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은 총 10회에 걸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 활동가들의 연속 기고를 싣습니다. 모낙폐는 2017년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위해 건강과대안, 불꽃페미액션, 성과재생산포럼,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페미당당, 페미몬스터즈,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가 구성한 연대체입니다. 기고를 통해 실제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환경과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변화를 촉구하려 합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 공원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 -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는 청소년이자 여성이다. 이는 곧 성차별과 연령차별을 동시에 받는, 복합적인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 청소년의 이미지는 미성숙함, 연약함, 어여쁜, 순진함, ‘보호대상’이다. 여성 청소년에 대한 보호는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흔히 여기는 ‘정상 청소년’ 상태를 이탈하면, 날라리, 비행아가 돼 보호대상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청소년과 여성의 성은 일종의 금기로 취급된다. 학교에선 연애를 금지하거나, 성적 행동을 규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교 내 성교육은 ‘건전한 이성 교제’, ‘책임감’, ‘순결’, ‘자제력’을 강조해 성행위에 대한 공포와 고정관념을 만들어 낸다. 일선 성교육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리 없는 비명’이란 영상은 낙태반대진영에서 1984년에 제작한 조작 자료다. 교육에 부적합한 영상을 통해 임신중절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을 여성들에게 심고 순결을 강조한다. 여성들은 학습을 받으면서 임신과 임신중절에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엔 낙태가 끔찍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합리적인 지식으로 구성된 교육을 제공 받을 학습권에 대한 침해이다. 나는 더 다양한 교육을 받고 싶다. 이성과, 또는 동성과, 또는 혼자서 어떻게 성행위를 해야 더 좋은지, 모두에게 다 성욕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비롯해 다양한 피임법, 임신 과정과 출산 후 몸의 변화는 어떤지 등을 알려주는 교육을 원한다. 

남성 청소년이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는 욕구로 여겨진다. 그들마저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여성 청소년은 성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끔 교육받는다. 성에 절대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무성적인 존재로 여겨지며, 성행위의 유무로 발랑 까진 년, 더러운 년 아님 순수하고 깨끗한 소녀가 된다. 친구들과 대화하다가도 성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조심스러워지고, 부끄러운 일로 여겨 침묵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런 이중성은 남성과 여성이 성에 대해서 어떤 태도와 규범을 가지는 것이 마땅한지 강제하며, 여성이 ‘성적인 주체’로서 자신의 욕망을 인지하고 주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청소년의 성행위를 제한하는 명분은 ‘청소년은 미성숙해서 성행위를 할 수 없다’이다. 실수하거나, 잘못하거나, 관계를 제대로 갖지 못한다는 뜻일까? 폭력성, 책임의 부재, 임신은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며 나이와 무관하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관계를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왜 알려주지 않는 걸까.  

100% 완벽한 피임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임신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경제적 이유든, 산모의 건강 문제든, 유전적 문제든, 원치 않은 임신으로 양육하고 싶지 않아서든, 임신의 지속과 중단은 여성의 삶의 문제이다. 따라서 여성의 판단과 결정 하에 출산 혹은 안전한 임신중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의 가족 구성과 형성, 시기와 방법 등의 고민과 결정은 국가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청소년에겐 임신도, 임신중절도 허용되지 않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임신한다면 어떨까? 일단 아이 양육비, 교육비, 생계비를 마련하기 어렵다. 청소년은 누군가의 부양 없인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제적 약자다. 불법 시술로 인한 고비용과 위험도 감당하기 힘들다. 청소년의 임신은 보호자, 부양자, 선생님 등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결정 과정에 청소년의 주체성 또한 소거된다. 

또 불법 시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 살인자 취급을 받는다. 죄인이 되어 사회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외면당한다. 위험한 시술로 인해 건강권이 침해돼도, 쉴만한 공간과 기회도, 그럴 여건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의심을 살까봐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임신중절을 죄로 여기는 사회가 낳은 결과다. 본인 스스로 출산을 선택해 아이를 낳은 청소년이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경제적,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임신중절이 죄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도 형성돼야 한다. 

낙태죄는 여성의 결정권을 누락시키고, 생명권과 건강권을 침해하고 여성에게만 책임과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임신중절은 사회적 합의로 이뤄질 수 없는 여성의 권리이고, 한 인간의 삶과 존엄을 뒷받침하는 권리는 찬반의 문제가 될 수 없기에 당장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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