는 의도가 있지 않는가?”

-일부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해야지, 왜 성소수자나 섹슈얼리티 이슈에 관심을 갖느냐고 묻는다.

송삼판 “가부장제는 일부일처제에서 시작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항상 친밀한 관계를 찾으면서도 이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느끼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이런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나는 이러한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섹슈얼리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특히 게이 공동체에서 여성혐오적 언어를 사용한 것이 문제시 되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년’이라고 부른다. (송상판 “태국도 그렇다”) 워마드(Womad)와 같은 여성운동 커뮤니티는 게이 단체와 단절하며 생물학적인 여성들만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며 상호지지를 해왔다. 그러니 게이나 트렌스젠더(MTF)이슈를 사이에 두고 여성운동 안에서 논쟁이 치열하다.

송상판 “우리는 게이 공동체에 대해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특별한 권리를 원한다기보다는 평범한 시민으로 우리 사회에 소속되기를 원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비정상화시키는 우리사회의 이성애정상담론을 흔들고 싶어 한다. 게이들이 여성혐오적 표현을 쓸 때 어떤 사람은 여성을 혐오하기 위해 쓰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이성애정상담론을 문제화하기 위해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졌다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아주 다를 수 있다.”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조언한다면.

송상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한 사람들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당신이 여성으로 무엇인가를 하기 원한다면 그 시작점은 당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보는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당신이 타인에게 배우기 시작하면 당신은 언제나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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